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과업 수행하는 전위투사들의 비밀조직…실상은 초라했다

2021.08.10 14:21 입력 2021.08.10 14:48 수정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에서 운영했던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식당 내부. 김흥일 기자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에서 운영했던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식당 내부. 김흥일 기자

“식당 간판은 걸어놨는데 장사를 거의 안했어요. 손님도 없었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가정보원과 경찰 수사를 받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충북동지회)의 실상은 초라했다. 충북동지회는 ‘민족민주주의적 변혁운동의 선봉에서 투쟁하는 충북지역 전위투사들의 비밀조직’으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저 월세가 밀려 도망치듯 떠난 사람들로 기억했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충북동지회가 운영한 음식점 인근에서 자동차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주민 A씨는 10일 “일본 불매 운동을 한다더니 어느 날은 재능기부 음악회를 연다고 하고…정상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며 “화목난로를 피워서 계속 화재 경보기도 울리고. 하여간 엮이기 싫어서 식당도 안갔다”고 했다.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월세를 제때 안줘서 명도소송까지 간 것으로 안다. 건물주가 거기 사람들이라면 치를 떤다”고 했다.

충북동지회의 또 다른 사무실(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인근 주민들의 전언도 다르지 않았다. 설비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요즘 세상에 돈이 없어서 겨울에 장작 패서 불 때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차림새도 추레하고 전기세, 수도세도 못내고…그냥 어려운 사람들인가 했다”라고 했다. 철물점을 운영하는 민석현(가명·73)씨는 “딱 한 번 거기 사람이 농촌 활성화 책을 하나 준다고 왔길래 안 받고 돌려보냈다”며 “그거 말고는 교류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충북동지회는 미국 스텔스기 F-35A 도입 반대, DMZ평화인간띠, 통일 밤묘목 100만그루 보내기 운동 등 활동을 벌였지만 조직원들은 안정적인 수입이 없어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이들 중 한 명이 북한에서 받은 공작금을 횡령한 정황도 있다. 10일 충북동지회 조직원 측이 제공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따르면 구속된 윤모씨(50)는 지난 3월 조직원 박모씨(50·구속)를 비난하며 ‘본사 사업비 2만불 중 만불을 횡령했다’고 북한에 보고했다.

F-35도입반대  청주시민대책위원회 블로그에 게재된  충북청년신문 기사. 충북청년신문은 충북동지회가 운영한 매체다.

F-35도입반대 청주시민대책위원회 블로그에 게재된 충북청년신문 기사. 충북청년신문은 충북동지회가 운영한 매체다.

구속영장을 보면 충북동지회는 지역 정치권과 노동계 전반에 대한 영향력 행사와 의식화를 조직의 임무로 정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임무 수행도 난항을 겪었다. 윤모씨의 임무는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인맥을 이용해 조직의 엄호거점·정보거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3월 윤씨는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정책실장을 만나 ‘F-35A도입 반대’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등 정책 협약을 요청했지만 “수위가 높아 정치 의제화하기 어렵다”며 정책 연대·협약을 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윤씨는 재직 중인 어린이집을 거점 삼아 지역 보육교사를 의식화하는 임무도 맡았는데, 이 역시 이렇다 할 실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씨와 함께 근무했던 어린이집 관계자는 “여기서 오래 일한 분은 아니지만 일하면서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며 “다른 얘기를 꺼낸 적도 없었고 그냥 평범한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손모씨(47·불구속)는 ‘LG하우시스(현LX하우시스)현장 조직 완전 장악 및 핵심 포치’가 임무로 돼 있다. 하지만 손씨는 LG하우시스 현장 조직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2017년 LG하우시스 사내 협력업체에서 1개월 근무한 경력이 전부다. LG하우시스 노조 관계자는 “조직 장악은 커녕 손씨를 아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공안당국의 수사 내용을 보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이들의 입장은 북한의 지령에 따라 바뀌었다. 지난해 7월 충북동지회는 ‘반미, 반문재인 투쟁기조를 일관되게 견지하면서 투쟁의 도수를 높여나가야 한다’는 북한 문화교류국의 지시를 받았다. 한 달 뒤 조직원들은 F-35A 도입반대 청주시민대책위 등 관련 단체 명의로 ‘남북관계 파탄, 반통일 반민중정권 문재인 정권 퇴진하라’는 격문을 발표했다.

충북동지회 측은 이번 사건을 두고 “100% 조작된 사건이다”, “20년 넘게 불법사찰을 당했다”며 피해를 호소한다. 구속된 충북동지회 조직원의 가족은 전날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구속영장 내용은)다 헛소리”라며 “같이 사는 가족들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얘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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