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은 반성하지 않는 자의 몫

신뢰와 자랑스러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게이코러스 G-Voice(지보이스) 10주년 다큐멘터리 <위켄즈>(2016년, 이동하 감독)는 신뢰와 자긍심의 연대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는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가로질러 게이들의 삶을 노래로 들려준다. 노랫말은 사회적 소수자로서 정상성에 도전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고, 지보이스는 노래 모임을 넘은 신뢰와 자긍심의 공동체다. ‘이 고단한 세상 살아남으라, 나의 사랑아 또 나의 자랑이여.’ 이들이 부르는 선율 위에 다른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도 함께 놓인다.

[NGO 발언대]수치심은 반성하지 않는 자의 몫

신뢰가 있어야 내 몸과 삶의 경험을 내어놓고 접촉할 수 있을 거다. 옷 속에 갇힌 피부와 더 단단히 갇힌 피부 안쪽의 뼈와 살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치료와 분석의 대상으로 삼거나 불쌍하다는 동정의 눈길 앞에선 보이기 싫은 경험이다. 더럽거나 이상해서 다가가고 싶지 않을 때는 다다를 수 없는 접촉의 감각이다. 맨 얼굴과 살을 마주하며 더 이상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가 부끄럽지 않을 때 각자는 나다움의 자랑스러움, 우리로서 가지는 긍지를 공유하게 된다. 사회가 강요한, 존재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사회적 소수자라는 정체성은 자부심이 된다. 때론 서로의 차이를 몰랐다는 성찰이 만남과 연대를 깊어지게 하며 사회변화를 위한 질문과 과제를 재구성한다.

그런데 왜 부끄러움을 소수자의 몫으로만 강요하는가? 박근혜와 부역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여성혐오의 말을 표현의 자유라고 오해하는 이들, 장애인에게 밑도 끝도 없이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희망전도사, ‘사회적 합의가 덜 되어 시기상조다’, ‘성소수자 지지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안된다’며 자신의 처지도 봐달라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부끄러움이란 무얼까 질문하고 싶다. 국민 통합의 중요성을 말하는 와중에도 호명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진 않은가? 차이와 경계는 촛불을 든 자와 태극기를 든 자 사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새 시대를 약속하는 자리에 초대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도 경계는 존재한다. 초대장이 없는 이들은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만 했다. ‘여성 성소수자인 나의 인권을 여성과 성소수자 반으로 나눌 수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가난의 문제와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겪는 어려운 상황을 전부 개인과 가족에게 지우고, 차별하게 만드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고 외친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법과 제도의 공식적 배제는 곧 관계와 삶에서 지워지도록 만드는, 비공식적 배제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제 수치심은 더 이상 싸우며 광장에 나와 자신을 드러내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반성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의 몫이어야 한다.

박근혜보다 조금 더 나은 대통령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는 대답 앞에서 내가 더 시급하다고 떼를 쓰는 것은 더욱 아니다. 사이토 준이치는 <민주적 공공성>에서 “배제가 없는 민주적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쓸모가 다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자명한 것,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굳어진 사고 습관을 근저에서부터 되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환대받지 못하는 자들이 수치심을 넘어 자긍심을 일구고, 제도와 규범에 맞서 싸웠던 시간과 역사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영감을 줄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