(5)아이가 집에 올 때 부모도 퇴근하는 것은…‘상식’이다

2018.04.12 06:00 입력 2018.04.12 06:02 수정

노동시간 단축·공보육·성평등…‘세 바퀴’로 가는 육아천국

저출산 고민하는 한국, 무엇을 해야 할까

[라테파파의 나라에서 띄우는 편지](5)아이가 집에 올 때 부모도 퇴근하는 것은…‘상식’이다 이미지 크게 보기

1960년대부터 강력한 출산억제 정책을 펴왔던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저출산 대책이 논의되기 시작한 건 불과 15년 전인 2003년이다. 이미 1983년 합계출산율이 현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인구대체 수준인 2.08명까지 떨어졌지만 출산억제 기조는 계속됐다.

‘골든타임 20년’을 허비한 후 2002년 합계출산율 1.17명을 찍고 나서야 2003년 정부는 쫓기듯 공식적으로 저출산 대응책을 천명했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2006년부터 5년 단위의 저출산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문제는 짧은 기간 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큰 밑그림 없이 우왕좌왕했다는 점이다. 저출산 원인에 대한 심층분석도, 치열한 토론도,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지에 대한 지향점도 없었다. 저출산 대책은 선거 때마다 급조되며 요동쳤다. 저출산 예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이 소요된 ‘무상보육’만 해도 연령별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시행된 데다 재원 마련 합의도 없어 극심한 갈등과 혼선을 빚었다. 선거 때마다 좋다며 짜깁기한 저출산 대책은 출산휴가, 육아휴직은 물론 육아기 노동시간 단축, 양육수당, 주택정책, 난임정책까지 제도상으론 부족한 게 거의 없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육아천국’ 스웨덴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부부 둘 다 일하고 가사와 육아도 함께 담당한다는 원칙을 세워 이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끈질기게 노력했다는 점이다. 공보육만 해도 시설뿐 아니라 균등한 질 확보에 신경 쓴 덕분에 CEO도, 말단사원도, 장관도, 왕실에서도 자녀를 공보육에 맡길 정도로 보편적인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스웨덴의 육아휴직제도에 대한 정책보고서를 쓴 스톡홀름 경제대학교 연구원 송지원씨는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에 맞춰 긴 호흡으로 정책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것이 한국과 다르다”며 “매년 정책효과를 다각도로 모니터링하면서 계속 목표한 방향대로 다듬어가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말 지금까지 저출산 대책들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2006년 저출산·고령화 사회협약에는 국공립 시설 보육 아동 수를 2010년까지 30% 수준으로 확대하자는 내용이 담겼지만, 2017년 말 국공립 보육 아동 수 비율은 12.9%로 합의 당시인 11.3%에서 그다지 증가하지 못했다. 정부는 전반적인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새로운 계획을 준비 중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방향은 3가지로 모아진다.

저출산은 여러 요인이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이지만 전문가와 시민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해결 방향은 뚜렷하다. 노동시간 단축과 양질의 공보육 확대, 부모권과 노동권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성평등 문화의 확산 등 크게 3가지다. 남자가 모든 부담을 지지 않고 여자도 희생하지 않는, 남녀 모두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이다.

■ 저출산 대책 3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노동시간 단축이다. 국내의 전문가나 한국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스웨덴 전문가들은 가장 시급한 저출산 해법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꼽았다. 아이가 집에 올 때는 부모도 퇴근해야 한다는 것이 스웨덴 사회의 상식이다. 스웨덴이 아이 있는 집의 생활에 회사생활과 노동시간을 맞춰왔다면, 한국은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해야 하는 사회다. 세계 최악 수준의 저출산에 시달리면서도 한국에선 노동시간 단축보다 보육시간 연장 요구가 나온다.

스웨덴도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으로 한국과 같다. 스웨덴에선 초과근무나 야간·휴일근무에 대한 보상이 비싸 고용주가 장시간 노동을 줄이려 하지만 한국은 ‘공짜 노동’이 빈번하다. 1950년 주당 46.8시간이었던 스웨덴의 실질노동시간은 1982년 ‘노동시간법’ 등 강력한 법적 규제와 노동조합의 철저한 관리로 정시출근, 정시퇴근이 자리 잡았다. 한국은 연간 2069시간의 노동시간(2016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긴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공보육 확대다. 스웨덴의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의 ‘여가활동센터’ 보육 서비스 공급은 100%를 충족한다. 부모들의 보육 서비스 만족도도 높다. 보육 서비스는 집 가까운 곳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으로 어린이집, 여가활동센터 등의 운영주체를 기초지방자치단체로 일원화했다.

한국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돌봄교실의 관할이 다르고 지역과 직장어린이집, 민간과 국공립 시설 등으로 나뉘어 운영되는 탓에 통일된 관리·감독·지원이 어렵다. 선거 때마다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공약은 계속됐지만 증가세는 미미하다. 초등돌봄교실도 턱없이 부족하다. 2017년 4월 말 기준 이용 학생 수는 24만5303명으로, 전체 초등학생 267만4227명의 10% 남짓이다. 마을돌봄을 이용하는 9만여명까지 포함해도 전체 초등학생의 12.5%만을 수용할 수 있다.

안나 카린 스웨덴 보건사회부 성평등국장은 “스웨덴도 초기엔 민간의 손을 빌렸지만, 궁극적으론 공립을 늘려야 한다는 목표로 지자체에 강한 의무를 부과하고 지원도 강화하며 국공립을 빠르게 늘려갔다”고 말했다. 또 모든 부모가 믿고 맡길 수 없다면 효과 반감이 자명한 만큼, 시설 확충뿐 아니라 교사 연수, 교사 대 학생 비율 등 ‘보육의 질’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했다.

셋째, 부모권과 노동권의 조화 및 성평등 확산이다. 남녀 모두에게 노동자와 부모로서의 역할이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생각과 이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야말로 저출산 해결의 핵심이다.

스웨덴은 집 밖에선 남녀 간 고용률과 임금격차 해소, 집 안에서는 동등한 가사, 육아 분담에 각별히 신경을 써왔다.

스웨덴의 경제상황이 좋으니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 시선도 있지만, 한국은 경제 호황기에도 저출산 추세가 멈추지 않았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에선 권리와 부담을 어느 한쪽에만 전가시키지 않고 공평히 나눈다는 목표가 모든 정책에 스며 있고, 이 목표가 관철될 때까지 수정·보완한다.

‘아버지 육아휴직 할당제’가 대표적이다. 1974년 남녀 모두 부모휴직이 가능해졌음에도 남성의 휴가 사용률이 저조하자 정부는 1994년 안 쓰면 없어지는 의무할당 기간 30일을 뒀고 기간을 60일, 90일로 늘렸다. 그사이 평등육아의 가치도 대대적으로 홍보한 결과 2015년엔 육아휴직 대상 남성의 96%가 하루 이상 유급육아휴직을 사용할 만큼 ‘아빠 육아’가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젠 육아휴직 사용보다 여성 89일, 남성 39일로 불공평한 육아휴직 기간을 어떻게 공평하게 나누도록 하느냐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에선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가 처음 1만명을 돌파했지만, 아직 여성의 13% 수준이고 대기업, 공무원 등 비교적 안정적인 직종에 편중돼 있다.

스웨덴의 성평등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에는 노조의 여성 대표성이 높아졌다는 것도 큰 요인이 됐다.

돌봄노동자들이 많은 지방자치단체노조(Kommunal)의 연구원인 셰르스틴은 “3대 노조연맹 중 하나인 사무직노동자노조연맹(TCO) 현 의장, 산업노동자노조연맹(LO) 전임 대표도 여성이었다”며 “임금격차, 노동시간 등 여성 노동자들의 삶에 밀접한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노력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남녀 모두에게 좋은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 장기적 방향 설정이 우선

전문가들은 일단 장기적인 방향부터 설정하고, 각 정책이 의도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계속 점검하며 실효성을 높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그동안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에 대한 큰 그림이 없다 보니, 계속 새로운 대책만 내놓으며 갈팡질팡했던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일과 돌봄이 남녀 각각에 고강도로 분업화돼 있다. 양쪽의 역할을 합치고, 줄이는 것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범위한 정책 사각지대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육아휴직은 고용보험에 가입한 경우만 이용 가능하다.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 등 급여 수급에서 배제되는 광범위한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더라도 이를 전반적으로 권장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육아휴직이 실질적 해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고, 육아휴직급여가 너무 낮아 생계가 어려워져 신청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실효성을 높일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저출산 해결은 국가적 과제인 만큼 재원 마련 등 사회 전체적인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출산은 총체적 삶의 문제로, 모든 것을 동시에 해결할 수 없는 만큼 시급한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에 대한 로드맵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출산은 사회적 문제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성평등과 삶의 질 관점으로 정책을 전환해 삶의 다양한 어려움을 제거해주고 그 결과로 출산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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