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대참사 “남대문이 사라졌다”…사태 오판 초기 진화 실패

2008.02.10 23:19 입력 2008.02.11 01:25 수정
송진식·정환보기자 truejs@kyunghy

10일 발생한 숭례문 화재 붕괴 사고는 소방 당국이 불을 초기에 진화하지 못한 것이 화를 불렀다.

11일 새벽 숭례문이 붕괴된 이후 소방관들이 고가사다리차를 이용해 막바지 진화를 하고 있다. <김정근기자>

11일 새벽 숭례문이 붕괴된 이후 소방관들이 고가사다리차를 이용해 막바지 진화를 하고 있다. <김정근기자>

불이 처음 신고돼 소방차들이 출동한 밤 8시50분쯤만 해도 불길은 쉽게 잡히는 듯했다. 그러나 밤 10시40분을 넘어서면서 불길이 2층 누각으로 번졌고, 자정이 넘어서부터는 건물 붕괴 우려 때문에 소방관들도 현장에서 철수한 채 국보 1호 숭례문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소방 당국은 초기에 사태를 오판했다. 불길을 거의 잡은 것으로 판단하고 잔불을 끄는 데 주력하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내부에선 지붕 기왓장과 서까래 사이에 있는 목재에 불이 붙어 천장 등으로 옮아가고 있었다. 기왓장 아래로 불꽃이 튀고 있었지만 소방관들은 내부 구조를 명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외부에서 물을 뿌리는 것으로 충분할 것으로 판단했다.

목조 문화재 전문가로서 경복궁 복원공사 도편수인 신응수씨(대목장·무형문화재 74호)는 “숭례문에 불이 났다는 방송 뉴스를 보고 현장에 가서 소방관들에게 적심(서까래와 기와 사이 목재)의 불길을 잡기 위해서는 기왓장을 뜯어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소방관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국보 대참사 “남대문이 사라졌다”…사태 오판 초기 진화 실패

소방관들은 불이 내부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밤 11시쯤 급히 숭례문 현판을 떨어뜨려 떼어냈다. 또 밤 12시부터 기왓장을 뜯어내 아래로 내던지는 등 건물을 해체하면서 뒤늦게 본격적인 화재 진압에 들어갔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 소방차에서 뿌린 물이 얼어붙으면서 지붕 위에 직접 올라가 해야 하는 기왓장 해체 작업은 실패했다.

숭례문이 국보인 탓에 소방 당국이 독자적으로 진화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웠던 점도 화를 키웠다. 소방서 관계자는 “일부 구조물을 해체하면서 진행해야 하는데 내부 해체는 문화재청과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숭례문 설계도면 확보가 늦어진 것도 불길을 키운 요인이었다. 문화재 관리를 담당하는 문화재청이 대전에 있어 실무 책임자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도 화재가 난 지 2시간여가 지난 밤 11시 이후였다.

이 때문에 화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고 자정을 넘어서면서는 건물 전체로 번져 결국 전소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국보 대참사 “남대문이 사라졌다”…사태 오판 초기 진화 실패


문화연대 황평우 문화재유산위원장은 “불이 적심에 붙었는데 기왓장에만 물을 뿌려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처음부터 기왓장을 뜯고 진화를 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화재 진압을 위해 숭례문 근처 주변 도로 차량 통행이 차단되면서 광화문과 남대문로 및 서울역 일대에 밤 늦도록 극심한 정체가 빚어지기도 했다.

숭례문 현판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이 쓴 것으로 알려졌으며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 작품이라는 설도 있다.

돌들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 송진식·정환보기자/ 동영상 강윤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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