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정직 강조 ‘진보 아이콘’ … ‘돈 거래 의혹’에 타격

2011.08.28 21:57 입력 2011.08.28 23:46 수정

곽노현 최대 위기… “후보 단일화 위법·반칙 전혀 없어” 대가성 부인

“교육감 당선 이후 저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 속에 있었던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공사 구별을 게을리하고 법 위반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에게 항상 감시가 따른 건 진보교육감, 개혁성향이라는 이유일 것입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57)은 28일 지난해 선거 전 자신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사퇴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53)에게 2억원을 건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법 적용의 편향성에 대해 토로했다. 검찰 수사가 자신을 겨냥한 ‘표적 수사’라고 주장한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8일 기자회견에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선의로 2억원을 줬다”고 밝힌 뒤 서울시교육청 기자실을 나서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8일 기자회견에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선의로 2억원을 줬다”고 밝힌 뒤 서울시교육청 기자실을 나서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곽 교육감은 “법학자이자 교육자로서, 법으로부터 올바름과 교육으로부터 정직을 배웠다. 올바름과 정직이 제 인생의 나침반이자 안내자”라면서 “후보 단일화 과정에 위법과 반칙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박명기 교수가 교육감 선거에 두 번이나 출마하는 과정에서 많은 빚을 졌고, 이때 생긴 부채로 자살마저 생각한다는 얘기를 들어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곽 교육감은 “공권력은 명확하게 검을 휘둘러야 하지만 제가 가르치고 배운 법은 인정이 있는 법, 사람을 살리는 법”이라고도 했다.

취임 후 1년여간 곽 교육감은 아슬아슬한 외줄을 탔다. ‘진보의 아이콘’으로 수도 서울의 교육 개혁이라는 큰 기대를 안고 등장했지만, 초반부터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지난해 하반기 교육청이 전면적인 체벌금지를 선언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간접체벌을 허용하겠다고 맞섰다. 보수 교원단체와 학부모들은 교권이 흔들린다면서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지난해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둘러싸고도 대체학습을 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가 집단 시험 거부사태로 교과부와 마찰을 빚었다. 또 교육청이 내부공모를 통해 서울 영림중 교장 후보로 전교조 출신 박수찬 교사를 임용제청했지만 교과부는 거듭 불허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갈등의 정점은 무상급식 주민투표였다. 시작은 서울시의회와 서울시의 갈등으로 촉발됐지만 투표 과정에선 오세훈 시장과 곽노현 교육감의 대립구도로 변했다.

결국 주민투표가 무산되고, 전면 무상급식은 물론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등 개혁과제에 박차를 가하려던 참에 돈거래 의혹이라는 뜻밖의 사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곽 교육감은 검찰 수사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지난 26일 저녁 경기 청평에서 열린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워크숍에 참석했다. 그날 밤늦게 수사 소식을 접하고 귀경한 뒤 주말 내내 측근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28일 오후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는 사실은 27일 미리 공지했지만 회견시간은 1시간 전에야 확정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입장 정리에 고심했다는 방증이다. 측근들은 “회견문을 작성하는 데 서울대 법대 동창들이 함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곽 교육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공법을 택했다. “2억원으로 선의의 지원을 했다”고 밝힌 것이다. 한 측근은 “곽 교육감이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며 다 ‘까야’ 한다”고 해서 (검찰이 찾아낸 1억3000만원이 아닌) 2억원을 줬다고 공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돈의 성격이다. 곽 교육감의 측근은 “곽 교육감 부인이 의사로, 생활에 충분히 여유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공개한 곽 교육감의 재산은 15억9815만원이다. 그는 당선 직후인 지난해 7월 재산공개 당시에는 지방선거 부채로 마이너스 6억8000만원을 신고했다. 하지만 같은 달 말 선거비용 보전비 34억8749만원을 받았다. 이 돈으로 빚을 갚고, 아파트 1채의 전세금 3억7000여만원까지 받아 22억7892만원이 늘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곽 교육감은 이날 밤늦게까지 모처에서 측근들과 향후 거취에 대해 숙의하다 11시 넘어 서울 화곡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지난해 도덕성과 청렴성을 내세워 등장한 곽 교육감은 이전 ‘공정택호’의 비리에 염증난 시민들의 마음을 잡아 당선에 성공한 만큼 비리 척결에 앞장섰다. 비리 척결 노력은 보수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에서도 인정한 성과였다. 본인도 늘 원칙과 정직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청렴함이 곽 교육감의 최대 자산이었던 만큼 이번 사건으로 곽 교육감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용퇴해야 한다고 본다. 선의라고 해도 방어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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