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2019.05.19 20:39 입력 2019.05.19 20:41 수정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3개월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미국은 북한의 석탄운반선을 나포했고 북한은 두 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했다.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다고 하더니 점차 대결적 구도로 가는 듯하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작금의 상황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북핵을 북한과 미국 간 해결할 문제라고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제3자가 되어버렸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북핵 문제 당사자라고 주장해도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북한이 핵폐기 의사가 없다고 비난하는 것 정도이다. 북한을 유인하기 위한 어떤 행동도 불가능하다.

[정동칼럼]북핵,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정치권의 행태는 실망스럽다. 그들에게 북핵이란 존망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현혹하기 위한 정쟁의 도구에 불과한 듯하다. 소위 보수권은 현정부가 미국 보수층으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 안에서는 싸우더라도 밖에 대해서는 단결해야 한다는 당연한 보수적 원칙도 무시되고 있다. 정적에 대한 증오심과 국익 추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분별력의 결여는 안보에 여야가 없다는 격언을 빛바랜 포스터로 만들었다. 북한 핵을 비난한다고 당사자 자격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 해결 과정에 개입해야 당사자다. 비난만 하는 것은 방관자다.

하노이 회담 실패에는 미국이 금번 협상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 이번 북·미 회담은 북한이 핵무장능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한 다음 이루어졌다. 과거의 회담과 차원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원칙고수를 주장하며 북한의 핵폐기 의사가 없다고 비난하는 데 집중했다. 언론들도 이에 동조했다. 잘못된 북한의 행동을 그냥 넘기면 안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번 회담 결렬의 의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미국은 제재를 강조했다. 지속적인 제재로 북한의 입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제재로 북한이 손을 들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하다. 북한이 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북한체제도 붕괴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북한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놔둘 것인가? 이런 당연한 질문에 대한 고민을 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하노이 회담 결렬이 아쉬운 것은 북한의 완전한 핵무장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북핵 문제 해결보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사 보수주의적 분위기 때문이다. 몇 차례 북한의 핵무장을 지연하고 중지시킬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은 미국과 한국의 강경파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변화에 관계없이 강경책만을 고수하는 것은, 비난을 감수할 도덕적 용기가 부족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절제심의 결여 때문이다. 지식인들과 언론이 비판적 사유라는 본질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0년 넘게 진행된 북핵 협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북한이 핵문턱의 마지막을 넘는 지금의 상황에서 제재의 효과를 운운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다. 북한이 연말 이후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한 말은 최후 통첩이나 마찬가지다. 회담 결렬 이후 전례없이 매우 절제된 북한의 태도는 자신만만함에서 나온 듯하다. 우리는 북한의 자신만만함을 읽지 못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연말이 지나면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제까지 전문가들이 북한의 행동 예측을 제대로 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능력을 확보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실험은 무의미하다. 시간을 허비하면, 내년 초 우리는 만수대광장에서 북한 전략군사령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ICBM과 SLBM의 작전배치 완료를 보고하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북한 전략핵무기 작전배치 이후 전개될 수 있는 상황에 무관심한 정치지도자들과 책임자들의 태도가 개탄스럽다. 북한의 전략핵 작전 배치는 동북아 및 태평양의 안보상황을 불확실하게 판을 바꿔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이 북핵 자체보다 더 큰 위협이다.

6월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기대가 크다. 하수는 원칙을 주장하고 고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은 고금의 상식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라는 병서의 지혜도 있다. 한·미 대통령이 그런 상식과 지혜를 굳이 거스르지 말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주기 바란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진정 지혜로운 전략가다. 더 이상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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