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 농단

대법, 우병우에 ‘읍소’하듯…“사법부 진의 상세히 설명”

2018.01.22 23:01 입력 2018.01.22 23:09 수정

법원행정처, 우 전 수석 요구대로 전원합의체에 신속 회부

일부 증거의 쟁점 문제 인지하고도 13 대 0으로 파기환송

직무유기·직권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호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직무유기·직권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호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대법원은 ‘댓글 대선개입’ 사건에 연루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7)에 대한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선처’ 요구를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적극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대법원은 선고 직전 항소심 재판부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시도했고, 선고 후엔 청와대 입장을 주시하며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5년 7월16일 원 전 원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구체적인 심리를 하지 않고 일부 증거를 인정할 수 없다며 파기환송한 배경에는 이 같은 청와대와의 부정한 결탁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도 나온다.

■ 청와대와 대법원의 부정한 결탁

22일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공개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을 보면 당시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와 청와대는 원 전 원장의 항소심 판결 선고 전부터 논의를 해온 것을 알 수 있다. 문건에는 “BH(청와대)의 최대 관심 현안 → 선고 전 ‘항소 기각’을 기대하면서 법무비서관실을 통하여 법원행정처에 전망을 문의”라고 쓰여 있다. 다음 문단엔 법원행정처가 항소심 재판부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답변과 함께 “1심과 달리 결과 예측이 어려우며 행정처도 불안해하고 있는 입장임을 알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아직 상고심으로 넘어오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실형이 선고될까 불안하다는 입장을 청와대에 전했다는 것이다.

선고 후 오간 논의는 더 충격적이다. 문건에 따르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51)이 실형이 선고된 항소심 판결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상고심 절차의 조속한 진행과 전원합의체 회부를 희망하자, 법원행정처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통해 사실상 ‘읍소’한 것처럼 기재돼 있다. “법무비서관을 통하여 사법부의 진의가 곡해되지 않도록 상세히 입장을 설명함”, “법무비서관이 법원행정처 입장을 BH 내부에 잘 전달하기로 함, 향후 내부 동향을 신속히 알려주기로 함”이라는 대목이 그렇다. 당시 곽병훈 법무비서관은 판사 출신으로 법원행정처와 재판연구관을 거쳤고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있다가 청와대에 들어갔다.

■ 대법원, 우병우 ‘전합’ 요구 반영

법원행정처는 선제적으로 대응방향을 세웠다. 법원행정처는 문건에서 “기본적으로 판결 자체에 대한 대응 방법이 마땅한 것이 없다는 것이 민정라인의 답답한 입장”이라고 민정수석실 분위기를 소개하며, ‘신속 처리 추진’을 강조했다. 문건엔 “기록 접수 전이라도 특히 법률상 오류 여부 면밀히 검토 → 공직선거법 제270조의 재판 기간에 관한 강행규정(3개월) 최대한 준수하여 신속 처리”라고 나와 있다.

상고심에서 예상되는 쟁점으로는 법원행정처는 ‘일부 증거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꼽으면서 “항소심에 적시된 사실관계를 단순히 전제 법리만으로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 보임”이라며 “지속적으로 있어왔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비판”이라고 언급했다. 대법원 스스로도 일부 증거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으며 원 전 원장 사건을 파기환송하는 것이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것이다. 문건엔 “(원 전 원장 사건이) 제18대 대선무효 확인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우 전 수석 요구와 일치한다. 그리고 양승태 대법원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심리하지 않은 채 전원합의체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13 대 0으로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소수의견을 내는 대법관이 아예 없는데 왜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는지를 두고 당시 논란이 불거졌다. 법원행정처는 문건에서 원 전 원장 사건과 관련해 정무적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상고심 처리를 앞두고 있는 기간 동안 상고법원과 관련한 중요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추진을 모색하는 방안 검토 가능”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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