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한 달, 달라진 하루… 밖에 안 나가고, 사람 만나도 악수 꺼려… 손씻기는 몇 번씩

2015.06.18 22:19 입력 2015.06.18 22:43 수정
심진용·김지원·배장현 기자

취미·여가활동 못해… 청정지역 피신 ‘기러기’ 생활도

“정부 못 믿겠으니 스스로 조심해야” 불안한 삶 이어져

시간제로 일하는 손모씨(32)의 일상은 한 달 전만 해도 특별할 게 없었다. 오전 7시30분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고 5살 난 아들을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냈다. 오후 출근 전 주 3일은 지역 문화센터에 나가 요가 수업을 들었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면 대략 오후 8시. 간혹 회식이 있는 날이면 몇 시간 더 늦는 정도였다. 주말이면 아들이 좋아하는 돈가스며 짜장면을 먹으러 외식을 나갔고, 2~3주에 1번씩은 인근 놀이공원이나 캠핑장으로 나들이를 다녔다.

메르스 발병 한 달. 손씨의 생활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들은 유치원에 가도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재미가 없다고 한다. 메르스 때문에 보름여 휴원을 했던 유치원은 이번주 다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도 다른 엄마들은 아이 보내기를 꺼린다. 손씨와 늘 같은 장소에서 만나 유치원 버스가 올 때까지 얘기를 나눴던 이웃집 아이 엄마는 요즘 통 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던 요가 수업은 불안해서 갈 수가 없다. 주말에는 외식 대신 집밥을 해먹는다. 놀이공원·캠핑장 나들이도 사라졌다.

메르스 한 달, 달라진 하루… 밖에 안 나가고, 사람 만나도 악수 꺼려… 손씻기는 몇 번씩

영업사원 박모씨(37)는 며칠 전 거래처 사람을 만나 평소처럼 악수를 청했다. 악수 후 거래처 사람은 “이제 악수는 메르스 끝나고 난 다음에 합시다”라며 웃었다. 박씨는 겸연쩍었지만 틀린 말도 아니란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아내에게 “손 좀 자주 씻으라”는 핀잔을 듣곤 했던 박씨도 이제는 강박증이 있는 사람처럼 손을 수시로 씻는다. 박씨는 “퇴근 후 아이를 안아 주려다가도 ‘아차’ 하면서 손부터 씻고 온다”고 했다.

메르스는 시민들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씻는 박씨처럼 전에 없던 습관이 생겼다. 외출은 최대한 자제한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는 대신 인터넷 쇼핑을 한다. 여가활동도 사라졌다. 자영업을 하는 유모씨(40)는 주말에 야구장 가는 걸 낙으로 삼았지만 메르스 걱정 때문에 최근 한 달 동안 야구장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유씨는 18일 “엊그제 TV로 야구중계를 보는데 텅 빈 관중석 한구석에서 마스크 낀 몇 사람이 점수 났다고 좋아하더라”면서 “부럽기도 하고 용감하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병원이 가장 위험하다는 얘기에 시민들은 아파도 약으로 버티며 끙끙 앓기만 한다. 가족·친지가 큰 병에 걸려도 얼굴 보고 위로하기가 어렵다. 손씨는 시아버지가 충북 한 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았는데도 찾아가지 못했다. 수술받은 병원이 메르스 환자가 거쳐간 곳이라고 했다. 손씨는 “손주 걱정 때문인지 어머님이 ‘절대 오지 말라’고 하시더라”며 “메르스가 뭔지 자식된 도리도 못하고 속상하다”고 했다.

“의사·간호사 선생님 힘내세요” 경기 양평군 양서초등학교 학생들이 18일 메르스와 싸우고 있는 동탄성심병원 의료진에게 쓴 감사 그림과 편지를 펼쳐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의사·간호사 선생님 힘내세요” 경기 양평군 양서초등학교 학생들이 18일 메르스와 싸우고 있는 동탄성심병원 의료진에게 쓴 감사 그림과 편지를 펼쳐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뜻밖의 ‘생이별’로 한숨 쉬는 이들도 생겼다. 올해 초 결혼한 이모씨(32)는 메르스 직격탄을 맞은 경기 화성에서 남편과 함께 살다 최근 서울 은평구 친정으로 ‘피신’을 왔다. 친정어머니가 “불안해서 못 견디겠다. 넘어오라”며 몇 번이나 전화로 독촉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직장이 화성 집 근처라 할 수 없이 ‘기러기’ 신세가 됐다. 이씨는 “남편이 담배를 많이 피워 기관지도 안 좋은데 나만 이렇게 와서 너무 미안하다”며 “매일 전화해서 어디 아픈 데 있어도 절대로 병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고 했다.

메르스 발병 한 달이 지나도록 시민들의 불안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불편한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지만 “알아서 조심하지 않으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진작 바닥났다. 시민들의 불안하고 불편한 삶이 기약 없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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