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 결정문에 RO 참석자 잘못 표기…사실 확인도 안 한 헌재

2014.12.22 22:39 입력 2014.12.22 23:02 수정
장은교·심혜리·이효상 기자

참석하지 않은 2인을 참석자로 적어 ‘졸속 결정’ 방증

진보당 “이런 식이면 결정문 누더기 될 것” 검토 돌입

헌법재판소가 지난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하면서 내놓은 결정문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술한 오류가 22일 발견됐다. 이석기 전 의원 주도로 내란을 모의했다고 법무부가 지목한 소위 ‘RO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을 참석자라고 표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로써 헌재 결정문은 이미 제기된 논리적 허술함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정확성에서도 비판의 도마에 오르게 됐다. 헌재가 17만쪽이 넘는 증거가 제출된 재판을 시작한 지 1년도 안돼 현직 국회의원 5명이 소속된 정당 해산을 결정하면서 졸속으로 결정문을 썼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재는 자주파(NL 계열)가 ‘주도세력’이 돼 진보당을 접수했다면서 주도세력 명단을 결정문에 실명으로 열거했다. 헌재는 결정문 47쪽에서 “민혁당이 경기동부연합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은 이석기가 주도한 내란 관련 회합 참석자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며 이 전 의원을 비롯해 이모·홍모·한모·조모·김모씨 등 내란음모 사건 피의자들을 열거했다. 헌재가 “이석기가 주도한 내란 관련 회합”이라고 부른 것은 법무부와 검찰이 ‘RO 모임’이라 일컫는 모임을 말한다. 헌재가 열거한 20명 가운데는 ㄱ씨도 포함됐다. 그러나 ㄱ씨는 한때 진보당 당원으로 활동한 적은 있으나 RO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헌재가 결정문 57쪽에 역시 내란 관련 회합에 참가했다고 적시한 ㄴ씨 역시 참석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통합진보당 소속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에 대한 의원직 상실을 결정한 22일 광주 금남로 5·18 민주광장에서 진보당 소속 기초의원이 ‘근조 민주주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규탄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통합진보당 소속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에 대한 의원직 상실을 결정한 22일 광주 금남로 5·18 민주광장에서 진보당 소속 기초의원이 ‘근조 민주주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규탄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가 진보당 해산의 주요 근거로 내세운 RO 모임의 참석자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더구나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인 사회적 낙인이 될 수도 있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ㄱ씨와 ㄴ씨는 허위사실 적시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진보당 해산에 찬성한 재판관 8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도 ㄱ씨와 ㄴ씨가 RO 모임에 참석한 사실이 없다는 점은 인정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두 사람이 우리가 확보한 RO 모임 참석자 명단에 없는 것은 맞지만 두 사람 다 진보당 관련 다른 집회에 참석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헌재 결정문은 주심인 이정미 재판관과 소속 연구관들이 초고를 작성한 뒤 다른 재판관들이 돌려보며 수정하는 식으로 완성됐다. 따라서 결정문 작성에 참여한 연구관과 재판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헌재는 이날 “결정문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로 공식 입장을 대신했다.

진보당은 결정문에 오류가 더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당 소속 전 의원들은 변호사들과 함께 결정문을 세밀히 검토하고 있다.

이상규 전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런 식이면 헌재 결정문은 누더기가 되는 것이고, 국제적 망신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석기 전 의원 재판 때도 1·2심에서 각각 200여곳에 오류가 발견됐고 검찰 스스로가 바꾼 부분이 400군데가 넘었다. 이런 부분이 확인되면서 2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당의 다른 관계자는 “헌재가 정당을 해산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서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결정문을 쓴 셈”이라며 “결코 사소하게 넘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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