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탄 위안부 소녀상을 어떻게 봐야할까

2017.11.30 10:31 입력 2017.11.30 16:03 수정

위안부 기림일인 지난 10월 1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정의기억재단이 신고된 500명을 기리는 소녀상 500개를 전시하여  이름 없이 사라져간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캠페인을 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위안부 기림일인 지난 10월 1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정의기억재단이 신고된 500명을 기리는 소녀상 500개를 전시하여 이름 없이 사라져간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캠페인을 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2011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김서경·김운성 작가 부부가 만든 작품이었다. 이후 소녀상은 일본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힘으로 전국 방방곡곡과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7월 국내 한 버스 회사는 세계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자비로 소녀상을 만들어 시내버스 안에 놓기도 했다. 지난 10월 추석 연휴에는 이 소녀상이 전국 각지로 출발하는 귀향 버스에 태워졌다.

소녀상이 위안부 문제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미술의 관점에서 소녀상을 논하는 자리가 지난 2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여성연구원에서 열렸다. 이는 여성연구원이 ‘일본군 위안부와 기억의 문화정치’라는 주제로 3차에 걸쳐 준비한 월례 포럼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소녀상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미술작가 정은영씨(43)는 “소녀상은 끊임없이 사회·정치적 논쟁을 쉬지 않게끔 하는 의미와 성과가 크다고 본다”면서도 “이제 최초 작가들이 만들어놓은 상징을 단순히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성찰로 나아가 새로운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술작가 정은영씨가 지난 2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에서 열린 포럼에서 참석자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심윤지 기자.

미술작가 정은영씨가 지난 2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에서 열린 포럼에서 참석자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심윤지 기자.

스스로를 “아티스트보다는 실천가에 가깝다”고 표현하는 정씨는 비디오 미술 작업을 주로 해왔다. 대표작으로 남성 역할을 맡은 젊은 국극 여성배우들을 소재로 2008년부터 진행한 ‘여성국극프로젝트’, 동두천 여성 거주민의 삶과 죽음을 담은 비디오 및 설치작품인 ‘동두천 프로젝트’(2008) 등이 있다.

■ 소녀상은 옳은 재현일까

이날 포럼의 주제는 ‘소녀상을 둘러싼 재현과 비재현의 윤리적 경합’이었다. 정 작가는 작품이 타인의 고통을 재현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윤리적인가는 예술사적으로 중요한 주제라고 했다. 정씨에 따르면 미국은 9·11테러 이후 희생자들을 기리는 조형물을 제작하려 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세우지 않았다. 어떠한 상징물도 희생자들의 고통을 온전히 재현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재현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예술가의 소임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어떻게든 타인의 고통을 알리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이며, 재현을 포기하는 것은 이러한 의무를 방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정씨는 “많은 예술 작품들에는 타인의 고통을 재현할 수 있는지, 재현과 비재현 중 어느 것이 더 윤리적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그는 같은 질문을 소녀상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고 봤다. 2011년 주한 일본 대사관 건너편에 첫 번째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이후, 소녀상 건립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소녀상은 위안부 강제동원이라는 고통의 역사를 제대로 재현하고 있는걸까.

정씨는 하나의 대답을 제시하는 대신 소녀상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소개했다. 소녀상의 앙다문 입술이 위안부 여성의 단호함과 의지를 잘 드러낸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일본 대사관 앞에 앉아있는 소녀의 모습이 무기력해 보여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 순수하고 순결한 ‘소녀’ 이미지가 여성을 대상화한다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는가하면, 자발적 성매매를 주장하는 일본 측 주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라는 평가도 있다.

학계에서도 소녀상은 논쟁적인 주제다. “소녀상은 평균 연령 25세였던 위안부의 대부분이 소녀였던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들고 ‘소녀 위안부’의 기억을 강화시켜나간다.”(박유하 세종대 교수), “다른 장소에 ‘소녀상’을 설치할 기회가 있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소녀의 ‘성노예’로서의 실존을, 그 고통에 찬 삶의 서사를 생생하게 표현했으면 한다”(이태호 경희대 교수)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추석을 앞둔 지난 10월 2일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추석을 맞이해 귀향하는 여원동씨 가족이 평화의 소녀상과 고향 대구로 향하고 있다.  이 소녀상 은 세계 위안부의 날을 맞아 동아운수 151번 버스에 태워졌던 ‘평화의 소녀상’이다./권호욱 선임기자

추석을 앞둔 지난 10월 2일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추석을 맞이해 귀향하는 여원동씨 가족이 평화의 소녀상과 고향 대구로 향하고 있다. 이 소녀상 은 세계 위안부의 날을 맞아 동아운수 151번 버스에 태워졌던 ‘평화의 소녀상’이다./권호욱 선임기자

■ “의미의 변주 넘어 확장이 필요”

소녀상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소녀상의 형태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왜 소녀상의 소녀는 늘 수동적으로 앉아만 있나’는 비판이 제기되면 의자 옆에 서있는 소녀상(2014년 1월 거제도)이 등장하고, ‘왜 위안부상은 늘 소녀의 모습만 하고 있냐’는 지적이 나오면 소녀와 할머니가 같이 서있는 동상(2017년 8월 광주남구)이 제작되는 식이다. 지난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한국, 중국,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3명의 소녀가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기림비의 제막식이 열리기도 했다.

다만 소녀상에 담긴 예술적 상상력은 여전히 빈곤한 수준이라고 정씨는 말한다. 그는 “많은 소녀상들이 ‘동상’과 ‘소녀’ ‘평화’의 결합이라는 초기 소녀상의 상징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의미적 변주는 이뤄도 의미적 확장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소녀상이 소비되는 최근의 양상이 지나치게 가벼워지고 있음을 경계했다. 버스를 탄 소녀상, 소녀상 귀향하기 프로젝트 등 소녀상이 정치적 이벤트의 소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경향을 꼬집은 것이다. 정 작가는 “소녀상이 옳은 재현인가 아닌가를 떠나 ‘좋은 재현’이란 무엇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작가는 소녀상을 이제는 단순한 미술작품이 아닌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용자의 참여로 작품의 의미를 완성해간다는 점에서 소녀상은 현대미술의 가치를 잘 구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소녀상 지킴이를 자처하며 소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여고생들, 남편인 김운성 작가조차 ‘소녀’의 몸을 만지는게 싫어 몸 부분을 직접 작업했다는 김서경 작가 등 개인들에게 소녀상에 관한 수많은 서사가 만들어지고 있음에 주목한다.

다만 그는 이제‘소녀’와 ‘동상’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소녀상을 취미 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작품 가치가 높지 않을 수 있지만, 끊임없이 사회정치적 논쟁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 성과는 크다고 본다. 다만 소녀상과 관련된 논의는 이미 나올 대로 나왔다고 본다. 이제는 기존 작가들이 만들어놓은 상징을 단순재생산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작품이 나와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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