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특검이 ‘이재용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밖에 없는 이유

2017.01.12 14:36 입력 2017.01.12 15:49 수정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 사무실 건물 ‘3층 주차장’. 건물이 오르막에 지어진 터라 건물 앞 대로(테헤란로)변에서 봤을 때 3층이지만, 건물 뒤편에서 봤을 때는 3층이 지면층이다. 차량 출입구는 건물 뒤편에 있어 주차장이 3층이다. 특검 사무실이 있는 17~19층으로 올라가려면 3층 주차장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3층과 17~19층에서만 서는 ‘특검 전용 엘리베이터’를 3층에서 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피조사자들이 3층 주차장을 지나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항상 취재진 5~6명이 3층 주차장에 상주한다. 누가 조사를 받으러 오는지 취재하기 위해서다.

특검 사무실 건물 뒤편 3층 주차장 입구를 한 시민이 쳐다보며 걷고 있다. 김경학 기자

특검 사무실 건물 뒤편 3층 주차장 입구를 한 시민이 쳐다보며 걷고 있다. 김경학 기자

12일 오전 9시15분쯤 3층 주차장에는 특검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의 출석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취재진·시민사회단체·노동조합·삼성 등 기업 관계자와 시민 등 모두 200명이 넘는 이들이 이 부회장을 기다렸다. 사복 경찰을 포함한 경찰도 50~60명가량 주차장 인근에 배치됐다. “코너 돌고 있습니다”. 경찰의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이 부회장이 탑승한 차량이 특검 사무실 건물을 향해 우회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오전 9시28분쯤 이 부회장이 검은색 차량에서 내렸다. 이 부회장은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남색 계열의 코트를 입고, 붉은 포도주색 버건디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주차장 입구에서 내린 이 부회장은 일행 몇몇과 함께 특검 전용 엘리베이터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 부회장 특유의 약간의 미소 짓는 표정이었지만,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 앞서 이 부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도 의원들의 질의에 미소짓는 듯한 표정을 자주 보인 바 있다.

이 부회장이 걷는 동안 취재진은 질문을 던졌다. ‘최순실씨 일가 지원을 직접 지시했냐’, ‘국민들 노후자금을 경영권 승계에 이용했단 혐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박 대통령에게 직접 지시를 받은 것입니까’ 등의 질문에 이 부회장은 입을 열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사진·카메라 기자들이 표시해놓은 지점에서야 한 마디 했다. “이번 일로 저희가 좋은 모습을 못 보여드린 점 국민들께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회 청문회에서 말한 것 그대로였다. 이 부회장은 잠시 고개를 숙인 뒤 특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조사실로 올라갔다. ‘경제 대통령’으로도 불리는 피의자 이재용의 ‘우아한 출석’이었다.

12일 오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석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12일 오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석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규철 특검 대변인이 이 부회장의 출석 일정을 발표한 어제와 오늘 법조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이 부회장 소환이었다. 만나는 이들마다 이 부회장의 향후 전망에 대해서 얘기했다. 얘기의 핵심은 ‘특검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할까’였다. 젊은 기자들은 대다수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몰라도, 우선 특검은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법조계 인사는 다른 말을 했다. 그는 “지금껏 뇌물공여자를 구속시킨 사례는 많지 않다”며 “특검이 구속까지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 부회장이나 삼성을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법조계에서 오랫동안 쌓인 경험에 비춰볼 때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낮다’는 일반적인 전망이었다. 이 부회장의 구속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것은 그뿐은 아니었다.

뇌물 사건을 많이 다룬 검사들에 따르면 뇌물 사건의 어려운 점은 물질적 증거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고위급끼리 주고 받은 뇌물 사건은 증거를 찾아내기가 더더욱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뇌물을 공무원에게 준 ‘공여자’의 자백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공여자로부터 자백을 받아내기도 어렵다. 공여자도 ‘뇌물공여죄’로 처벌받기 때문이다.

검사가 오랜 시간을 들여 이끌어낸 공여자의 자백. 그러나 공여자가 법정에서 “검찰 조사에서 한 자백은 사실이 아니다”, “검사의 끊임없는 압박으로 거짓으로 자백한 것이었다” 등의 말로 뒤집게 되면 자백은 무용지물이 된다. 이로 인해 뇌물을 받은 ‘수뢰자’도 무죄가 선고나는 사건도 있다.

이같은 이유로 검사와 공여자 사이에는 일종의 ‘무언의 약속’이 이뤄지기도 한다. 공여자의 자백을 유지시키기 위해 ‘불구속 기소’를 택하는 것이다. 검찰 측에서는 유죄 협상을 뜻하는 플리바기닝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플리바기닝에 가깝다고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12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석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비선실세 최순실 일가 지원과 관련한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12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석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비선실세 최순실 일가 지원과 관련한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같은 법률 취지와 구조는 삼성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법조계에는 삼성에 속한 국내 변호사 수가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앤장’과 비슷하거나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삼성이 최씨 측에 지원했거나 약속한 금액은 최씨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컨설팅 계약 220억원,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204억원, 장시호씨(38)가 관여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원가량 등 총 440억원에 달한다. 물론 이 금액 모두가 수뢰액이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현행법상 440억원이 아닌 4400억원을 뇌물로 줘도 뇌물을 준 범죄자는 최대 징역 5년인 것이다.

특히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이라도 특별감경요소가 있으면 대법원 양형기준은 징역 2~3년이다. 특별감경요소 중에는 ‘공무원(수뢰자)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가 있다. 징역 2~3년은 최종적으로 집행유예도 가능한 양형이다. 이를 근거로 삼성은 ‘강요에 의한 피해자’ 혹은 최소한 뇌물이라도 ‘요구형 뇌물’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전날 특검의 출석 통보에 미루지 않고, 협조적으로 나온 것도 이같은 계산에 의한 것이란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서 이 부회장의 구속은 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죄는 여타 뇌물공여죄와 다르게 봐야 한다. 한 사업자가 사업 편의를 위해 말단 공무원에 뇌물을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 권력 1순위’ 이 부회장과 ‘명실상부 권력 1순위’ 박 대통령간의 뒷거래로 봐야 한다. 주고 받은 금액도 최소 200억원에 달한다.

특검은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표’를 삼성이 최씨 측에 건넨 돈의 대가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불리한 합병비율에도 찬성표를 던지는 바람에 국민연금이 입은 평가손실은 3700억원(국민연금 자체 분석·지난해 11월 30일 기준)에 달한다. 그들의 뒷거래에 국민들의 노후 자금 3700억원이 공중으로 날아간 것이다.

세계 굴지의 기업, 한국 1위 기업 삼성전자나 유수의 우량 기업을 가진 삼성그룹이 망하길 바라는 이들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국민 모두가 알듯 기업 총수가 구속된다고 해서 기업이 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총수 구속 가능성이라는 불확실성 해소와 향후 투명 경영 기대감으로 해당 기업의 주가가 더 오르는 경우도 있다.

정말 이 부회장이나 삼성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박 대통령에게 갈취당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결론이 ‘갈취당한 피해자’일수는 있다. 그러나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정유라 지원을 뒤늦게 알았다”는 위증 혐의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에 따르면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에는 1년 이상 10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위증의 경우 가장 가벼운 처벌이 징역 1년으로, 법원이 벌금 등 재산형을 선고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이같은 위증죄의 무거움을 잘 알고 있는 특검은 다른 피의자들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가능한 위증 혐의를 포함시키고 있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서도 위증 혐의로 고발해달라고 국회 국조특위에 요청을 해놓은 상태다. 특검 조사를 받기 위해 누구나 거치는 3층 주차장처럼, 이 부회장 역시 ‘구속 기소’를 피해갈 수는 없어 보이는 이유다.

박영수 특검이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박영수 특검이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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