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예일천하’ 비결은 기여입학

2004.03.10 19:05

미국의 정치는 왜 예일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을까.

올 미국 대선에서 존 케리 상원의원이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예일대 신화’가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케리뿐 아니라 공화당의 러닝메이트인 조지 부시-딕 체니 정·부통령 역시 예일맨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는 19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하버드대학 출신들의 잔치였다. 1789년부터 1828년 사이에 실시된 11번의 대통령선거에서 하버드 출신이 대통령이나 부통령 후보로 끼이지 않은 때가 한번도 없을 정도였다.

예일 출신 첫 대통령은 1908년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였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72년이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조지 맥거번이 부통령후보로 하버드 출신의 토머스 이글턴을 지목했다가 예일맨인 서전트 슈라이버로 교체하면서부터다.

이들은 당시 대선에서 실패했지만 이때부터 현재까지 32년간 예일 출신이 정·부통령 후보 명단에서 빠진 적은 한번도 없다. 하버드 출신들은 당시 11번의 선거에서 3번밖에 이기지 못했지만 예일 출신들은 이 기간동안 6번이나 승리했다. 1980년부터는 한번도 승리를 넘겨준 적이 없다. 부통령 2번, 대통령 1번을 역임한 아버지 부시를 비롯, 클린턴 모두 예일맨들이다. 이번 대선이 예일맨들간에 치러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7연승이라는 불가사의한 기록을 세우는 셈이다.

이에 대해 예일대측은 그 이유로 헌신적 공공서비스와 학생들에 대한 엄격한 지적훈련 전통을 꼽는다. 그러나 버몬트대학의 개리슨 넬슨 교수는 예일대학의 기여입학제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 있다. 예일대는 1920년대에 아이비리그로선 최초로 동문자녀들의 입학을 우대하는 기여입학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당시 명문가 자제들이 대거 예일대로 몰려들었다. 부시 대통령 부자는 2~3대째, 케리와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도 2대째 예일맨이다. 이같은 인재들의 집합은 예일대를 귀족대학으로 부상시켰고, 대학의 브랜드이미지 전략과 맞아떨어져 정치인 양성소가 됐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워싱턴/정동식특파원 dosje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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