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9년 전 특검 소환’ 때 미소 짓던 삼성 이재용···이번에도 웃을까

2017.01.11 18:35 입력 2017.01.11 18:36 수정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49)이 9년 만에 수사기관의 ‘포토라인’에 다시 서게 됐다. 12일 박영수 특별검사의 소환조사를 앞두게 되면서 9년 전 삼성특검에 피의자로 소환된 것에 이어 2번째를 기록하게 된 셈이다.

9년 전 포토라인에 섰을 당시 그의 얼굴엔 여유가 읽혔다. 엷은 미소를 띈 채 기자들의 질문에 미리 준비해 온 사과 멘트를 말했다. 그리고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는 삼성특검으로부터 ‘무혐의’를 받는다. 그의 범죄 혐의는 오롯이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실형 선고에만 반영됐다.

그러나 이번엔 얘기가 달라졌다. 오로지 자기 자신이 저지른 범죄 혐의를 추궁받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도 그룹의 1인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받는 수사다. 그래서일까? 이번 사건으로 인한 위기감이 9년 전보다 훨씬 크다는 게 삼성 내부 반응이다.

9년 전과 이번 소환이 다른 점은 뭘까? 비교분석해봤다.

2008년 삼성특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연합뉴스

2008년 삼성특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연합뉴스

■‘9년 전엔’…범죄에선 빠져나가고 그룹 1인자 굳히기

·삼성특검, ‘삼성 회삿돈 돌려막기’로 이재용 후계 몰아주기 확인…그러나 이건희만 처벌, 이재용은 ‘무혐의 종결’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가 2008년 2월28일 밤 14시간여에 걸친 특검 조사를 받고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고 있다./서성일 기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가 2008년 2월28일 밤 14시간여에 걸친 특검 조사를 받고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고 있다./서성일 기자

이 부회장이 처음으로 수사기관의 포토라인에 선 것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08년 2월28일이다. 오전 9시10분쯤 검은 색 고급 세단 차량이 미끄러듯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건물 로비 앞에 섰다. 차에서 내린 이 부회장은 영하의 한파에도 여유로운 표정을 보였다.

그는 10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미소를 보이며 포토라인에 섰다. 취재진들은 “에버랜드 지분 인수과정에 그룹차원의 공모가 있었느냐” “e삼성의 사업 실패를 인정하느냐”는 등 민감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마디 해달라”는 마지막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 “저와 삼성에 대해 많은 걱정과 기대를 하고 있는 점 잘 듣고 있다. 성실하게 답변하겠다”고 답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 조사실로 직행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 도착하기 30여분 전부터 미리 주차 장소를 확보해뒀고 특검팀의 방호실장이 직접 이 부회장의 안내를 맡아 만일의 사고에 대비했다.

그리고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이뤄진 소환조사. 언론은 ‘강도높은 14시간 마라톤 조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의 혐의는 간단했다. 모두 이 부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 사항들이었다. ‘e삼성 부당지원 의혹’ 사건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 등 크게 4가지 고소·고발 사건에 주범으로 지목됐다.

문제는 이 부회장이 얼마나 범죄 의도를 갖고 이를 저질렀느냐가 관건이었다.

당시 이 부회장 조사를 전담했던 윤정석 특검보는 “이재용 전무는 e삼성 사건을 비롯한 4건의 고소·고발사건에 관련돼 있어 조사할 게 많았다”면서 “앞으로 필요할 경우 재소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과 달리 삼성특검에선 더 이상 이 부회장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소환이었던 셈이다.

밤 11시25분쯤 조사실을 나선 이 부회장은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는 대로 성실하게 답변하였습니다. 저 때문에 늦게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조사결과를 묻는 질문에는 함구한 채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다.

특검팀 내부에선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한 특검팀 관계자는 “이 전무가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고 명확하게 답변했다”면서도 “우리 입장에서는 (답변이) 좀 불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질문에는 답변을 얼버무렸고, 간혹 민감한 질문에는 동석한 변호사와 상의한 뒤 답하는 식이었다”고 했다. 특히 수사의 ‘수장’인 조준웅 특검이 조사에 앞서서 이 부회장을 30분간 따로 만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전해져 논란이 일기까지 했다.

결국 시끌시끌했던 소환조사의 결과는 ‘무혐의 종결’이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특검 측은 그해 3월13일 이 부회장 등을 ‘증거가 불충분해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특검팀은 “수사 결과 이재용씨 등 피의자들이나 삼성 측 주장과는 달리 삼성 구조본(전략기획실)이 e삼성 등 4개 회사의 설립과 운영, 이재용의 지분 처분에 관여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삼성그룹 측의 조직적인 계획 하에 지분 매입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고발인들의 주장처럼 계열사들의 e삼성 지분 매입이 ‘오로지 이재용씨가 부담해야 할 경제적 손실을 대신 부담하고 사업실패로 이재용씨의 사회적 명성이 훼손될 것을 막기 위해 매입’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구조본이 e삼성의 설립과 운영, 지분 처분에 조직적으로 관여했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불법적인 배임 행위임을 인정하지는 않은 것이다.

또 이 부회장 등의 혐의가 설령 인정된다고 해도 구체적인 손해액 산정이 불가능해 형법상 배임죄에 해당하며, 형법상 배임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어서 오는 26일까지 기소.불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고발인(참여연대 등)에게 항고 등 특검의 처분에 불복할 기회를 주기 위해 여러 특검의 수사대상 가운데 이 사건 처리를 우선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특검팀은 이건희 회장 등만을 기소해 이들만 실형 선고를 받게 됐다. 물론 이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가 ‘이건희 원포인트 특별사면’이라는 유례없는 사면으로 풀어주게 된다.

■‘불법의 수혜자’에서 ‘불법의 주범’ 의혹으로…

·‘세계일류기업’이라는 삼성과 이재용, 구시대적 ‘정경유착’ 의혹에 휩싸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재벌도 공범’이라는 말에 동의하는지를 묻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재벌도 공범’이라는 말에 동의하는지를 묻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그로부터 9년 뒤. ‘최순실 게이트’로 떠들썩하기 시작한 지난해 가을, 이 부회장과 삼성이 다시 수사선상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촤순실씨가 주도한 재단들에 재벌·대기업 총수들이 수백억원대 모금을 했다는 의혹이 일었고, 이 부회장과 삼성도 여기서 빠지지 않았다.

검찰은 그를 지난해 11월13일 비밀리에 소환조사했다. 일부 기업 총수들이 공개적으로 포토라인에 서서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와 질문 공세를 받은 반면, 이 부회장은 검찰청사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포착되지 않았다. 검찰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례적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의 혐의는 9년 전 ‘배임 혐의’의 공범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박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했다는 것이 가장 큰 범죄 혐의다. 삼성이 박 대통령과 최씨가 추진했던 K스포츠재단·미르재단에 모두 204억원의 출연금을 내고, 최씨의 독일 현지 법인과 220억원대 컨설팅 계약을 맺는 등 지원을 했다는 의혹이다. 또 삼성 계열사가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를 지원하고 말까지 사줬다는 것도 수사 대상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이 이 같은 지원을 하는 것을 통해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대한 정권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가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압력을 넣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한 것이 그 돈들의 대가라는 것이다.

수백억원대의 뇌물공여라면 특정범죄 가중처벌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일반 배임죄에 비해 형량이 더 세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은 이 부회장이 사건의 핵심인물이라는 점에서 9년 전과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더욱 그룹의 1인자 자리를 굳혀왔지만 불법적인 일을 해가면서까지 무리한 경영을 했다는 점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이 부회장은 자신의 구속여부를 떠나 그룹 경영에서 전면 퇴진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벌·대기업이 정권이 주도하는 재단 사업에 돈을 투자하는 식의 행태는 할아버지인 이병철 선대 회장 때나 했던 ‘정경유착’의 전형이라는 점에서 경영자로서의 그의 자질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9년 전 피의자 신분으로 포토라인에 섰을 때 보였던 미소가 이번엔 쉽게 그의 얼굴에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이 때문에 나온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