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로스 효과

2019.11.06 20:34 입력 2019.11.06 20:43 수정

야구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큰돈을 들여 비싼 선수를 데려오는 게 ‘왕도’에 가깝지만, 비싼 선수들 모아놓는다고 우승할 수 없다는 걸, 미국과 한국의 많은 팀이 스스로 증명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은 야구는 물론, 우리들이 살아가는 거의 모든 곳에서 ‘진리’에 가깝다. 그렇다면, 구슬을 꿰는 ‘실’은 어디에 있을까. 누가 어떻게 꿰어야 할까. ‘팀워크’라는 건 진짜 있는 걸까.

[기자칼럼]데이비드 로스 효과

매년 MIT에서는 ‘슬로언 스포츠 분석 콘퍼런스’라는 회의가 열린다. 2017년 슬로언 콘퍼런스에서 독특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인디애나대학 켈리경영학스쿨 교수와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연구원 둘이 함께 연구했다.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 한 명이 팀에 어떤 긍정적 결과를 낼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각 개인의 야구실력을 합한 데이터는 그 팀 성적에 20%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계산됐다. 오히려 ‘팀워크’라고 불리는 일종의 ‘분위기’가 팀 성적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의 계산에 따르면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 한 명이 팀에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는 약 44% 수준으로 팀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이 이 연구 결과에 붙인 이름은 바로 ‘데이비드 로스 효과’. 줄여서 ‘로스 이펙트(Ross Effect)’라고 부른다.

데이비드 로스는 빅리그 통산 15시즌을 뛰었지만 통산 타율 겨우 0.229, 연평균 홈런 약 7개로 별 볼 일 없는 타자다. 그나마 포지션이 포수니까 15시즌을 버텼는데, 그마저도 주전이 아니라 ‘백업포수’였다. 100경기 넘게 뛴 시즌이 딱 한 번. 신시내티에서는 브론슨 아로요, 보스턴에서는 존 레스터의 전담포수였다. 시카고 컵스가 레스터와 FA 계약을 할 때 전담포수 로스도 함께 데려갔다. 로스의 커리어 최고 연봉은 310만달러로,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 400만달러에도 못 미친다. 그러니까, 여러모로 별 볼 일 없는, 연봉 적은 베테랑 백업포수다.

‘로스 이펙트’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연구가 있다. 미국 버펄로대학의 케이트 베즈루코바와 체스터 스펠은 ‘메이저리그 구단의 팀 조직력’을 살피는 연구를 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메이저리그 팀들을 분석해 ‘인싸’와 ‘아싸’로 나눴고, 그 사이의 ‘단층선’을 구별했다. 주전과 후보, 연봉, 나이, 국적, 언어의 차이 등이 메이저리그 팀 내 ‘장벽’인 단층선이다. 단층선의 구조와 범위, 강도 등을 구분하고 팀 성적을 계산한 결과 ‘갈등관리 실패’는 플러스·마이너스 3승, 즉 6승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계산됐다.

그런데 이 연구에 따르면 팀 조직력은 단층선이 거의 없는,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이 모였을 때 오히려 떨어졌다. 단층선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도 이들 단층선의 사이를 오가며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해주는 ‘중간자’의 존재가 팀 조직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게 바로 ‘로스 이펙트’의 비밀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뚜렷한 단층선은 연봉과 인종, 언어의 벽이다. 고액 연봉과 저연봉이 갈리고 백인과 히스패닉이 갈라진다. 일반적으로 ‘백인=베테랑=고연봉’이 한 축을 이루고 ‘히스패닉=신참=저연봉’이 한 축을 이룬다. 이 단층선의 양쪽을 아우르는 선수가 팀을 단단하게 만든다. 로스는 나이 많은 베테랑 백인 선수지만, 연봉이 적은 백업포수다. 로스와 반대로 비슷한 선수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카를로스 벨트란이다. 은퇴 시즌, 마흔살 때 연봉이 1600만달러였던 성공한 히스패닉 선수. ‘로스 이펙트’와 마찬가지로 ‘벨트란 이펙트’가 존재했다. 이들은 팀 내 ‘인싸’와 ‘아싸’를 모두 아우를 수 있었다.

로스는 2016년 시카고 컵스를, 벨트란은 2017년 휴스턴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2019시즌이 끝나고 로스는 컵스의 감독이, 벨트란은 뉴욕 메츠의 새 감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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