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가 자초한 ‘기재부 해체론’

2021.11.25 20:28 입력 2021.11.25 20:30 수정
오관철 경제에디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8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8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소상공인 등 민생경제 지원방안’은 재정건전성에 집착하는 기재부의 속성을 또다시 보여주었다. 코로나19에 따른 손실보상 비대상 업종에 지원키로 한 2000만원 한도, 연 1.0% 금리 대출은 기재부 설명대로 역대 소상공인 정책자금 금리로는 가장 낮을지도 모르겠다. 정작 정책 대상자인 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입장문에서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357%에 이르며 부채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금융 지원이 과연 해결 방법이 될지 의문이라고 반발했다. 빚으로 빚을 막는 처방이란 얘기다.

코로나 위기 속에 기재부는 늘 이런 식이었다. 속 시원한 정책을 별로 본 기억이 없다. 냉철한 의식은 갖췄을지 모르나 따뜻한 가슴과 민본경제 의식의 부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거시경제지표로 경제를 분석하고 운영하는 데 익숙한 기재부는 성장률 수치만으로 경제가 잘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경제 운용 성과의 판단 기준은 결국 국민들이 얼마나 편안하게 경제생활을 하는가이다.

코로나 방역으로 벼랑 끝에 몰린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 취업난에 신음하는 청년층이 도처에 깔려 있음을 본다면 올해 4% 성장률, 취업자 수 코로나 이전 99.9% 수준 회복 등은 그리 내세울 게 못된다.

기재부는 위기 속에서 적시에,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했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세계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라는 평가에도 코로나 추가경정예산(추경), 5차례의 재난지원금 편성 과정에서 늘 머뭇거렸다. 시민들의 삶이 무너지는데 재정적자나 국가채무 수준을 양호하게 유지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을 하위 몇 %로 하느냐를 두고 소모적 논란으로 날을 보낸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기재부는 형편이 어려운 계층을 선별 집중지원하는 게 낫다는 논리로 보편지급을 반대했지만 돌아보면 돈 풀기를 주저하는 생각에 다름 아니었다. 취약계층에 충분히 지원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올해 초과세수가 2차 추경 당시 세입 전망보다 19조원 늘어날 것이라며 기존 전망(10조원)을 몇 시간 만에 정정한 일이 있었다. 19조원이라는 사실을 청와대에 보고하고도 대외적으로는 10조원대라고 얼버무리다 여당에서 국정조사 필요성까지 제기되자 뒷북 실토를 한 것인데, ‘국가가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알 필요가 있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얘기다. 표심을 얻으려 기재부를 찍어 누르려는 여당의 행태에도 문제가 있지만 관행에 의한 정책만 고집해 온 기재부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일단 돈 없다고 버티고 보자는 식의 생각이 기재부에 만연해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기재부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발족했다. 외환위기 당시 공룡부처였던 재정경제원이 분해된 후 대(大)부처론을 등에 업고 등장했다. 경제정책 수립·조정, 예산, 세제, 금융 등 ‘경제4권’에서 금융을 제외한 3권을 갖고 있다. 예산권을 틀어쥐고 다른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까지 쥐락펴락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기재부는 정책 실패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신뢰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철학과 원칙으로 승부하기는커녕 핀셋 대책, 땜질식 처방을 일삼은 결과가 부동산 실정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역대 최장수 경제사령탑으로 일하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는 정책 실패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경제부총리가 물러나고, 새로 출발하려는 모습이라도 보여줬지만 그렇지도 못했다.

이쯤 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제기한 ‘기재부 해체론’은 그가 홍 부총리와 껄끄러운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퉁칠 수만은 없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가 당선될지 미지수이고 기재부에서 예산권 분리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조직개편의 윤곽은 내놓지 않아 현실화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그러나 전환기를 맞아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해온 경제전문가들과 정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시민사회에 쌓여온 불신을 감안한다면 기재부 쪼개기 목소리는 더 커질 수 있다.

개편의 회오리가 불더라도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1~2년만 지나면 자신들의 뜻대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재부의 조직적 로비와 저항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분명한 건 한국 경제의 근본적 개혁과 과감한 혁신을 위해 기재부가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수술대에 오른다면 그건 기재부 책임이란 거다.

오관철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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