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간다, 지구오락실

볼만한 프로그램이 또 생겼다. tvN의 <뿅뿅 지구오락실>은 딱 3회 만에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여자 연예인 네 명이 나와 게임을 하는데, 그 과정이 이렇게 웃길 줄이야.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순식간에 합을 맞춰 군무를 추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시기의 노래 제목을 척척 맞히는 능력자 같으면서도 그 흔한 여덟박자 이름대기 게임에서 쩔쩔매다 결국 모든 기회를 다 뺏기는 모습을 보면서 정신없이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정말 이 조합 누가 생각해낸 것일까.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한때 나영석 PD의 연수입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수없이 많은 전설적인 예능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믿고 보는 그의 작품들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비슷비슷한 포맷에 질린다는 의견도 있었다. <신서유기>가, <삼시세끼>가, <꽃보다 청춘> 시리즈가 모두 남자 출연자들 사이의 오랜 관계에서 나오는 케미가 주된 재미의 요소였던 탓이다. 생각보다 귀여운 큰형님의 감성과 재롱, 알아서 형님을 보필하던 동생의 귀여운 반란이 그 재미의 핵심이었다. 물론 간간이 스핀오프 격으로 <꽃보다 누나> <삼시세끼 산촌편> 등 여성 버전도 만들어졌지만 화제만 남긴 채 다시 남성 출연자들이 화면을 채우곤 했다. 시청자들의 지루함을 눈치챘던 것일까. 영리한 그는 성별을 바꾸고 관계성을 지움으로써 완전히 같으면서 전혀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재미를 만들어냈다.

한때 ‘몸을 쓸 줄 몰라서’ ‘재미가 없어서’ ‘망가지려 하지 않아서’ 여자 예능은 성공할 수 없다던 시절이 있었다. 예능에 많이 나오는 몇몇 여성 출연자들도 남자들과 합이 좋아 나오는 것일 뿐 혼자의 능력이 아니라고 후려침을 당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도 일을 주지 않겠다면 내가 일을 만들겠다며 다른 플랫폼으로 떠났던 송은이·김숙·박미선 등 경력자 예능인은 결국 다른 그곳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경력으로 화려하게 방송가에 컴백했다. 이들의 성공은 예능인으로 본인들의 가치를 다시 알려낸 것뿐만 아니라, 예능판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만들었다. 재미가 없는 프로그램은 여성 출연자가 잘 못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재미없는 프로그램을 기획했기 때문인가. 여성 출연자는 뷰티와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특화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인가. <국민영수증> <골때리는 그녀들> <스트릿우먼파이터> <노는언니>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나름의 방법으로 보여주었다.

MZ세대 여성들로 구성된 <지락실> 팀은 기존 나 PD 사단의 출연진과 많이 다르다. 낯선 곳에 버려지는 낙오를 두려워하기보다 그 과정을 능동적인 여행으로 받아들였고, 블루투스 연결도 쩔쩔매던 이전 멤버들과 달리 이들은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각종 앱을 이용해 난관을 쉽게 풀어버린다. 음식을 앞에 두고 전쟁을 벌이기는커녕, 답을 알면서도 ‘배부른데’라며 망설이기도 한다. 단순히 성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세대의 등장이다. 출연자들의 나이만큼이나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 제작진이 이들을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보여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기존 작품에서 출연진의 성별만 바꾼 프로그램이 될지, 출연자들을 넓힘으로써 더 많은 시청자들과 교감을 쌓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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