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가 한국에 온다면

경제학의 기본 원리가 잘 구현된 고전 중의 고전인 애덤 스미스(1723~1790년)의 <국부론> 5편은 국가재정의 원리에 대한 것이다. 5편 1장은 정부지출, 2장은 조세, 3장은 공공채권(공채)에 관한 논의다. 18세기 영국 상황을 묘사한 <국부론>의 재정학의 원칙과 정신이 정부지출과 조세에 대한 구조와 규모, 그리고 공공채무(국가채무)의 발행 및 유통 등과 관련한 현재의 제도와 상황이 크게 다르기에 이를 우리나라의 재정운용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순 없다. 하지만 <국부론> 5편 3장 공채에 대한 애덤 스미스의 견해에 한정해 현재 한국 재정정책의 관점에서 필요한 시사점을 찾아보는 건 여러모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18세기 영국 정부의 공채의 급증을 가져온 건 전쟁이라는 특수한 재정소요였다. 그 당시 영국은 100여년 동안 5개의 큰 전쟁(스페인 왕위계승 전쟁(1701~1715), 7년 전쟁(1756~1763),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1740~1748), 미국 독립전쟁 (1775~1783),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1792~1815))을 치렀다. 개인소득세와 법인세가 없었던 그 당시에 토지세, 소비세, 관세 등으로 이뤄진 GDP 대비 10% 미만의 재정수입으론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워 공채발행을 통한 재원조달이 불가피했다. 18세기 동안 계속된 전쟁은 1815년 워털루에서 마침내 종결됐지만, 영국 정부는 GDP의 180%에 가까운 엄청난 부채 부담을 떠안게 됐다.

하지만 현대에 와선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리스크, 각종 불평등으로 인한 격차가 주는 사회적 고통, 저개발과 더딘 의료발전으로 인한 질병과 보건위험 등을 대처하기 위한 정책들이 현대 정부의 재정소요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현대는 18세기 영국과 달리 부양하거나 지탱해야 할 국왕과 왕실은 없지만 이와 비교가 불가능한 훨씬 큰 규모의 정부기구 존재, 경제안정을 위한 경기대응 재정지출, 그리고 위기 대응 재정소요 등이 전쟁을 대체하고도 남을 재정소요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를 포함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전쟁수행 비용을 충당키 위해 불가피하다고 여긴 공채발행처럼, 앞서 언급한 여러 현대적 재정소요에 대해 일반적 조세수입을 훨씬 상회하는 부분을 공채발행을 통해 충당하는 건 애덤 스미스가 추구한 자유와 평화, 그리고 평등한 세상을 고려할 때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상수적(常數的) 정책대안이 아닐까?

한편, 재정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국부론>에서는 공채발행을 통한 재원조달 그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지만 이에 대한 국가의 과세권을 담보로 발행하는 공채의 원리금 상환도 세수부족으로 차입기간이 지속적으로 연장돼 영구화되는 경향을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공채상환을 위한 감채기금(sinking fund) 역시 본래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전용되거나 정부재정이 낭비적으로 되는 것에 일조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현대 정부의 재정운용의 관점에선 국가채무의 원리금 상환은 여러 가지 미시적 관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채수준 그 자체도 중요한 변수지만 국가채무의 평균만기 및 국가채무 만기도래 연도별 비중, 국가채무 이자 현황, 장단기 채무비중, 외국인 소유 비중 등 고려해야 할 조건들이 많다. 그래서 단순하게 국가채무 규모가 크다고 하더라도 이들 미시적 조건들이 양호하거나 조세수입으로 충분히 국가채무 상환과 차환이 가능하다면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특별한 문제가 되진 않는 것이다. 반면, 국가채무 규모가 작다고 하더라고 채무의 질적인 측면이 좋지 않거나 조세수입으로 이자 상환이 여의치 않으면 이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관점에서 한국의 재정상황을 평가하면 어떠할까? <국부론>에 기술돼 있는 관점으로만 판단한다면 한국의 재정은 건전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본격적인 경제발전이 시작된 1970년대 이래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GDP 규모는 과거에 비해 매우 커졌다. 또한 재정보수주의에 입각한 재정운용 결과 국가채무는 경제규모에 비해 비교적 작은 수준이다. 그런데 정부재정의 큰 방향이 선성장-후분배 관점이었기에 정부의 재원배분은 경제지출에 비해 사회복지지출이 불리하도록 이뤄져 왔다. 하지만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한 지금, 과거 발전단계에서의 소극적 재정운용으론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한 주장은 공동체의 유지와 공존을 위해 정부 재정의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하며 이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 측면을 고려해 재정정책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 것으로 생각한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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