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통학차량 규제 첫 자치법…‘어린이가 안전한 도시’ 입법 이어져

2020.05.14 22:16 입력 2020.05.14 22:24 수정

송파구 ‘노란색 버스 인증’

어린이 안전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에 2000년 설립된 한국어린이안전재단 교육관에서 김유민 교육1팀장이 지난 11일 어린이가 통학버스 안에 갇히는 안전사고에 대비해 경적을 울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이상호 선임기자

어린이 안전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에 2000년 설립된 한국어린이안전재단 교육관에서 김유민 교육1팀장이 지난 11일 어린이가 통학버스 안에 갇히는 안전사고에 대비해 경적을 울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이상호 선임기자

운전자 어린이 보호 안전교육
피해 배상 보험 가입 등 갖추면
노란색 칠한 차량 인증제 도입
어린이 교통사고 줄이기 기여
송파구 국제안전도시 3회 인증

세계 대부분의 어린이 통학버스가 노란색인 것은 위험이나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 위에서 어린이들의 안전은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하고, 강력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국제적 약속이기도 하다. 어린이를 상징하는 ‘노란색 버스’는 1939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1990년대 말쯤 도입됐지만 처음 제도권으로 들어온 것은 2008년 12월이다. 그마저도 국가법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출발했다.

서울 송파구는 2008년 11월17일 ‘어린이 보호차량 인증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어린이 통학차량을 규제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인 최초의 자치법이다. 조례는 당시 전국 어린이 통학버스의 90%가량이 사실상 불법으로 운행되는 지입이나 임대 차량이었던 상황에서 제정된 것이어서 다른 지자체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조례는 어린이 보호차량 인증기준 및 신청절차, 심의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사항, 인증 차량에 대한 지원 근거 등을 담았다. 당시 상위법이 뒷받침되지 않아 규제나 처벌보다는 사고 예방 차원에서 지원을 통해 인증 참여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틀이 짜였다.

송파구는 인증을 받은 어린이 통학차량에 대해서는 노란색 전면 도색을 비롯해 경광등·안전띠·승하차 발판 설치 비용 등을 지원하는 대신 운전자의 신원조회와 교통안전공단의 정밀운전 테스트에서 적합 판정을 받도록 했다. 또 사고 시 피해 전액 배상이 가능한 보험 가입, 6시간 이상의 안전교육 수료 등의 조건을 걸었다. 송파구는 시민들의 참여 분위기 확산을 위해 인증 차량에 어린이 안전 상징물로 달팽이와 거북이가 그려진 인증 스티커를 부착하고 운행하도록 했다.

송파구의 이 조례에는 ‘아픔’이 함께한다. 1999년 6월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청소년수련원에서 발생한 씨랜드 화재사고다. 유치원생 19명과 인솔 교사·강사 등 23명이 숨진 이 사고의 희생자 대부분이 송파구 시민이다. 이후 송파구는 ‘어린이가 안전한 도시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어린이 보호차량 인증 제도는 이 프로젝트의 한 축이다.

송파구는 자치단체에서는 드물게 관내 교통사고를 매년 분석해 연령별 손상사망률 변화를 여러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국제안전어린이집 인증, 송파안전체험교육관 개관 등 지속 가능한 안전인프라 정책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그 결과 2005년 11개 분야 153개였던 안전도시 프로그램이 현재는 320여개에 이른다. 송파구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2008년에 이어 2013년과 2018년 등 3회 연속 국제안전도시로 공인받기도 했다. 국제안전도시 인증은 1989년 WHO가 개최한 ‘제1회 사고와 손상예방 세계학술대회’를 계기로 시작됐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인 국제안전도시공인센터(ISCCC)가 공인(5년마다 재공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마천동 한국어린이안전교육관에서 2009년 6월 어린이 보호차량 인증식이 열리고 있다. 송파구는 법규 미비 등으로 안전사각지대에 있던 어린이 통학차량을 제도권으로 유도한 국내 최초의 자치법을 2008년 11월에 제정했다. 송파구 제공

서울 송파구 마천동 한국어린이안전교육관에서 2009년 6월 어린이 보호차량 인증식이 열리고 있다. 송파구는 법규 미비 등으로 안전사각지대에 있던 어린이 통학차량을 제도권으로 유도한 국내 최초의 자치법을 2008년 11월에 제정했다. 송파구 제공

도로교통법 개정 처벌 규정 둬
보호자 탑승·안전띠 착용 의무
“통학버스 운전자 자격증 도입
운전 과실 사고 방지책 있어야
허리만 두르는 안전띠 개선을”

송파구의 어린이 통학차량 인증조례 제정 5년 후인 2013년 국회는 도로교통법을 유사하게 정비했다. 송파구의 조례와 차이점이 있다면 유도가 아닌 규제이며, 위반 시에는 과태료 등으로 처벌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는 것이다.

국회는 그해 12월31일 어린이 통학차량의 신고 의무화와 처벌 규정을 신설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법은 어린이 통학차량을 규제한 최초의 국가법이다. 그해 3월 청주시 산남동 어린이집에서 통학차량에 치여 김세림양(당시 3세)이 숨지는 사고 직후에 만들어져 ‘세림이법’으로 불린다.

개정법은 ‘어린이 통학버스’로 용어를 일원화했으며, 반드시 노란색으로 전면을 도색하도록 했다. 13세 미만을 교육대상으로 하는 학원·유치원·학교 등에서 등하교에 이용되는 9인승 이상의 차량으로 규정했다. 이 개정법은 유예기간을 거쳐 2015년 1월29일부터 시행됐다.

개정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어린이 통학차량은 의무신고 대상이 아니어서 다양한 색의 통학버스가 운행됐다. 차량 안에서 어린이들이 안전띠를 매지 않아도 단속 대상이 아니었다. 일반 차량과 동일하게 운전자와 옆자리 동승자만 안전띠 착용 의무가 있었다. 보호자 탑승 의무도, 운전자의 안전교육 미이행에 대한 처벌 규정도 없었다. 현재는 개정법으로 이들 사항은 미준수 시 처벌 대상이 됐지만 비슷한 개정안이 2004년과 2008년에 국회에 의원 발의됐다가 폐기처리된 적이 있어 통과 당시 ‘뒷북 입법’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법이 교육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어린이 통학버스에 대한 법 규제나 정부정책도 지속적인 고민과 보완이 요구되고 있다. 국회가 지난달 29일 가결한 ‘태호·유찬이법’도 개정 도로교통법인 ‘세림이법’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어린이 사고 이후 마련된 것이다. 지난해 5월 인천 송도에서 유소년 축구클럽 승합차에 타고 있던 8세 동갑내기 태호·유찬군이 숨지고 6명이 다친 교통사고가 계기였다. 당시 사설 축구클럽 차량은 도로교통법상 어린이 통학버스에 해당되지 않아 관리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되면서 법 개정이 추진됐다.

학부모와 시민단체들은 어린이 통학버스 운전자의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 증가 해소를 막기 위해 자격증 제도 도입 등 근본적인 정책 보완을 요구한다. 또 통학버스 내 허리에만 두르는 2점식 안전띠는 어린이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박성수 송파구청장은 “자치구 차원에서 아동·청소년에 대한 다양한 안전관리 제도를 고민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인국 송파구 보건소장 “어린이 안전, 정부·지자체 정책보다 지역사회 구성원 노력 중요”

[조례를 찾아서](22)통학차량 규제 첫 자치법…‘어린이가 안전한 도시’ 입법 이어져

서울 송파구의 어린이 보호차량 인증에 관한 조례 제정에는 20년 가까이 송파구민들의 건강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의사 공무원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김인국 송파구 보건소장(58·사진)은 가정의학과 전문의이기도 하다. 그는 관내 어린이들의 피해가 컸던 1999년 경기 화성시 씨랜드 화재사고 이후 송파구가 추진하고 있는 ‘안전도시 프로젝트’를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지난 11일 송파구 보건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어린이 보호차량, 즉 어린이 통학버스에 대한 관리 조례는 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하는 것도 질병으로 봐야 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김 소장은 “그 같은 개념으로 접근해 조례는 2004년부터 준비됐다”며 “당시 관내 연령별 교통사고 손상사망률 분석을 의뢰해보니 송파구에 거주하는 0~12세 아이들이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한 10만명당 비율이 다른 자치단체에 비해 높게 나타났고, 그 원인으로는 ‘교통수단 이용 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그는 “송파구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조성된 계획도시여서 당시 도로 사정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라 차량들의 평균속도가 빨랐고, 높은 교육열로 여러 학원을 다니는 어린이들이 많다는 통계도 얻을 수 있었다”며 “그 결과 가장 먼저 해결할 대상으로 선진국에 비해 안전 법규가 미비하고 현장조사에서 심각한 안전사각지대로 파악된 어린이 통학차량에 대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어린이 안전은 정부나 자치단체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린이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는 의식이나 행태를 가지려는 참여 의지와 노력이 더 우선시돼야 한다”며 “정부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송파구 보건소는 2005년부터 관내 연령별 교통사고 손상사망률을 자체 분석하고 있다. 그 데이터는 안전도시 프로젝트에 접목된다. 송파구가 2006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노인회관이나 노인종합복지관 주변에 차량 운행속도를 제한하는 실버존을 설치한 것도 이 같은 분석자료가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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