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 얼굴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때 수습해 줬으면…”

2014.04.27 21:35 입력 2014.04.27 22:05 수정
진도 | 권순재·박용근·조형국 기자

진도체육관·팽목항 이모저모

500명만 남아… 시신 찾아 떠난 빈자리 적막감만

“하늘도 돕지 않아, 이젠 누구에게 화내야 하나”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12일째인 27일 오후 12시20분. 비바람이 몰아치는 전남 진도 팽목항 한쪽에서 우산을 쓴 한 40대 남성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주먹을 꼭 쥔 채 눈물만 흘렸다. 표정에 변화나 흐느낌도 없었다. 턱을 따라 흘러내린 눈물이 우의에 닿아 땅에 떨어질 때까지도 눈물을 훔치지 않았다.

이 남성을 지켜보던 한 실종자 가족은 “하늘마저 돕지 않는다”며 “이젠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은 울부짖음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적막만이 흘렀다. 시신수습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 다른 유가족의 빈자리는 그 어느 때보다 커보였다. 가족들의 빈자리엔 단정하게 정리된 모포만이 남아 있었다.

<b>이제는 비마저…</b>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12일째인 27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기상악화로 구조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 실종자 가족이 고개를 떨군 채 슬픔에 잠겨 있다.  진도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이제는 비마저…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12일째인 27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기상악화로 구조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 실종자 가족이 고개를 떨군 채 슬픔에 잠겨 있다. 진도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 모여 있는 실종자 가족의 수는 크게 줄었다. 지난 16일 사고 이후 체육관과 팽목항에는 1200여명의 가족이 운집해 있었지만 이날 현재 500명 정도만 남아있다.

이들이 감당하는 고통은 시신을 찾아 집으로 떠난 이들의 갑절에 이르고 있다. “한명의 생존자라도 있다면 끝까지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사고 12일째 접어들면서 체념한 분위기로 바뀐 모습이다.

실종자 가족 박모씨(53)는 “마음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졌고 인양 소식도 아직 들리지 않는다”며 “시신이라도 찾아낸 사람들은 그나마 위안이 될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인양 소식을 듣고 달려 나가는 유족들이 부럽기까지 하다”며 “내 새끼 얼굴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때 인양해 줬으면 좋으련만 지금도 구조·수색하는 것을 보면 기가 차 말이 안 나올 지경”이라고 전했다.

사고 발생 후 체육관에서는 간간이 정부를 향해 고성을 지르며 분노를 표출하는 가족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침묵만 흐르고 있다. 대낮인데도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꿈쩍 않는 가족도 목격된다.

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 심리치료를 돕고 있는 윤재진 마인드힐링 상담센터 대표는 “실종자를 찾지 못한 가족은 지금 슬픔에 무너지고 체념과 무감각 상태로 남아 있다”며 “이대로 남는 이들은 점점 황폐화되는 시기에 접어들지만 가족간 위로도 힘이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당장 구조·수색에 모든 신경을 쏟으며 슬픔을 이겨내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생계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이 가족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구조·수색이 10일을 넘긴 데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막막한 상태에서 생계문제는 또 하나의 걱정거리다.

대형마트에서 일했다는 한 실종학생 어머니는 “직장에 사정은 이야기해 놓았지만 만약 어렵다면 사직할 생각”이라며 “생계도 걱정되지만 차디찬 바닷속에서 떨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실종학생 어머니는 “일이 우선이 아니다”라면서도 “애가 찬 바닷속에서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을 텐데 생계까지 걱정해야 하는 이 상황이 야속할 뿐”이라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