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손놓고… ‘쉬운 해고’만 찾는 정부

2015.03.25 22:20 입력 2015.03.25 22:22 수정
강진구 기자

하이디스, 기술 특허만 팔고 폐업… 노동자 377명 내달 집단해고 위기

2년간 대기업 3만명 ‘칼바람’에도 정부선 “과보호”… 규제 완화 혈안

노사정위에 3월 내 ‘대타협’ 압박

“한국 정부가 지켜주지 못한 일자리를 되찾으러 대만의 양심에 호소하러 왔다.”

25일 대만의 타이베이 도심 한복판에서 악에 받친 한국말이 들렸다. 경기 이천에서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를 만드는 하이디스 노동자 29명이 원정 시위에 나선 것이다. 빗속에서는 삭발식도 이어졌다. 하이디스 노동자 377명은 다음달 1일이면 집단해고될 운명에 처해 있다. 2008년 회사를 인수한 대만의 이-잉크(E-lnk)가 핵심 기술인 광시야각기술 사용권을 경쟁업체에 팔아 2028년까지 한 해 1000억원대의 특허사용료를 챙기면서도, 정작 생산 과정은 이익이 안 난다고 공장을 접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회사로부터 ‘3월31일 공장 폐쇄, 4월1일 정리해고’ 방침을 통보받은 노동자들은 “제2의 쌍용차 먹튀 사태가 될 수 있다”며 국회·노동청·산업통상자원부 등을 찾아 하소연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경영상 이유로 문 닫겠다는 회사를 행정력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 하이디스를 관할하는 고용노동청 성남지청 김병철 근로감독관은 “부당해고에 대해 형사처벌이 없어진 데다 웬만하면 법원이 정리해고에도 경영상 판단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라 행정지도가 먹혀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고의 절벽’에 내몰린 것은 하이디스뿐이 아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분석 결과 2013~2014년 2년간 길거리로 내몰린 노동자가 주요 대형사업장에서만 3만명을 넘어섰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정리해고나 희망퇴직의 칼바람을 맞은 정규직들이다. 증권사에서만 6241명이 감원됐고, 건설사에서 8632명, KT에서 8320명이 구조조정됐다. 하지만 3월 말 ‘대타협’을 추진하는 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는 현실과 거꾸로 가고 있다. ‘저성과자 해고’를 보다 쉽게 하고, 비정규직 기간제를 4년으로 늘리며, 파견업종 제한의 벽을 허물려 하고 있다. 회사가 악용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독소’들이다. 이상목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은 “하이디스 공장 폐쇄가 인정되면 대한민국 정리해고의 빗장이 다 풀리는 것”이라며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청년실업이 ‘정규직 과보호 때문’이라며 노사정위에서 해고 요건 완화에만 열을 올리는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청년실업을 풀어보겠다는 정부가 정작 지금 있는 일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한숨이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