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정치 신인 분투기 “선거 빚 갚느라 일용직 뜁니다”

2018.08.11 06:00

지난 6월13일 치러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은평구의 한 담장에 선거 벽보가 붙어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 선거비용 제한액을 34억9400만원으로 책정했다. 총 32억2104만원을 쓴 박원순 서울시장은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은 반면 1억5079만원을 사용한 정의당 김종민 후보는 보전 기준인 득표율 10%를 넘지 못해 보전받지 못했다. 이상훈 기자 doolee@kyunghyang.com

지난 6월13일 치러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은평구의 한 담장에 선거 벽보가 붙어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 선거비용 제한액을 34억9400만원으로 책정했다. 총 32억2104만원을 쓴 박원순 서울시장은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은 반면 1억5079만원을 사용한 정의당 김종민 후보는 보전 기준인 득표율 10%를 넘지 못해 보전받지 못했다. 이상훈 기자 doolee@kyunghyang.com

김민수 정의당 인천 남동구 지역위원장은 지난달 23일 세상을 떠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제대로 배웅하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하필 노 원내대표가 세상을 떠난 날부터 지역 공사현장의 하청업체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일러를 교체하는 일이었다.

그는 20일 동안 정해진 물량의 일을 끝내야 해 주말에도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조문만 하고 추도식을 못가서 마음이 안 좋아요.”

김 위원장이 일을 시작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인천에서 시의원 비례 1석만을 차지했다.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고 이왕이면 노동 현장을 일터로 잡자고 생각했다.

사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선거비용으로 남은 빚이었다. 지난 선거에서 구의원으로 출마한 그는 9.78%의 득표율을 얻었다. 10%가 넘지 못해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했다. 선거비용은 약 4000만원 들었다. 1000만원은 당에서 지원했고 나머지는 가족·지인들의 도움으로 충당했다. 선거 뒤 2000만원 정도의 빚이 남았다.

그는 10월 말까지 빼곡히 일을 잡았다. 하루 일당을 평균 12만원으로 잡고 100일 동안 1200만원을 버는 것이 목표다. “선거 전 여론조사도 13.8% 나왔고 분위기가 좋아 15%는 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슬아슬하게 10%를 넘지 못하니 여러 가지가 후회됐다. “유세차 대신 중고 오토바이를 50만원에 빌려 선거운동을 했어요. 1000만원 정도 드는 유세차 비용이 비싸고, 주민들도 시끄럽다고 싫어하거든요. 나중에는 후회했어요. 시끄럽지만 유세차라도 빌려 떠들고 다녔으면 10%를 넘어 선거비용을 절반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해서요.”

◆“거대정당은 돈 펑펑 써도 돌려받는데, 우린 빚만 쌓였죠”

6·13 지방선거 도전했던 정의당 정치 신인의 분투기

후회를 하다 보면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유세차를 써야만 존재감을 내세울 수 있는 정치자금법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치자금법상 모금활동을 할 수 없고 선거기간 외에는 지역에서 정치활동은 전면 금지돼 있다. “일상적으로 정치활동을 하며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평가받을 수 없게 해놓으니까 선거기간 13일 동안 유세차 타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과연 그렇게 치러지는 선거가 주민들에게 제대로 평가받는 선거일까요.”

■ 법·제도적 실체 없는 지역위원장

노회찬 원내대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에는 현행 정치자금법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거대정당이 아닌 진보정당은 선거를 치를수록 가난해지고, 원내가 아닌 원외 정치인들은 지역에서 법·제도적 실체가 없는 존재가 돼 돈이 많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자금법하에서 선거기간이 아닌 때에 원외 지역위원장의 존재는 지워진다. 이들은 법·제도적 실체가 없어 존재감을 일상적으로 드러내는 정치활동을 할 수가 없다. 일명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이 추진되면서 지구당은 폐지됐기 때문이다. 지구당을 대체하는 당협위원회는 법외조직이다. 이호성 정의당 구로갑 지역위원장은 원외 지역위원장은 실체는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리라고 말했다. “정치인으로서 제 존재와 활동은 지역에서 분명히 실체가 있어요. 현역의원, 구청, 구의원을 찾아가도 해결이 안된 문제들을 안고 마지막으로 지역주민들이 찾는 게 저예요. 저를 찾아오는 주민들이 많을수록 지역의 삶이 어려워지거나 행정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거죠. 제가 작은 역할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다른 당이나 구청을 찾아다니며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내기도 해요. 어쨌든 그게 제 존재이유예요. 현재 지역사회에서 정의당 지역위원장에게 그런 역할이 요구되고 있고 그건 상당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활동에 대한 법·제도적 실체가 없다 보니 활동을 뒷받침할 어떤 지원도 없이 ‘자력갱생’하는 수밖에 없다. 후원도 받을 수 없고 중앙당의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이 위원장은 지역에서 작은 전자제품 판매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자영업은 “몸이 지역구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 결정한 최선책이었다.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생계활동이 필요한데 그나마 지역에서 자영업을 해야 지역에서 주민들을 만나고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어요. 직장생활은 시간 내기가 어렵거든요. 하지만 자영업도 완전히 몰입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아요. 정의당의 이름으로 이 지역에서 활동한다고 간판 내걸고 있으면서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있어서 저희를 지지하고 저희의 활동을 기대하시는 주민들에게 죄송하죠.”

생활에 드는 기본비용 외에 지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돈이 들게 마련이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지역의 직능단체 회의만 참석하더라도 10~20회다. 몇 만원씩 내야 하는 회비만 해도 쌓이면 목돈이다. 거대정당 같은 경우는 각종 산악회 등 주민모임까지 찾아다니지만 거기까지는 무리다. 그나마 당원들과 사업을 구상해서 추진하면 사업자금은 당원들 주머니에서 충당된다. “정의당 당원들은 당비 내고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당에 돈 내고 몸 대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지역활동이 당원들 희생에 기반해서 사업이 만들어지고 그런 시스템이죠.”

김민수 정의당 인천 남동구 지역위원장이 지난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세차 대신 중고 오토바이를 이용해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김민수 지역위원장 제공

김민수 정의당 인천 남동구 지역위원장이 지난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세차 대신 중고 오토바이를 이용해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김민수 지역위원장 제공

■ 준다고 해도 못 받는 후원금

선거판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은 120일.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120일 동안 후원금 한도액인 3억원을 모금하는데 현역의원은 이미 그 전에 모금액을 채워두고 움직인다. 김일웅 정의당 강북구 지역위원장은 지금까지 기초의원에 2번, 국회의원 선거에 1번 도전했다. 그나마 기초의원은 선거기간 동안에도 후원회를 둘 수 없다. “같이 학생운동 하다가 이제는 사회생활하고 있는 친구들이 간혹 후원하고 싶다고 말해요. 진보정치에 부채감이 남아 있는 친구들이 그런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불법이니까 당으로 후원을 하라고 하죠.”

재원이 부족하기는 중앙당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해 중앙당에 후원하는 게 법적으로 허용되고 난 후 정의당은 정당후원금 1위에 올랐다. 약 6억5000만원을 후원받았다. 2위인 더불어민주당은 5억1000만원 정도였다.

그러나 규모가 큰 국고보조금에서는 거대정당과의 격차가 큰 차이로 벌어진다. 지난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세 정당은 100억원 내외의 보조금을 받았지만, 정의당은 27억원을 받았다. 국고보조금의 절반은 원내교섭단체가 있는 거대정당이 나눠갖는다. 그리고 그 절반을 다시 의석수와 지지율로 나눈다.

구의원 출마해 9.78% 득표율
10% 못 넘어 선거비 보전 안돼 빚
2000만원 갚으려고 보일러공
돈 아끼려 유세차도 안 빌렸는데
‘좀 더 시끄럽게 떠들걸’ 후회

선거기간 외 정치활동 금지로
지역위원장들은 후원도 못 받고
일상적으로 존재감 못 드러내
생계활동 병행하며 ‘자력갱생’

‘노회찬도 못 지킨’ 정치자금법에
소수정당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정치 신인들 제도권 진입 막혀
사회적 약자 정치적 대변 ‘요원’

선거를 치르고 나면 어떤 정당은 더 부유해지지만 정의당은 더 가난해진다. 지난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 후원회 실무를 맡았던 장경환 정의당 총무부장은 정치자금법의 가혹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난 대선의 선거비용 제한액은 509억9400만원. 대선 후보는 법정선거비용의 5%인 25억원 정도를 후원금으로 모금할 수 있었다. “후원금 외 나머지 선거비용은 후보와 당이 알아서 충당해야 해요. 심 후보는 후원금과 국고보조금 등으로 50억원 정도의 선거비용을 지출했습니다. 그리고 한 푼도 보전받지 못했죠.”

심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얻은 득표율은 6.17%. 득표율이 10%를 넘으면 선거비용 절반을 보전받고 15%를 넘으면 전액을 보전받는다. 심 후보와 달리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등은 15% 이상을 득표할 것이 확실시됐다. 이처럼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가능성은 선거과정 전반을 좌우한다. “거대정당의 후보들은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게 확실했기 때문에 선거비용 제한액인 500억원 가까이 지출했습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50억원을 쓴 후보와 500억원을 쓴 후보의 경쟁이 공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제도의 불리함 속에서 시간이 갈수록 정치자금을 구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이호성 위원장의 말이다. “이 지역에서 저를 보고 후원해주실 수 있는 주민분들은 소액후원자예요. 그럼 주로 밖에서 개인적 연고에 따라 모금을 하게 돼요. 그럼 또 지역 밖으로 나갔다 오고 선거운동할 시간을 빼앗기게 됩니다. 또 당선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갈수록 모금하는 게 힘들어져요. 처음에 후원해주던 지인들도 두 번째, 세 번째는 힘들어지죠. 그걸 감내해야 하는데 120일 선거운동 기간 동안 다 해내야 하니까, 한 마디로 하지 말라는 거죠.”

■ 고사하는 진보정치

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돈이 많거나 경제적 여력이 있는 교수·법조인들이 ‘인생 2모작’쯤으로 도전하는 일이 돼버린다. 학생운동에서 시작해 평생을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운동을 해온 정의당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평생 진보정치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몇십 만원 정도입니다. 민주노동당 창당하고 당직자로 있으면서 월급 60만원을 받았고 그 이후에도 진보정치를 하면서 월 150만원 이상을 받은 적이 없고요. 그나마 당직자는 월급을 받지만 선거에 나가게 되면 빚이 늘어서 재정적으로 더 힘들어집니다. 인프라가 이런 상황에서 좋은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을까요.”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의당에서 지역구 후보자들에게 100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했을 때 당내에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당이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됐기 때문이다. 선거기간이 다가오면서 확실히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재정적인 부담으로 후보로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김일웅 위원장은 “농부는 땅을 탓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지금의 정치제도는 진보정당의 정치신인들이 넘어서기 힘든 장벽처럼 보인다. “2010년에 지방선거에 출마했고 2012년에 총선에 출마했어요. 정치를 하겠다는 건 제도권에 진입해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건데 제도권에 진입하는 길이 정치신인들, 진보정당에는 가로막혀 있어요. 지역에서 10년 활동해도 저는 계속 신인이죠. 진보정당 지역위원장이라는 게 오르고 싶지 않은 자리이기도 해요. 2004년에 원내 진출 10명이 가능했던 건 전국적으로 지역구 100여명의 후보들이 비례당선을 위해 나가서 뛰었기 때문이에요. 전통적으로 그래 왔죠. 그 과정에서 7번 출마하신 분들도 있고 삶이 파탄나신 분들도 있고….”

김민수 위원장은 지역에서 활동은 이어가겠지만, 선거에 또 출마할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경기 용인, 연천 등 수도권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공사일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수도권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최소 지역에서 2~3회 회의가 있고 지역위원장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지역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면 17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저녁에는 오로지 당 활동과 지역시민단체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진보정치의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뜻은 변함이 없지만 현행 정치자금법하에서 다음 선거에 도전할 수 있을까는 물음표로 남았다.

이호성 위원장은 힘들지만 다음 총선에도 도전하겠다는 뜻을 확고히 내비치며 정치자금법을 포함해 선거제도 개혁을 희망했다. “(내가) 지쳐서 나가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꾸는 그런 악순환이 일어날 거고, 이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만큼 정치적으로 대변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개선되지 않고 악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자금법이 개정되어야 합니다만, 이게 정치적 이해집단들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잘못 비칠까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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