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가운 입고 벗고…회진 한 번에 2시간, 환자 앞에선 아파도 아플 수 없는 게 의사”

2015.06.18 22:17 입력 2015.06.18 22:19 수정

자가격리 후 복귀… 건양대 ‘코호트’ 병동 책임 나문준 내과부장

▲ “격리자 불안감 충분히 이해
초기 대처 미흡 사실이지만
의료진을 불신하면 더 혼란”

“많은 어려움과 희생, 아픔이 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병원과 국가·사회적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합니다.”

대전 건양대병원 내과부장 나문준 교수(52)의 표정은 비교적 밝았다. 나 교수가 책임지고 있는 내과병동은 이미 지난달 31일 대전에서 첫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자(16번째 환자)가 나온 직후 폐쇄됐다. 아직도 이 병동에는 62명의 일반 환자가 격리돼 있다.

병원 내 ‘코호트’(감염자 발생 병동을 폐쇄 운영하는 조치) 병동을 책임진 위치에 있지만 나 교수는 불과 며칠 전까지 자가격리돼 병원에 나올 수 없었다. 2주간의 격리기간을 넘기고 지난 15일에야 병원에 복귀한 그는 “동료와 환자들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문준 건양대병원 내과부장이 18일 격리병동에서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들여다보고 있다. | 건양대병원 제공

나문준 건양대병원 내과부장이 18일 격리병동에서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들여다보고 있다. | 건양대병원 제공

건양대병원 내과병동은 지난달 15~17일 평택성모병원에서 국내 첫 메르스 확진자와 같은 병동에 있던 16번째 확진자가 28~30일 입원했던 곳이다. 지금까지 이 병동에서는 10명의 3차 감염자가 나왔다. 16번째 환자 확진 판정 직후 나 교수를 비롯해 이 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4명 중 3명이 자가격리됐다. 그사이 다른 내과 교수들과 전공의들이 투입돼 이들의 빈자리를 메웠다.

나 교수는 1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가격리돼 있는 동안 병원에 있는 동료들과 환자들에 대한 미안함, 감염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등이 겹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심적 고통을 겪었다”며 “의사들도 그런데 일반 환자나 격리자들이 느낄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업무 복귀 당일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환자들이었다. “병원에 오자마자 따로따로 격리된 환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저 건강히 돌아왔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인사드렸어요. 불안해하는 환자들을 안심시키는 게 첫 번째 임무라고 생각했죠. 환자들 모두 다행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시더군요.”

다행히 나 교수 복귀 이후 이 병원에서 추가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4일 간호사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아 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나 교수는 매일 오전 7시 출근하자마자 회진을 하며 격리 환자들의 상태를 살핀다. 환자들이 개인 격리된 병실 하나하나를 드나들 때마다 마스크와 장갑, 비닐 가운을 입고 벗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 30분이면 충분한 회진 시간은 2시간 이상 소요된다. 그는 “회진을 한 번 하고 나면 사실 진이 다 빠지지만 환자들 앞에서 내색을 할 수 없다. 환자들이 힘을 내도록 일부러라도 웃으며 대화하려 노력한다”며 “지금은 환자들의 심리적 안정이 최선의 치료고, 더 이상의 감염자가 나오지 않도록 막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 내과병동은 20일이면 코호트 격리가 해제된다. 남은 이틀이 마지막 고비가 되는 셈이다. “의사도 사람입니다. 왜 감정과 두려움이 없겠어요. 하지만 우리가 무너지면 의료 공백이 생깁니다. 아파도 아플 수 없고 아파도 안되는 사람들이죠. 의료진에 대한 불신과 사회적 냉대가 컸지만 그 와중에도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 많은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의료 현장을 지켜야 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사명감이고 책무죠.”

나 교수는 이번에 현장에서 ‘메르스와의 전쟁’을 치르며 느낀 여러 소회도 털어놨다. “30년 넘게 의사로 일하며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이었죠. 처음에 자가격리 지침도 우왕좌왕하고 보건당국이나 의료진의 대처에도 미흡한 점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와 의료진을 불신하면 혼란은 더 커집니다. 이제는 누구를 탓하기보다 합심해 마지막 고비를 넘어서고, 국가와 의료기관의 방역체계를 새롭게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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