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해커 파티 ‘CCC’

2020.12.09 03:00
이동미 여행작가

매년 12월27일부터 30일까지, 독일 작센주 라이프치히에서는 유럽 최대의 해커 파티가 열린다. 이름하여 ‘카오스 커뮤니케이션 콩그레스(Chaos Communication Congress)’, 독일에선 줄여서 ‘체체체(CCC)’라 부른다. 매년 열리는 횟수를 앞에 넣어 ‘37C3’라고도 한다.

이동미 여행작가

이동미 여행작가

CCC는 1984년에 시작해 올해 37회째를 맞았다. 유럽의 가장 큰 해커 협회인 ‘카오스 컴퓨터 클럽(Chaos Computer Club)’이 주최하는 행사로, 개인정보 보호, 보완, 암호화, 온라인상의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기술적, 정치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강의와 워크숍을 4일간 연다. 컴퓨터 앞에 앉아 얼굴 없이 활동하는 유럽 주축의 해커와 그룹들이 1년에 한 번 이 CCC에 모여 정보를 주고받고 새로운 프로젝트와 지식을 선보인다. 매년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미국 해킹 방어 사이버 보완 대회인 ‘데프콘(DEF CON)’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행사로 꼽힌다.

해커와 컴퓨터광들이 가득한 이 행사는 이쪽 전공자가 아니면 도통 못 알아들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티켓 판매가 시작되면 단 몇 십분 만에 매진되는 이 행사에는 수천명의 해커와 괴짜, 기술자, 예술가, 활동가, 몽상가들이 한데 모인다. 그리고 이들은 같은 출발점을 갖고 있다. 온라인상의 정보를 누구나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어야지, 특정 조직이나 회사만이 갖고 있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식이다.

직접 참관해보니 CCC에서 나날이 발달하는 정보 기술과 이에 따른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을 접근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서브컬처적인 데다, 흥겨웠다.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래밍뿐만 아니라 푸드랩, 명상, 테크노 파티, 아이들을 위한 코너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24시간 내내 운영되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해킹의 ‘해’자도 모르고 코딩의 ‘코’자도 모르는 내가 작년에 이 행사를 갈 수 있었던 이유다.

“1992년에 처음 간 CCC는 참가자가 300명 정도였어. 그러다가 3년 전에 함부르크에서 열린 C3에 갔는데 1만7000명이나 온 거야. 그동안 엄청난 이벤트로 성장한 거지. 하지만 거대 자본이나 회사의 협찬을 전혀 안 받고 계속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참가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서포트하는데, 해마다 티켓 가격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야. 입장료를 더 낼 수 있는 사람은 평균 가격보다 더 내고, 돈이 없는 사람은 덜 내고 들어올 수 있거든.”

소프트 엔지니어 친구의 설명도 근사했다. 거대한 전시장에는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스케이트보드나 직접 만든 전동기기를 타고 다녔다. 무지개 깃발이 펄럭였고, 초대된 비트박서는 여자로 성 전환한 트랜스젠더였다. 유럽 전역에서 온 해커와 클럽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을 하고, 갑자기 파도타기 박수를 치며 서로를 응원했다. 컴퓨터를 해부하고 다시 조립하는 워크숍이 열리고, 직접 만든 LED불빛이 사방에서 빛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커들이 강연을 이어갔다. 한쪽에선 일렉트로닉 음악이, 한쪽에선 강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딴 세상이었다. ‘착한’ 해커들이 세상을 지키고 있음을 목도한 4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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