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냐, 여론조작이냐 '슬기로운 판독법'

2021.07.16 06:00 입력 2021.07.16 09:54 수정

[여의도 앨리스] “정치부 기자들이 전하는 당최 모를 이상한 국회와 정치권 이야기입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최 의원은 이낙연 후보 캠프 상황본부장을 맡고 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최 의원은 이낙연 후보 캠프 상황본부장을 맡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한 장의 그래프가 화제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여론조사 추이를 표현한 그래프인데요. 언뜻 보면 ‘이 지사는 하락세고, 이 전 대표는 상승세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죠. 혹시 이상하다고 여긴 부분이 있나요? 7월7일 오마이뉴스와 리얼미터가 발표한 수치를 볼까요. 이 지사의 32.4%와 이 전 대표의 19.4%가 거의 붙어 있습니다. 13%포인트 차이가 나는데도 말이죠. 그래프 Y(세로)축 범위가 0~100인지, 0~80인지, 0~50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조사는 7월 6~7일 전국 18세 이상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됐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됩니다).

이 그래프는 지난 8일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왔습니다. 최 의원은 이낙연 후보 ‘필연캠프’의 상황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 전 대표의 상승세를 이 지사의 하락세와 비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래프를 이렇게 그린 걸로 보입니다. 누군가는 이 그래프를 이 전 대표 캠프의 ‘홍보 전략’으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어떻게 저 격차가 저렇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15일 기준 2022년 대통령 선거가 237일 남았습니다. 대선 레이스 국면입니다. 매일 각종 여론조사 기관에서 ‘대통령선거 정당지지도’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등을 묻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기관마다 표본수, 조사 시점, 조사 방법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수치는 각각 다르게 나옵니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각 캠프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며 여론전을 합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는 언론보도도 단편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다 보니 여론조사를 본 유권자들은 혼란스럽습니다.

쏟아지는 여론조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시민들의 현명한 ‘판독’을 위해 여러 여론조사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여론조사는 평면적인 수치가 아니라 ‘추이와 흐름’을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론조사는 ‘후행 지표’입니다. 특정 시점의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 전에 벌어진 사건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이날 발표된 오마이뉴스·리얼미터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보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지도는 27.8%였습니다. 같은 조사의 6월 4주 대비 4.5%포인트 하락했습니다. 2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윤 전 총장의 장모가 요양급여 부정수급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고(7월3일), 부인 김건희씨의 논문 표절 논란이 일어 국민대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7월7일). 이런 요인들이 윤 전 총장의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원불변’의 수치가 아닙니다. 앞으로 있을 사건에 따라 오르거나 내릴 수 있는 특정 시점의 결과일 뿐입니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전무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여론조사는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담진 못한다”며 “각 결과를 ‘조사 시점의 여론’으로 이해해야지 변동 가능성을 전제하지 않고 절대적인 걸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무는 “일회성 결과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건 과장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며 “전체적인 흐름을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도 “여론조사는 여러 변수에 의해 항상 변한다”며 “그 시점에서의 지지율이지 앞으로의 지지율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여론조사의 정확도는 얼마나 될까요. 일각에선 여론조사 방법론을 문제삼기도 합니다. 여론조사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여론조사는 크게 자동응답(ARS) 조사와 전화면접 조사로 나뉩니다. ARS 조사는 미리 설문 내용이 녹음된 음성을 듣고 대상자가 유·무선 전화기의 번호를 눌러 응답하는 방법입니다. 전화면접 조사는 면접원이 대상자에게 미리 준비한 설문지에 따라 질문하는 방식입니다.

김춘석 전무는 “ARS가 기계음이다 보니 응답률이 전화면접보다 저조해 참여한 사람들이 ‘정치 고관여자’ ‘고연령층’ ‘보수’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전화면접 조사는 정치 저관여자도 참여한다”고 말했습니다.

ARS 조사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서 전화면접이 우월하게 좋다고 평가할 순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두 방식 다 응답률이 10% 미만으로 저조하기 때문입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여론조사는 응답률이 낮아 각 기관들이 밝히는 오차범위보다 사실 오차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서 요구하는 (최소) 응답률이 5% 정도”라며 “현재 응답률을 계산할 때 분모에 전화를 아예 안 받는 사람이 포함돼 있지 않다. 실제론 20명이 아니라 100명 이상에게 걸어야 한 명쯤 응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100명 중에서 답변한 1명이 나머지 99명을 얼마나 대표한다고 봐야 하는지 의문인 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펴낸 <2021년 선거여론조사 가이드북>에 따르면 응답률은 ‘접촉된’ 대상자 중 응답이 완료된 비율을 뜻합니다. 접촉이 실패한 대상자는 포함하지 않는 것입니다.

각 여론조사 기관이 확보한 조사대상 표본의 ‘질’에 대한 의구심도 있습니다. 박 교수는 한국의 여론조사는 완전 무작위 샘플링을 하는 미국과 달리 “쿼터(할당) 샘플링이라고 해서 자기들이 갖고 있는 (성별, 세대별, 지역별 등의) 인구학적 기준에 따라 타켓팅을 해서 조사한다”면서 “랜덤 샘플보다는 더 오차가 클 것이라는 것이 통계학자들의 이야기다”고 말했다.

종합해 보면 여론조사는 여론의 ‘경향성’을 알아보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겁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나오는 문구를 변형해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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