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파파

교황이 마지막까지 챙긴 ‘이 땅의 낮은 사람들’

2014.08.18 22:04 입력 2014.08.18 22:36 수정
박은하·박순봉·박철응·나영석·백승목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마지막 일정의 주인공은 ‘끝나지 않은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이었다.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화해와 평화를 위한 미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쌍용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과 경남 밀양 주민, 용산참사 피해자들이 초대받아 참석했다. 이들은 미사가 끝난 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평화, 화해, 대화, 정의, 비인간적 경제모델 거부 같은 교황의 메시지를 두고 한국 사회가 깊이 되새기며 실천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미사를 집전한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경남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인 한옥순씨(왼쪽)와 정임출씨가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로 “죽음의 송전탑에서 저희를 살려달라”라고 쓴 손수건을 들고 있다. | 독자 최민자씨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미사를 집전한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경남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인 한옥순씨(왼쪽)와 정임출씨가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로 “죽음의 송전탑에서 저희를 살려달라”라고 쓴 손수건을 들고 있다. | 독자 최민자씨 제공

■ 위안부 피해 할머니
“평화는 정의의 실현… 일 사죄해야 평화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이라는 교황의 말에 공감했다. 15세 때 일본군에 끌려간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87)는 “한·일 양국이 화해하고 평화롭게 지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책임있는 사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다른 생존자 6명과 함께 휠체어에 앉아 맨 앞줄에서 미사에 참석했다.그는 “살아있는 동안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는 말을 못 전해 아쉽다. 우리가 역사의 산증인임을 잊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쌍용차 해고 노동자
“교황이 말한 비인간적 경제모델은 비정규직”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44)은 “교황이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비인간적 경제모델’을 비판했는데 한국에서는 정리해고나 명예퇴직 등으로 일터에서 쫓겨나는 노동자가 한 해에 200만명 이상에 이르고, 그 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진다”면서 “교황의 메시지는 기업의 탐욕을 위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치의 확산이라는 과제를 준 것”이라고 했다. 김 지부장은 “교황이 갈등을 넘어선 화해를 강조하셨는데, 그 말씀이 가장 절실한 곳이 쌍용차”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이 대화였다. 교황 말씀의 취지대로 회사 측이 법정 공방 대신 대화에 나서주기를 바라며 정부도 해고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제주 강정마을 주민
“정부, 이제 평등한 대화로 문제 해법 찾아야”

제주 강정마을 주민 대표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사회가 제대로 된 정의를 찾아야 한다”고 밝힌 것을 “우리들에게 보낸 최고의 찬사”라며 반겼다.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51)은 “그동안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던 주민들은 ‘종북주의자’ 등으로 매도당했으나, 교황의 말씀을 들으며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정부가 일방적 대화가 아닌 ‘평등한 대화’로 문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주민 의견을 귀담아 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난 15일 교황이 서강대 예수회 공동체를 방문해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앞장서 온 김성환·김정욱·이영찬 신부에게 “ 최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격려한 일에도 감사를 표했다.

■ 용산참사 피해자
“소외된 자 만드는 잘못된 정책 맞서 싸울 것”

이충연 전 용산 철거민대책위원장(41)은 “용산참사가 벌어진 지 6년이 다 됐지만 변한 것은 없다. 교황의 메시지를 우리 사회가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은 “교황께선 소외되고 가난한 자를 만드는 잘못된 제도와 정책에 맞서 싸우라고 하셨다. 용산참사도 잘못된 개발정책 때문에 생겨난 철거민들의 저항이었다”며 “세월호 사고도 다르지 않다. 용산참사 당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 잘못된 개발정책을 바꿨다면 세월호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경남 밀양 주민
“죽음의 송전탑과 맞설 용기·희망을 얻었다”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주민들은 교황 집전 미사에서 “새 용기를 얻고,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최민자씨(60)는 “ 교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옥순씨(67)는 “교황께서도 (우리와) 소통하려는데,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소통하지 않으려는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께서 ‘없는 자도 있는 자에 맞서 싸우라’고 한 메시지에 감동을 받았다. 송전탑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투쟁하겠다”고 했다. 이들은 각각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로 ‘죽음의 송전탑에서 저희를 살려주세요. 원전 반대’라고 쓴 손수건을 성당 안에서 펼쳐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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