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자살 여중생 담임교사의 심경고백

2012.01.03 03:05 입력 2012.01.03 10:16 수정
대구 | 최슬기 기자

“2차 상담 못한 게 가슴 아파… 지금은 말할수록 아이들에 상처”

“잠도 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상처가 덧날까 가장 걱정입니다.”

지난해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의 여중생 ㄱ양(14)의 담임이었던 ㄴ교사(44)는 “사실이 외부에 잘못 알려져 힘들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아이들의 상처가 자꾸 헤집어지는 것 같아 그게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2일 학교를 찾아가 ㄴ교사를 만났다. 마음고생이 심한 듯 수척해보였다. 그는 “지금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오해나 파장은 물론 아이들의 상처만 커진다”면서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10대가 아프다]대구 자살 여중생 담임교사의 심경고백

그는 “지난해 7월11일 출근하면서 ㄱ양이 교무실에 놓고 간 편지를 보고 수업시간에 들어가 모두 책상 위에 꿇어 앉아 눈을 감으라고 한 뒤 10~20분가량 훈계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 생활 19년 동안 제가 맡은 반의 급훈은 늘 ‘더불어 함께하는 삶’이었다”면서 “아이들에게도 ‘강자는 과시하지 말고, 약한 사람은 주눅들지 말고 서로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타일렀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1교시 전 명상시간에 ㄱ양 부모님이 교무실로 찾아왔는데, ㄱ양 (자살)소식을 들었다”며 “자살 이야기를 듣자 아이(ㄱ양)한테 가야겠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ㄱ양이 책상 위에 남긴 편지도 이날 부모에게 건네줬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들을 훈계한 날이 월요일이었는데 우리 학급 수업이 가장 많은 날이었다”며 “1차로 전원을 훈계한 뒤에 ㄱ양을 따로 불러 2차 상담을 했더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7교시 수업을 마친 뒤 바로 직원 회의가 있어서 ‘그러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리고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다른 날 같으면 6교시 후에 30분간 독서 시간이 있어 그때를 이용해 상담한다는 것이다.

친구들 사이의 집단 따돌림을 편지로 알리고 바로잡아달라고 한 학생(ㄱ양)을 찾기 위해 학급 전체를 벌세웠다는 학부모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주장이 있다는 것도 언론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그는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당혹스럽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이 잘못 알려져 힘들지만 지금은 친구의 죽음에 따른 아이들 상처를 보살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ㄱ양이 숨졌을 때의 심경을 이야기하다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ㄱ양이 숨진 지 2~3일쯤 뒤 같은 반에서 난치병을 앓아오던 다른 학생도 숨졌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아이들을 잇따라 잃고…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며 한참을 울먹였다. ‘유가족에 비하지는 못하겠지만’ 제자를 잃은 슬픔과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8일 동안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ㄱ양의 부모가 딸이 교통사고로 숨진 것으로 전해달라고 해 ‘아이들에게 그렇게 알려줬다’고 말했다. 장례를 모두 마칠 때까지 유족들과 함께 있었고, 부모와 손을 맞잡고 울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자살 사건) 다음주 화요일쯤 교감으로부터 학부모님 입장이 바뀐 것 같다는 말씀을 듣고 ㄱ양 집을 방문했다가 이전과 달리 유족들로부터 ‘뻔뻔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어떤 이야길 해도 학부모에게 서운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단지 “(교사직을) 밥벌이로만 생각하지 않았고, 교사로서 손가락질받을 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ㄱ양)이는 내 제자다.”

그는 “(ㄱ양의 죽음이) 한평생 내가 안고 가야 하는 문제이지만 개인적 아픔보다 지금은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여름방학인 지난해 8월 초순쯤 직위해제됐다.

ㄱ교사는 5개월여 뒤인 지난달 20일 같은 학교에서 남학생까지 자살하자 자신이 담임을 맡았던 40여명의 학생이 가장 걱정됐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상처가 겨우 아물려는데 또다시 상처를 떠올리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이 잘못 알려졌더라도 이를 바로잡는 것보다 아이들의 상처를 헤집는 일을 막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냥 제가 매를 맞겠습니다.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테니까요.”

그는 “아이들이 아닌 어른 사이의 일이라면, 또 죽음이란 문제가 아니라면 다르게 대응하겠지만 그런 게 아니지 않으냐”며 “지금은 아이들의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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