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의 ‘정책의 시간’

2024.04.16 21:49 입력 2024.04.16 21:51 수정

그토록 요란했던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여당과 야당은 저마다의 계획과 향후 비전설계를 통해 국민에게 선택받고자 치열한 경쟁(이라고 쓰고 실상은 정치투쟁!)을 벌였다. 나는 총선이나 대통령선거는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다 꺼내 놓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정책운동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온 인구 저출생/고령화, 잠재성장력 저하, 사회격차와 불평등 심화, 외교와 안보 위기, 지역불균형과 인구소멸, 그리고 현 정부의 야심 찬 개혁 3종 세트인 교육/연금/노동 개혁과 지난 총선 기간 내내 한국사회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는 의대 정원 증원 이슈 등 해결할 문제는 넘치고 넘쳤다. 하지만 이들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과 대안은 특별하게 없어 많이 아쉽다. 또한 여기저기 나름대로 멋진 공약들이 많이 제출되었지만 그 공약들의 진정성은 상당히 의심받는 눈치였다. 무엇보다도 재원조달의 방법이 전무했고 정책의 효과성도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채 지역민들의 즉자적인 요구를 담은 미봉책일 뿐이었다.

총선 이후 특정 정부부처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한다. 돈주머니를 틀어지고 있는 기획재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책임감을 은근하게 압박하는 말일 듯하다. 그런데 나는 특정 부처의 시간이 아니라 정부 부처 모두와 국회가 책임을 지고 국민들의 삶을 보듬어 챙기는 ‘정책의 시간’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들은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쉽사리 살아나지 않는 바닥경기를 살리고 고물가로 고통받는 서민경제를 안정화시켜야 한다. 작년의 유례없이 낮은 1.4%의 성장률로부터 올해는 조금 나은 2.2%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는 수출 회복세에 의한 것이니 내수경기는 여전히 크게 개선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처럼 정부부문이 민간부문보다 성장기여도가 낮아 성장의 발목을 잡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될 것이다. 보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경제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

둘째, 세입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2022년과 2023년에 현 정부에 의해 도입된 감세정책에 대한 본격적인 충격은 경기가 크게 침체된 작년보다 올해에 보다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지난 한 해 56조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세입결손으로 국회에서 통과된 예산도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다. 얼마 전 발표된 국가회계결산에 따르면 2023년 총지출은 2022년 대비 무려 71조7000억원이 감소하였다. 따라서 여당과 대통령이 총선정국에서 발표한 각종 감세 관련 정책과 법안들은 모두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2024년 2월 국세수입은 12조1000억원으로 세수실적이 매우 저조했던 2023년 대비 불과 7000억원 증가했을 정도로 올해의 세수 상황 역시 좋지 않다.

셋째, 재정정책 운용기조에 대한 재정비 문제다. 정부의 재정지출은 이미 작년에 국회 예산심의와 의결을 거쳐 다 정해 놓았다. 그런데 이번 총선정국에서 지역의 현안(대규모 SOC 사업 등)과 관련한 사업들이 공약이란 형태로 우후죽순으로 발표되었다. 이는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전혀 아니며, 재정건전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현 정부 재정정책 기조로도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빚내서 돈 쓰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정부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기이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작년의 예산을 우선 충실하게 집행하고 부족할 경우 추경을 통해 필요한 지출소요를 적극적으로 채워야 한다.

넷째, 재정규율의 정비이다. 지난 긴 시간 동안 정부와 국회 그리고 정책서클 내에서는 암묵적으로 형성된 넘지 말아야 할 선들이 몇 있다. 상속세와 증여세와 부가세에 대한 감세 등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채 성급하게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정부 때부터 논의해왔고 법으로 제정되어 시행될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를 하루아침에 유예한다는 것도 너무 원칙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식거래세도 원위치 시켜놓아야 비례적으로 맞다. 이렇듯 원칙도 없고 효과도 검증되지 못한 채 남발된 조세정책을 시급하게 회복시켜야 한다. 재정지출에 대해서만 재정규율을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은 행정부만이 오롯이 책임지거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특정 부처가 모든 것을 책임지거나 권한을 행사해선 안 된다. 현재 정부의 정책기조를 변경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 총선에 나타난 민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민심을 담아 새롭게 구성될 국회와 정부가 함께 민생과제를 놓고 경쟁하고 협력해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총선 후 다가올 ‘정책의 시간’을 기대해 본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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