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주식은 ‘모름의 철학’…부디, 시간을 견디는 돈으로 하길

2020.10.21 06:00 입력 2020.10.27 14:03 수정

2030세대의 주식 열풍에 사회적으로 우려의 시선이 쏟아진다.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짧고 강렬한 경험을 거치며 시장을 너무 만만하게 보게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많은 투자자들을 절망케 한 2000년대의 닷컴버블이 앞선 세대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동학개미운동에 합류한 청년 투자자들이 건강한 ‘장기 투자자’가 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지난 25년간 증권업계에서 시장의 흥망을 지켜본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50)을 최근 만났다. 지금 증시는 ‘버블’인지, 버블이 꺼지면 어떻게 되는 건지 물어보려 하자 “주식은 모름의 철학”이란 말이 나왔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무엇을 믿고 투자를 할까. 김 센터장은 개별 종목도 경기 예측도 아닌 “돈의 성격”이 투자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했다. 위기에도 버틸 수 있는 돈으로 투자해야 손실을 면하고, 간혹 큰 수익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17일 김 센터장을 만났고 여러 번의 통화로 인터뷰를 보완했다. 내용을 문답식으로 전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신영증권 본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신영증권 본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짧은기사로 보기▶“젊음의 가장 큰 자산은 긴 시간…빚 아닌 ‘감당 가능한 돈’ 묻어야”

#이번 주식 열풍, 정말 과거와 다를까

-대학생들까지 주식 투자에 나서는 것을 보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실은 청년들 뿐만 아니라 전 세대가 다 투자에 몰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주식 투자는 하고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금리가 낮으니 예적금 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는 것이 합리적이지요.”

-다른 자산군 보다 주식에 투자하는 게 좋다고 보시는 이유는 뭔가요?

“소액으로 할 수가 있죠. 또 주주가 되는 것은 기업을 도우면서 부를 나눠가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내가 어느 기업의 주식을 사면 이 기업의 훌륭한 직원들이 나를 위해 일해주는 것이 됩니다.”

-이전에도 주식 열풍이 있었을 텐데요.

“지금 쓰시는 주식 열풍 기사들 있죠? 10년 전, 20년 전 신문을 찾아보시면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거에요. 1999년에 바이코리아펀드, 2007년에 인사이트펀드 같은 주식형 펀드가 유행했어요. 2008년 이후 12년 만에 주식 투자 열풍이 돌아온 겁니다.”

-윗세대로부터 ‘주식하면 망한다, 절대 하지 마라’는 말을 흔히 들었습니다.

“나쁜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에요. 굉장히 비싼 가격에 들어가서 손해를 본 경험이 있는 것이죠.”

-어쩌다 비싸게 샀을까요.

“미국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가 이런 말을 했거든요. ‘친구가 부자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보다 사람의 판단력을 더 흐리게 하는 일은 없다’라고요. 지난 8~9월에 나타난 센티멘트(주식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와 심리적 요소)가 꼭 그렇습니다. 투자를 하지 않던 사람들이 주변에서 돈 버는 걸 보니까 ‘나만 바보같다’ 생각하고 주식을 사기 시작한 거에요.”

-SK바이오팜부터 빅히트엔터테인먼트까지 최근의 공모주 열풍도 그런 걸까요.

“마치 상한가에 대한 확실한 법칙이 있는 것처럼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빚을 당겨 주식을 받았어요. 이 양상은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때와 똑같습니다. 상장 일주일도 안 돼 ‘얼마가 올랐다’ 혹은 ‘과잉 투자다’ 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요. 투자자와 미디어의 시각이 모두 굉장히 단기적이란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증시란 아주 심리적인 영역이군요.

“투자라는 게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돈을 버는 거거든요. 과거 국내 가계가 주식 투자에 실패했던 이유는, 너무 비싼 가격대에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마음의 인지적 속성은 가격이 오르면 겁이 없어지고, 가격이 떨어지면 겁이 많아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 미래를 예측할 때는 대부분 지금 경험하고 있는 현재나 가까운 과거에 비추어 생각하게 되거든요.”

-반면 동학개미운동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나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로 국내 증시에 돈이 70조원 정도 들어왔어요. 이 중에 먼저 들어온 30조원은 특별한 것 같아요.

전에는 우리 증시가 어떤 모양새였냐 하면, 주가가 쌀 땐 외국인이 사고, 바닥에서 최소 70%가 올라가면 그때부터 주식형 펀드 형태로 돈이 들어오곤 했거든요? 1999년, 2008년에도 ‘외국인으로부터 한국 증시 독립’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많이 나왔어요. 외국인이 팔면 국내 가계가 고점에서 간접투자 형태로 샀던 거죠.”

-올해의 양상은 다르다고 보시는 건가요?

3~4월에 주식을 샀던 사람들은 매우 예외적이에요. 늘 바닥에서 외국인이 사고 한국인이 나중에 샀는데, 이번엔 개미들이 낮은 가격에 산 거거든요. 이건 우리 자본시장 역사상 없던 일이에요. 뭔가 ‘스마트한’ 성격의 돈인 것이죠. 가격이 낮을 때 주식을 샀던 ‘용기 있는 돈’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뒤늦게 들어온 나머지 40조원은 과거와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1999년 4월15일자 경향신문은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마땅히 돈을 굴릴 데가 없게 되자 시중 자금이 급속히 증시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증권사들이 주식형 수익 증권과 뮤추얼펀드 같은 간접투자 상품을 내놓으며 흐름을 주도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1999년 4월15일자 경향신문은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마땅히 돈을 굴릴 데가 없게 되자 시중 자금이 급속히 증시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증권사들이 주식형 수익 증권과 뮤추얼펀드 같은 간접투자 상품을 내놓으며 흐름을 주도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위기를 견디는 돈으로 투자하라

-그럼 올해 8~9월에 주식을 사면 안 되는 거였나요?

“아닙니다. 주식을 샀다면 비관론의 편에 서는 것은 좋지 않아요. 우리나라 코스피 지수가 1972년 만들어졌어요. 올해까지 마흔아홉해 중에 이 지수가 오른 게 34번, 떨어진 게 15번입니다. 오를 확률이 2배이지요? 한국 경제에 대한 온갖 비관론들이 많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코스피가 2년 연속 떨어진 적도 없었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주식은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고 믿고 있더라고요.

주가지수의 장기적 추이를 결정하는 변수는 경제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나라에서 국내총생산(GDP)이 오르는 만큼 주가도 오르거든요. 경제가 커가는 만큼 주가도 올라가는데, 그동안 경제가 역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으니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한번,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한번, 그리고 올해가 세번째입니다. 드문 일이에요. 물론 경제는 매우 완만하게 성장하는 데 반해 주가는 진폭이 커 시장은 늘 ‘버블’과 ‘역버블’을 만들고는 하지만요.”

-그런데도 실패의 가능성이 있으니 다들 걱정하는 게 아닐까요.

“너무 비쌀 때 사는 게 항상 문제입니다. 주식은 장기적으로는 우상향이라고 보지만, 시장의 몰입이 생길 땐 주가가 과도하게 높아지는 ‘버블’이 만들어져요. 한국 사람들은 늘 그 때 투자해서 실패했죠.”

-‘그 때’ 샀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것이나마 계속 들고 있으면 손해는 안 보거든요. 바이코리아 펀드가 반토막이 났지만 시간을 아주 장기로 두고 보면 ‘이긴’ 거에요. 인사이트 펀드도 70%까지 깨졌지만 결국은 플러스 수익률을 냈거든요. 주식이라는 게 실물경제 성장을 반영하는데, 변동성은 실물경제보다 훨씬 커요.”

-지금이 버블인지, 비싸게 산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투자는 그걸 맞추는 게임이 아니에요. 버블이 얼마나 부풀어 오른 다음에 터질 지는 알 수가 없어요. 한꺼번에 사지 말고 분할 매수하라, 한 종목에 다 넣지 말고 분산 투자하라는 철학, 이게 ‘공자님 말씀’ 같지만 정말 중요해요. 주식이란 ‘모름의 철학’이거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위기가 오더라도 견딜 수 있는 돈으로 투자를 하는 것 뿐이에요. 이 돈이 있으면 이길 확률이 높아요.”

-투자자들은 저마다 미래예측을 하면서 결정을 내릴 텐데요.

“물론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죠. 내게 좋아 보이니 사는 건 맞지만,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내 생각이 다 들어맞지 않아요. 그래서 여윳돈을 가지고 투자해야지 신용(빚)으로 투자하면 안 돼요. 예상치 못한 나쁜 상황이 오면 버틸 수가 없거든요. 이 관점에서 보면 2030에겐 ‘조급증’이 투자의 굉장한 적이에요.

서울 광화문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권도현 기자

서울 광화문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권도현 기자

#‘영끌’로 주식 하면 안 되는 이유

-동학개미운동에서 높은 수익률을 경험한 분들은 이 경험 때문에 낙관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경험한 범주 내에서 세상을 봐요. 지난 3월 저점에서 지금까지 7개월의 과정만 보고 ‘주식 시장이 원래 이렇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제가 1996년에 증권회사에 입사했거든요. 외환위기 직후, 금융위기 직후, 그리고 코로나19가 대유행한 올해까지 세차례의 주식 열풍을 봤습니다. 주식을 사자 마자 주가가 올라가고, 동료 분들이 다 ‘돈 벌었다’고 하죠. ‘뭘 해도 벌 수 있었던 장’인데 이게 예외적이란 걸 인식해야 돼요.

중국 역시 2006~2007년의 급등 이후 장기간 고전하고 있죠. 2007년의 중국 상하이지수 고점이 6100포인트였는데 최근 지수는 3300포인트 수준입니다.”

-장기 투자하면 안전하다는 생각을 주식 초보 청년들도 많이 가지고 있더라고요.

“장기 투자를 지향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데는 ‘시간’ 개념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에요. 적정가치 1만원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의 주식을 지금 8000원에 사서 1만원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가치투자의 본질이에요. 이런 주식을 발견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이게 1만원짜리가 되려면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 주식을 사줘야 해요. 다른 사람들이 그 주식의 가치를 언제 제대로 평가해 줄 것인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지금과 같은 때는 투자하기 안좋은 시기인가요?

“투자하기 좋은 시기란 없습니다. 그걸 알 방법이 없습니다. 설사 내가 불리할 때 샀다 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돈의 성격이 중요합니다. 부자들을 보면 정보도 많고 통찰도 있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에게 ‘시간을 이길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거에요. 주가가 떨어졌을 때, 내 손에 돈이 있으면 그건 기회죠. 그런데 돈이 아닌 주식을 들고 있죠? 그게 문제입니다.여윳돈이 있는 입장에서야 주가 떨어지는 게 뭐가 문제예요, 기회인데.

반면에 ‘영끌’로 했다고 쳐요. 떨어질 때 나쁜 가격에 주식을 팔지 않는 게 중요한데, 주가가 다시 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나쁜 가격’에 팔면서 손해를 보게 됩니다. 빚을 당겨 빨리 수익을 내겠다는 조급증이 있으면 시장이 흔들릴 때 심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결국 투자의 성공 확률도 굉장히 낮아지는 겁니다. 제가 만나 본 부자들이 결코 ‘쪽집게’ 라서 돈을 번 게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시간을 이길 수 있는 돈이란 정확히 뭔가요. 개인의 소득이나 자산의 몇퍼센트 정도와 같은 기준이 있나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럼에도 직관적으로 얘기를 해 본다면, 1~3년 이내 그 돈이 없어졌을 때 생활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있다, 그러면 그 돈으로 투자하면 안 됩니다.

저는 2030이 투자를 하는 건 안 하는 것보다는 좋은 선택이라고 봐요. 하지만 돈이 없다고 레버리지(빚)로 투자를 한다면 결코 그들에게 유리한 게임이 아니에요. 청년들이 불리해요.

투자는 기본적으로 자산을 쌓아놓은 사람들에게 유리한 게임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시간을 견뎌낼 수가 있어야 해요. 주가란 늘 주기가 있는 법이고, 떨어지면 또 올라가고 하는 것이니까요.”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올해 주식으로 돈 벌었다고 돈을 다 빼고 투자를 관둘 수 있나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질적으로 투자는 어떤 형태로든 계속 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쏠림이 있을 때(많은 사람이 투자를 할 때)는 약간 회의적인 비관론 쪽에 서고, 올해 3월처럼 너무 과도하게 반대편(비관론)에 쏠리면 낙관적인 회의주의를 견지하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투자가 진짜 야구와 비슷한 것 같아요. 타자가 3할을 치려면 나쁜 볼을 안 쳐야 해요. 그것이 나의 진지한 고민의 결과라고 한다면, 나쁜 가격에는 참여를 안 하는 것도 투자의 일부입니다. 꼭 뭘 해야 한다고 생각을 안 하는 게 중요해요. 설사 잘못 사면 어때요. 약세장이 오더라도 안 팔고 기다리면 되는 거죠. 팔지 않았다면 손실이 확장된 게 아니잖아요. 시장은 모르는 거니까요.”

-단기간에 큰 수익을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기 어려울 것 같아요.

“성장세가 가파른 주식을 보고 ‘짧은 호흡’에 길들여지면 곤란해요. 특히 처음 주식을 시작하신 분들께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주가가 반등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던 지난 몇 개월이 매우 예외적이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시장이 계속 이럴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신영증권 본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신영증권 본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장기 투자를 견디는 힘

-장기 투자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는 또 뭐가 있을까요.

“투자는 참 고독한 것이거든요? 이 외로운 시간을 기다릴 힘을 주는 게 배당입니다. 기업이 주주들에게 성과를 나눠주는 행위죠. 그렇게 해 투자의 선순환을 만드는 겁니다. 저는 한국에서 장기 투자를 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기업이 배당에 인색하다는 점이라고 봐요.”

-왜 배당을 잘 하지 않을까요.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가 중요해요. 대기업을 지배하는 소위 ‘오너일가’와 일반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잖아요. 아주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에까지 지배권을 행사하는 구조이다보니, 오너 입장에서는 배당이 유리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오너가 4%의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쳐요. 배당을 하게 되면 오너에게는 전체의 4%밖에 가지 않고 나머지 96%가 다른 데로 가죠. 논란이 되는 부분입니다만, 이런 ‘대주주’들에게 너무 휘둘리는 게 ‘코리아 디스카운트’(우리나라 주요 기업이 시장에서 저평가받는 현상)의 원인이면서 장기투자를 막는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배구조가 바뀌면 주가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논란이 많지만 저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요. 주주자본주의에 내재된 단기성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주식을 팔고 떠나면 그만인 주주들에게 휘둘리면 장기적인 기업 가치 제고가 어렵다는 점인데요. 그럼에도 한국은 주주자본주의 과잉이 아니라 오히려 주주자본주의적 요소의 결핍으로 투자자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보는 쪽입니다.”

-향후 2년 간 장이 아주 좋을 것으로 예상하고 지난해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는데,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주가가 떨어져 당황했다는 투자자도 있었어요.

“지식이나 태도는 돈을 벌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절대로 아닙니다. 투자란 절대 미래를 맞추는 일이 아니란 것, 안 좋은 상황이 갑자기 벌어질 확률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려울 때 버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투자에서 ‘이기는’ 본질이에요. 저희 업계 사람들이 이런 냉소를 자주 받죠. ‘그래서 너는 잘 하니.’ (웃음) 개별 종목에 대한 투자는 잘못 고르면 자산이 ‘제로’가 될 수도 있으니 진짜 조심해야 해요.”

-청년들 중에는 ‘시간은 우리 편’이라 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장기적으로 주가가 우상향하니 열심히 버티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장·단기 개념이 헷갈린데요. 얼마나 돼야 장기인가요?

“장기적 우상향을 이야기할 때의 ‘장기’는 아주 긴 시간을 말합니다. 흔히 말하는 ‘강세장’과 ‘약세장’은 그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이에요. 짧은 주기는 2~3년. 2~3년 오르면 2~3년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죠. 긴 사이클은 10여년 까지도 갑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결국은 위기를 극복하면서 주가가 다시 오르곤 하긴 했습니다.”

-아주 장기적으로 침체였던 적도 있나요?

“미국에서 주식이 장기 횡보한 적이 여러 번 있어요. 1936년의 주가지수 고점을 1948년에 넘었고, 1968년의 고점은 1982년에, 2000년의 고점은 2013년에 가서야 넘었거든요. 2000년 고점에 산 사람은 원금을 회복하는 데 13년이 걸렸다는 뜻입니다. 이런 때야 말로 배당이 아주 중요한 시기이지요. 언제 이런 시기가 오는지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버블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패닉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에요. 18세기에 유명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증시 역사의 기록적 성장주인 ‘사우스시남해회사’에 투자했다가 버블이 꺼지면서 엄청난 돈을 잃었어요. 그때 그 사람이 ‘천체의 움직임은 알아도 사람의 광기는 모르겠다’ 했거든요.”

-예측이 어렵다면 의사결정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

“견해는 항상 있어야 해요. 자신의 견해에 따라 포지션(투자자산의 현재 상태)을 잡아야 하죠. 그러나 그 것마저도 틀릴 수가 있다고 생각해야 해요. 특정 국면에서 레버리지를 높일 수도 있죠. 다만 이 경우에는 최악까지 생각을 해야 해요. 주식은 장기적으로 기다리면 이기는 게임이라고 말씀 드렸죠? 그런데 주식을 ‘외상’으로 사게 되면 조정 국면에서 원하지 않더라도 주식을 팔아야 합니다. 증권회사에서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반대매매의 형태로 주식을 강제 매도하거든요.”

-비트코인 투자에서 쓴맛을 보고 교훈을 얻어 투자 전략을 수정했다는 청년들도 많더라고요. 이런 경험이 자산으로 남는 걸까요?

“세대를 떠나 모든 투자자들에게 경험이 됐을 수는 있겠죠. 그런데, 청년들 중에 투자 할 돈이 있는 사람이 많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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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인터뷰한 청년 투자자 중에는 적어도 당장 생계가 어려운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투자의 아주 중요한 속성이에요. 돈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게임인 것.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시간을 이길 수 있는 돈을 가진 사람이 이기도록 돼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가진 돈이 적더라도 투자의 철칙을 꼭 지켜야 됩니다.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돈으로만 하세요.”

주식투자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한 대학생이 회원들과 온라인으로 기업분석 세미나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주식투자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한 대학생이 회원들과 온라인으로 기업분석 세미나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주식 투자의 본질은 ‘대박’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주식만 우상향한다는 게 앞으로도 가능한 일일까요.

“성장이 둔화하면 주식 기대 수익률도 낮추어 잡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최근 몇 달 간의 ‘짜릿한’ 경험은 실은 그 전에 주가가 많이 떨어져서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거든요. 주식의 기대수익률이 저성장 국면에서 높을 순 없어요. 그래서 저는 배당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요.

물론 고성장하는 기업들이야 배당 대신 재투자해서 돈 벌 기회를 만드는 게 낫겠지요. 이때는 나눠주기보다 파이를 키우는 게 주주 가치에도 부합하는 일입니다.”

-기대 수익률이 어느 정도이면 적당하다고 보시나요.

“코스피가 1980년 이후로 연평균 8.7% 성장했고, 실물경제(명목GDP)는 연평균 11.0% 성장했거든요. 저는 경제 성장률이 2% 초중반이라면, 주식도 3.5% 정도 이상은 오르기 어렵다고 봅니다. 경제상장이 둔화됐는데 주식만 ‘대박’이다, 이건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주식 투자가 본질적으로 ‘대박’ 내는 일이 아니에요.”

-최근 1~2년간 주식 투자로 수익률 30%를 유지했다는 사람들도 많던데요.

“1~2년은 정말 짧은 시간이거든요. 인생을 야구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144게임을 뛰는 프로야구 선수에요. 한 경기만 뛰고 말 게 아니에요. 장기적으론 낙관하면서 우여곡절을 다 겪는 것이 투자입니다. 갑자기 50%도 떨어지고 70%도 떨어져요. 어려운 시절이 생각보다 훨씬 길 수도 있어요.”

-간접투자에서 직접투자로 방식이 달라진 건 어떻게 보시나요.

“일반 투자자들이 주식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게 된 건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냉정하게 보면 저희 같은 금융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큰 것이기도 하겠지요. ‘맡겨뒀더니 잘 못하네, 금융회사만 배 불리지 말고 차라리 내가 하자’는 심리죠. 자기 경험칙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것은 좋다고 봅니다.

그런데 사회 전체의 측면에서는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주식은 고도의 집중력과 학습이 필요한 영역이잖아요. 투자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 모두 그것만 고민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요. 대신 전문가 집단이 잘 해 주면 좋겠지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투자자들은 공부를 많이 강조하더라고요. ‘한탕주의’ 하겠다는 사람은 줄어든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똑똑해진 개인투자자의 성공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똑똑해진 건 세대 전체의 특성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신입사원들 보면 영어도 너무 잘 하고 ‘내가 얘네들과 경쟁했으면 직장이나 잡을 수 있었을까’ 싶어요. 하지만 지금 같은 예외적 장에서 수익률이 높다는 것이 투자자로서의 자질 혹은 성공을 판단해 줄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길게 가 봐야 아는 겁니다.

-우량주를 골랐다면 안심할 수 있는 걸까요.

“다우지수는 미국에서 거래되는 6000개 종목 중에서 제일 좋은 30개를 뽑아놓은 것이거든요. 이 지수의 역사가 120년쯤 되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남아있는 종목은 없어요. 이번에 ‘화석연료의 시대는 갔다’고 해서 엑슨모빌(미국의 세계 최대 석유회사)이 빠졌거든요.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전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던 보험회사 AIG가 빠졌어요. 그러니까 주가 지수가 올라갈 수 밖에 없죠. 1982년 초 다우지수를 구성하던 30개 종목 중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8개 뿐이에요.”

-그런데도 낙관하란 건 어떤 뜻인가요.

“종목별 명암은 다를 수 있지만, 주가지수는 경제 성장을 반영해 장기적으로 올라갈 확률이 높습니다. 개별 종목이 아닌 시장에 대한 장기낙관론을 견지하면서 그 안에서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야구선수가 어깨에 힘 빼고 치다보면 홈런도 나오는 것처럼, 합리적인 기대수익률을 추구하다 보면 간혹 대박도 나오는 겁니다. 개별 종목을 고르는 행위는 3.5%의 수익률을 사는 게 아니고, 더 높은 기대수익률을 추구하는 것이고요.

개별 종목을 고르기 어렵다면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어떤 경우든 투자는 시간을 사는 일이란 걸 잊지 마세요. 배당을 안 주는 건 시간을 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인이거든요? 이걸 끊어야 투자자들에게 선순환이 올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기업 지배구조와 배당 이야기를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30 자낳세 보고서]③주식은 ‘모름의 철학’…부디, 시간을 견디는 돈으로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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