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균교수 등 유럽 사례연구서 ‘제노포비아, 신자유주의 덫’

2006.09.18 17:53

지난해 7월 런던의 지하철과 버스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로 57명이 생명을 잃은 후 영국민들 사이에 유행한 말은 ‘내부의 적(enemy inside)’이었다. 그해 11월 프랑스 전역의 도시 교외에서는 이민자 자녀들에 의해 2주 가까이 연일 수천대의 차량이 불타는 일이 발생했다. 2004년 말 네덜란드에서는 이슬람 사회 내의 여성차별 인습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 젊은 영화감독이 이슬람 근본주의자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후 피의 보복이 악순환됐다.

-세계화 가속화로 급속 진행-

김세균교수 등 유럽 사례연구서  ‘제노포비아, 신자유주의 덫’

이들 증오 범죄의 뒤에는 공통적으로 늘어나는 ‘이민자’가 있었다. 각기 방식은 달랐지만 서유럽 내에서는 그래도 이민자 통합 정책을 가장 성공적으로 해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세 나라는 사건 이후 이민자 관련 법·제도를 한층 보수화하기 시작했으며 실업률을 낮추는 갖가지 대책을 발표했다. 백인들이 외국인에 대해 갖는 ‘제노포비아(외국인 또는 이방인 혐오증)’는 더욱 심해졌다.

서울대 김세균·김수행 교수 등 한국의 원로 좌파 학자들이 최근 펴낸 ‘유럽의 제노포비아(문화과학사)’는 유럽 국가들이 겪는 이민자 문제의 핵심을 ‘제노포비아’라는 말에서 찾고 있다. 이들은 영국·프랑스·독일의 제노포비아를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했다.

이들이 ‘이민자’와 ‘제노포비아’에 주목하는 이유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속화함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폭증하고 있는 이 문제들에는 좌파 학자들이 그동안 강조해온 ‘계급’ ‘노동’ ‘실업’ 등 모든 것이 망라돼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에 따르면 ‘제노포비아’는 ‘인종주의’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김세균 교수는 “인종주의가 백인들의 유색 인종에 대한 인종적 우월성 이데올로기에 바탕해 주로 서구 선진국들에서 나타났다면, 제노포비아는 기존 인종주의에 사회·경제적 및 종교·문화적 요인이 더해진 개념으로 지구촌 전역으로 확산돼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1백만’ 한국도 현실로-

김세균교수 등 유럽 사례연구서  ‘제노포비아, 신자유주의 덫’

외국인들이 내 나라에 들어오는 바람에 나와 내 자식들의 취직 기회가 줄었고, 나의 세금으로 누릴 수 있는 복지 서비스가 축소됐으며 이질적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이들에 의한 테러와 범죄 위협에까지 시달리게 됐다는 피해 의식이 제노포비아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임종헌 박사(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에 따르면 제노포비아를 직접 유발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심화시키는 실업과 상대적 빈곤 문제와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이다.

대신 법·제도나 정치·문화적 요인은 이를 완화시키거나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인종차별 금지법이나 이민·피란민법이 제대로 정착될 경우 법·제도는 제노포비아를 완화할 수 있지만 극우정당의 출현 같은 경우는 이를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럽 지역을 연구해온 6명 필자들의 관심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진행과 더불어 생존 기회를 찾기 위해 선진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의 수가 늘며 외국인 혐오 역시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한 유럽 현실에서 유럽연합 차원의 대응이 어떤지, 우리에게는 어떠한 시사점을 갖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외국인 1백만명 시대, 전체 결혼 중 국제결혼 비율 10% 시대에 진입한 한국의 경우에도 ‘제노포비아’라는 말은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은 국내 학계에 이 부분에 대한 앞으로의 본격 연구를 요구하는 시론(試論)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손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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