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몰릴 위기에 놓인 ‘백년가게’ 을지OB베어

2022.04.17 08:01 입력 2022.04.17 08:23 수정

건물주, 계약 연장 거부…명도소송까지 패소

시민사회단체들 공동대책위 꾸려 대응 중

을지OB베어 2대 사장 강호신씨가 4월 12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있는 가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을지OB베어 2대 사장 강호신씨가 4월 12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있는 가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465m 거리에 17개 생맥줏집이 불야성을 이루는 노가리 골목의 역사는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 을지OB베어에서 멈춥니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공식 블로그에 게시한 생맥줏집 ‘을지OB베어’ 소개글이다. 서울 을지로3가 골목에서 1980년 개업해 42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포(老鋪)다. 처음으로 ‘노맥(노가리+맥주)’을 선보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시초이기도 하다.

중기부는 2018년 8월 을지OB베어를 ‘백년가게’로 선정했다. 중기부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오픈 당시의 맥주 안주인 노가리, 번데기, 쥐포, 멸치를 지금까지 유지하면서 사업 중인 전통 맥줏집”, “전국적으로 노가리 열풍이 불게 한 맛집”이라고 설명했다. 백년가게는 30년 넘게 장사한 소상공인이 100년 이상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다. 서류심사와 현장실사 등을 거친다. 경영 철학·기법, 전통 및 점포형태 유지, 고유의 제품 경쟁력과 품질 수준 등을 두루 평가한다.

서울시는 2015년 노가리 골목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문화유산 가운데 서울 사람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온 공통의 기억 또는 감성으로 미래세대에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이라고 미래유산을 정의했다. 을지OB베어를 “노가리 골목의 원조”라고 지칭했다.

백년가게와 서울미래유산의 공통된 지향점은 ‘100년 이상 존속’이다. 을지OB베어는 그러나 100년은커녕 50년을 채우기도 불투명한 상황에 놓였다.

을지OB베어 외부 모습  / 정희완 기자

을지OB베어 외부 모습 / 정희완 기자

■‘노맥’의 시초

노가리 골목은 해가 지면 노가리를 안주 삼아 생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낮에도 듬성듬성 낮술을 즐기는 손님들을 볼 수 있다. 2017~2018년쯤 복고풍 유행과 맞물려 젊은층도 대거 몰리면서 이곳은 이른바 ‘힙지로(힙+을지로)’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 이 골목은 인쇄소와 공구상 등이 밀집한 곳이었다. 을지OB베어는 1980년 12월 골목 한쪽에 있는 건물 1층에 자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OB맥주의 서울 2호 체인점이었다. 6평(19.8㎡) 남짓 작은 규모다. 창업주는 강효근씨(96)다. 당시 서민들은 주로 소주와 막걸리를 마셨다. 생맥주는 생소했다. 장사가 잘 될 리 없었다. 강씨는 개업 후 2년 5개월 동안 점포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주변 골목을 빗자루로 쓸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이웃들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홍보이기도 했다. 을지OB베어에 손님들이 하나둘씩 드나들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일자리도 연결하는 동네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부터 노가리가 메뉴에 있던 건 아니다. OB맥주 본사에서 납품받은 마른안주로 시작했다. 작은 비닐에 땅콩, 멸치, 김 등을 담아 100원에 팔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981년 맥주회사가 안주까지 공급하는 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강씨는 새로운 안줏거리를 고민해야 했다. 황해도 출신인 그는 고향에서 김장 양념에 들어간 동태를 맛있게 먹던 기억을 떠올렸다. 가격도 100원에 맞추고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했다. 노가리가 제격이었다.

강씨는 아침마다 노가리를 반으로 접어 망치로 두들긴 뒤, 배를 가르고 가시를 발랐다. 손질한 노가리를 연탄에 살짝 구워 내놓았다. 노가리에 찍어 먹는 매콤한 고추장 양념도 직접 개발했다. 양념을 만드는 비법은 함께 일한 아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유명 식품회사에서 양념 소문을 듣고 강씨를 찾아오기도 했다.

술집이지만 오후 10시에는 무조건 문을 닫았다. 강씨는 손님들이 만취한 채 귀가하기보다 적당히 마시고 집에 들어가 조금이라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한잔만 더 하겠다”는 손님과 종종 말싸움도 벌어졌다. 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장호 감독이 스태프들과 영업 종료 30분 전에 들렀을 때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았다.

노가리 가격은 20년 동안 1000원을 유지했다. 원가를 밑도는 가격이다. 생맥주도 다른 곳과 달리 냉장숙성 방식을 고수했다. 오직 맥주만 판다.

을지OB베어 창업주 강효근씨와 함한명씨 부부 그림이 가게 안에 걸려 있다. 그림은 단골손님이 그려줬다. / 우철훈 선임기자

을지OB베어 창업주 강효근씨와 함한명씨 부부 그림이 가게 안에 걸려 있다. 그림은 단골손님이 그려줬다. / 우철훈 선임기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강씨가 여든을 넘기고 기력이 떨어지자 맏딸 호신씨(62)와 사위 최수영씨(67)가 2013년 가게를 물려받았다. 호신씨는 아버지의 기존 영업방식을 두고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장사라는 게 이윤 추구가 목적인데, 아버지의 방식을 조금만 바꾸면 수익을 더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맥주의 냉장숙성을 위해서는 커다란 냉장고가 필요하다. 요즘은 맥주를 짧은 시간 내에 냉각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지금 냉장고의 3분의 1 정도 공간만 있어도 된다. 손님 대여섯명은 더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음식칼럼리스트 박찬일 셰프는 저서 <노포의 장사법>(2018)에서 을지OB베어를 소개하며 “요즘은 순간 강제 냉각 방식의 생맥주가 99.9%란 걸 안다면 이 장치(냉장고)의 수고로움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썼다.

호신씨는 맥주 외에 소주나 막걸리를 추가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안주를 늘릴지도 고민했다. 강씨는 그러나 생맥주에 어울리는 안주는 ‘가벼운 안주’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을지OB베어가 들어선 이후 주변에 유사한 맥줏집들이 생겼다. 다른 가게는 마른안주 외에 치킨, 골뱅이, 달걀말이, 튀김류 등 여러 종류의 안주를 다룬다. 특히 치킨은 인기가 높으면서 비싸게 팔 수 있는, 주인 입장에선 ‘가성비’ 높은 안주로 꼽힌다.

연탄불을 피우고 유지하는 일도 손이 많이 간다. 연탄을 파는 곳도 드물다. 가스레인지를 이용하면 수고를 덜 수 있다. 아버지 강씨는 “가스레인지는 그을리는 것에 그친다. 속까지 구우려면 연탄불을 써야 한다”고 고집했다.

20년 동안 1000원을 유지한 노가리 가격도 고민거리였다. 물가상승 등을 견디지 못하고 을지OB베어를 비롯한 일대 맥줏집들은 지난해 5월 1500원으로 올렸다. 그래도 원가에 못 미치는 건 마찬가지다. 노가리는 아직도 강씨가 직접 고른다. 샘플을 보고 1년치를 계약한다. 호신씨가 약간 저렴한 걸 고르면 강씨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다고 한다.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강씨의 원칙은 이렇다. “내 맥주맛을 아는 손님들께 안주는 서비스로 주고 싶다. 안주 팔아서 장사하지 말고 맥주 팔아서 장사해라.”

영업시간을 오후 11시로 한시간 늘린 건 2016년쯤이다. 영업시간을 연장해달라는 단골들의 ‘민원’을 받은 호신씨가 아버지를 2년간 설득했다.

을지OB베어 입구에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와 서울시의 ‘서울미래유산’ 현판이 걸려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을지OB베어 입구에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와 서울시의 ‘서울미래유산’ 현판이 걸려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떠날 수 없는 이유

호신씨가 마음을 다잡은 건 단골 중 한명이 중기부의 백년가게 정책을 알려주면서다. 단골은 “아버지가 40년 가까이 일군 가게를 역사에 한줄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 여기가 원조인데 너도나도 원조라고 하지 않느냐”며 권유했다.

호신씨는 그 말을 듣고 을지OB베어의 역사를 되짚어봤다고 한다. “외국에서 10년 만에 귀국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던 손님을 비롯해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들을 생각했다. 온갖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은 아버지의 철학과 신념이 이런 신뢰를 만들었다는 점을 되새기게 됐다.” 을지OB베어는 2018년 8월 백년가게로 지정됐다.

“아버지가 돈 욕심을 냈다면 점포를 확장하고 술과 안주 종류도 늘렸을 거다. 그랬다면 지금 번듯한 건물주가 됐겠지.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를 바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호신씨)

백년가게에 선정된 기쁨도 잠시, 얼마 뒤 건물주가 임대차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알려왔다. 다른 임차인을 구했다고 했다. 호신씨는 월세 인상 등 조건을 최대한 맞추겠다며 재계약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건물주는 점포를 비우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020년 10월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지난해 8월까지 을지OB베어를 상대로 5차례의 강제집행 시도가 있었다.

강제집행 때 용역들을 막으며 을지OB베어를 도운 건 주변 상가의 이웃들이었다. 아버지 강씨 때부터 알고 지낸 이들로 60~80대가 주를 이뤘다. 안경과 자전거가 부서지기도 했다. 단골이던 향린교회를 주축으로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응 중이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옥바라지선교센터 주관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 앞에서 상생을 촉구하는 예배를 연다. 이 골목에 있는 A호프의 대표 일가가 지난 1월 건물 지분의 3분의 2를 매입했다. A호프 대표 측의 견해를 들으려 했지만 거부했다. 중기부와 서울시도 개인 간 임대차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

“40년이나 했으면, 다른 곳에서 장사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법과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 있다. 외려 40년 넘은 역사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고 호신씨는 말했다. “사람 냄새나는 이곳에서 잔잔하게 이웃들과 어울려 살고 싶다”는 게 호신씨의 바람이다.

“아버지라고 돈 욕심이 없었을까. 그럼에도 이웃과의 신뢰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이 집에 가면 맛있고 저렴한 맥주와 안주를 먹을 수 있다. 그 집은 언제나 거기에 그렇게 있다’고 믿는 손님들과 이곳에 청춘을 바친 아버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건물주와 임차인의 사적 갈등을 넘어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사회단체가 호신씨와의 연대에 나선 것도 그래서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지닌 노포가 사라지면 지역 공동체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 등이 나서 건물주를 설득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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