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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아파트 승강기 밑 ‘기초철근’ 절단 뒤 6년간 ‘쉬쉬’ 의혹

2017.10.10 06:00 입력 2017.10.12 17:24 수정

서울 성동구 금호동 ㅅ아파트 3개 동 현장점검서 확인

2011년 대우건설의 서울 금호동 아파트 공사 당시 승강기 밑에서 작업인부가 기초 콘크리트벽을 깨고 철근을 잘라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왼쪽). 당시 승강기 입구에는 철근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이미지 크게 보기

2011년 대우건설의 서울 금호동 아파트 공사 당시 승강기 밑에서 작업인부가 기초 콘크리트벽을 깨고 철근을 잘라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왼쪽). 당시 승강기 입구에는 철근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지난달 8일 오후 2시 서울 성동구 금호동 ㅅ아파트 0000동 엘리베이터 출입구는 한 무리의 사람들로 웅성웅성했다. 대우건설이 2011년 아파트를 지으면서 3개 동의 승강기 출입구 쪽 하단의 기초철근을 잘라냈다는 다소 믿기 어려운 제보를 확인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성동구청 주거정비과 직원 2명, 구청의 연락을 받고 온 구조기술사,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제보를 접수한 경향신문 기자까지 5명이 현장점검에 참여했다.

대우건설의 서울 금호동 아파트 기초 철근 절단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8일 실시한 현장점검 당시 경향신문 기자가 직접 승강기 밑의 1.9m 피트 바닥면으로 내려가고 있다.

대우건설의 서울 금호동 아파트 기초 철근 절단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8일 실시한 현장점검 당시 경향신문 기자가 직접 승강기 밑의 1.9m 피트 바닥면으로 내려가고 있다.

승강기 안전점검 회사 직원이 승강기를 위쪽으로 들어 올리자 바닥면 아래쪽의 피트가 드러났다.

피트는 승강기 추락 시 충격 완화를 위해 승강기가 바닥면보다 1~2m 정도 더 아래로 내려가 정지할 수 있도록 확보한 빈 공간을 말한다.

현장에서 본 피트의 깊이는 대략 1.9m, 가로 세로는 각각 2m와 4m쯤 돼 보였다. 피트 바닥면에는 물을 모으는 집수정과 승강기 와이어를 움직이는 장치들이 보였다.

[단독]대우건설, 아파트 승강기 밑 ‘기초철근’ 절단 뒤 6년간 ‘쉬쉬’ 의혹

제보자 ㄱ씨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2011년 이 아파트의 승강기 설치공사를 앞두고 중대한 시공상 하자를 발견했다. 3개 동 피트 벽면이 승강기의 운행통로와 서로 어긋나도록 시공된 것이다. ㄱ씨는 당시 비정규직 현장직원이었다.

“먹반장(기준선을 긋는 사람)이 먹(기준선)을 잘못 긋는 바람에 피트가 한쪽으로 밀려버렸다. 그대로 시공하면 턱에 걸려 승강기가 내려가지 않으니 승강기가 움직일 만큼 출입구 쪽 기초 30~40㎝를 잘라낸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건물을 지탱하는 기초를 위험하게 잘라내고 아무런 보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군가 보면 안 되니까 직원들이 일요일에 나와서 일을 했다. 자동 절삭기로 기초 콘크리트를 깨 내고 산소 절단기로 철근을 잘라냈다. 잘라낸 기초철근이 엄청 쏟아져 나왔다. 수직하력을 받는 기초를 잘라냈으니 보수가 필요했지만 승강기 설치공사를 지연시킬 수 없어 잘라낸 면을 미장으로 살짝 발라 놨다.”

2012년 8월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제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가 먼저 이동식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고 뒤따라 구조기술사와 구청 직원도 내려왔다. 피트 벽면을 직접 보기 전까지 제보자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기자가 유일했다.

제보자 ㄱ씨의 증언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2015년 2월 대우건설이 수원 광교에 46층 주상복합아파트를 건설할 당시 부실시공 사진을 가지고 현장소장을 협박한 죄로 긴급체포됐다. 그는 경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의 주장이 허위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수원 광교뿐 아니라 2011년 서울 금호동 현장에서 촬영한 부실시공 사진도 함께 제공했다.

3장의 현장 사진에는 ㄱ씨 증언과 부합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승강기 밑의 피트에서 작업인부가 절삭기를 가지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고 승강기 출입구 주변으로 철근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ㄱ씨의 증언은 대우건설에 의해 허위제보가 됐다. 대우건설은 “시공상 하자로 피트면을 일부 잘라낸 것은 맞지만 적법하게 보수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에 보이는 철근들에 대해서는 “피트 벽면에서 잘린 게 아니라 보수를 위해 가져온 철근”이라고 했다.

서울 성동구청은 대우건설의 주장을 그대로 믿고 사실확인을 의뢰해온 경찰에 전달했다. ㄱ씨의 주장은 허위사실이 됐고 그는 협박죄로 1년의 실형을 살고 나왔다.

금호동 ㅅ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기초철근 절삭 사진은 올봄 경향신문이 대우건설의 수원 광교 주상복합아파트 부실시공 취재 과정에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어렵게 ㄱ씨와 통화가 이뤄졌지만 그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협박죄로 살다가 나온 놈이 뭐라고 한들 사람들이 믿겠냐”고 했다. 그는 ‘아파트 주민들이 현장점검에 동의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직접 가보면 내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ㄱ씨와 함께 2011년 금호동에서 공사를 진행했던 대우건설 김모 과장은 다른 주장을 했다.

“시공 실수로 잘못 돌출된 부분이 있어 (피트 벽면을) 깎아낸 것은 맞지만 두께가 40㎝는 아니고 4㎝ 정도다. 할석 부위는 다시 철근을 배근하고 (고강도) 무수축 모르타르로 타설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피트를 잘라낸 후 아무런 보강작업 없이 눈속임으로 일반 모르타르로 마감했다고 주장한 반면 김 과장은 적법하게 다시 철근을 넣고 무수축 모르타르로 보강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ㄱ씨와 김 과장의 주장이 팽팽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현장점검에 나온 사람들은 대체로 대우건설을 신뢰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컴컴한 공간에서 손전등이 켜지고 6년 동안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피트 벽면이 드러나는 순간 분위기는 반전됐다. 피트 벽면은 4면이 모두 일반 미장으로 마감돼 있었다. 특히 잘린 벽면은 급하게 마감을 한 듯 흙손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무수축 모르타르로 보강했다고 보기에는 표면이 거칠었고 여기저기 곰보 자국도 보였다. 대우건설의 거짓 해명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대우건설이 2011년 금호동 15층 아파트 시공당시 승강기 하단 기초 콘크리트를 잘라낸 후 미장한 부위. 무수축 모르타르로 보강했다는 대우건설 주장과 달리 일반 모르타르를 이용해 흙손으로 마감한 흔적이 역력하다.

대우건설이 2011년 금호동 15층 아파트 시공당시 승강기 하단 기초 콘크리트를 잘라낸 후 미장한 부위. 무수축 모르타르로 보강했다는 대우건설 주장과 달리 일반 모르타르를 이용해 흙손으로 마감한 흔적이 역력하다.

경향신문이 현장에서 찍은 동영상과 사진들을 본 현장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건 한눈에 봐도 무수축 모르타르가 아니다”라고 했다. 삼성엔지니어링에서 20년 근무한 한 건축설계회사 임원은 “무수축 모르타르의 경우 시공 후 색깔이 거무튀튀하게 변하는데 사진에 나온 미장면은 색깔부터 확연하게 다르다”고 했다.

무수축 모르타르로 보강했다는 대우건설의 주장이 흔들리면서 기초 콘크리트를 잘라내고 철근을 다시 배근했다는 주장도 의심을 받게 됐다. 현장점검에 나선 강정임 다원 구조기술사회 소장은 “육안 점검으로는 철근 절단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공신력 있는 기관에 의한 비파괴검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청도 강 소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지난달 19일 대우건설에 공문을 발송했다.

구청 측은 “잘린 피트 벽면에 대한 철근 배근 및 무수축 모르타르 보수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주민들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도록 정밀안전진단을 하라고 대우건설에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건축구조기술사회는 “승강기 밑 기초가 40㎝ 절단됐다고 해서 당장 건물 구조에 심한 변형을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정밀안전진단이 필요하고 더 이상 피로를 막기 위해 하자를 시급히 보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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