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

2015.10.11 20:36 입력 2015.10.11 20:37 수정
박상훈 | 정치발전소 학교장

여야 사이뿐 아니라 같은 당 계파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듣다 보면, 이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 건지 싸움을 하고 있는 건지가 구분이 안 된다. 정치에서 웃음이 사라진 지도, 정치가 시민들을 웃게 만든 지도 오래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뭐든 상대방 탓으로 만들고자 하고 마치 ‘거울 이미지 효과’처럼 모진 말을 반사하듯 주고받는 동안, 정작 중요한 사안을 실체적으로 다루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안 해도 되는 일처럼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해두고 싶다. 우선 싸움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싸우기 위해 정치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 사회에서 갈등과 다툼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정치의 역할과 기능이 있는 것이지, 거꾸로 정치가 갈등을 더 심화시키고 싸움을 인위적으로 조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反)사회적인 일이다.

우리가 처한 여러가지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 없는 갈등을 만들고 사소한 갈등을 즐겨 최대화하려는 것을 정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정치가 필요하겠는가.

[정동칼럼]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데, 사실 이 형용모순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치가 안고 있는 근본적 어려움은 갈등적인 요구들 사이, 혹은 해결할 수 없는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일하는 데 있다. 그 때문에 정치라는 인간 활동은 수많은 이율배반(antinomy)을 감당해내지 않고는 실천될 수 없다. 상식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규범이나 도덕적 기준을 연장해서 정치를 다루는 것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자신의 영혼이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감수하고서라도 공익을 위해 ‘악마의 무기’를 손에 쥐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 인간의 정치다.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선택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 정치다. 그렇기에 이런 운명적 조건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면서 남다른 정치적 인식을 담은 정치적 말의 힘을 선용하는 일은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정치 언어의 역할은 변화와 개선을 위한 ‘가능성의 공간’을 확대하는 데 있지, 상대방이 거부감을 갖도록 정형화된 이미지를 부과해 소모적인 갈등을 지속하는 데 있지 않다. 민주주의는 강제나 억압이 아닌 설득의 힘, 말의 힘을 통해 실현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당연히 정치 언어가 좋지 않다면 그런 공동체에 가까이 가기는 어렵다. 변화와 개선을 이끌 적절한 말을 쓰는 일이 정치가의 의무이자 규범이 되었으면 한다. 공동체를 사람 살 만한 풍요로운 곳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으뜸은 생산도 성장도 기술도 아닌 좋은 말의 효과에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지 못하면 정치의 긍정적 기능은 기대할 수 없다.

어떤 사안이든 절대적으로 옳은 결론을 갖기는 어렵다. 당연히 다양한 요구와 이견 사이에서 말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많다. 상대의 관점에서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결정에 따라서 갈리게 될 피해자와 수혜자의 관점도 균형 있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당파적인 입장을 말하더라도 최대한 보편적이고 공정할 때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계파와 파당적 입장만 고집스럽게 내세우며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을 ‘정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라고 할 수 있는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돌이켜 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됐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돼 있던 때였다.” 상황을 개선하려는 실체적 목적은 빈곤한데, 뭔가 하는 척하는 구호나 상투적인 멋진 말만 외쳐서 일이 된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그렇지 않고 또 그럴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로부터 변화를 모색하고자 한다면, 정치적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 속의 이중적 억압성을 날카롭게 문제 삼는 작품들로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토니 모리슨은 덧붙여, “문학은 정치적인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했는데, 필자 생각으로는 문학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가장 위험하고 갈등적이며 이율배반적인 조건에서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그곳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사람의 말과 행동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을까? 제대로 정치적이어야 실체적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고, 그럴 때 정치는 희망적이고 또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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