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참사 이후, 지금 그 곳은

씨랜드 참사 현장, 버젓이 불법증축물

2014.05.10 16:09

·오토캠핑장으로 영업 중… 고객 대부분 화재사고 현장인 줄 모르고 이용

후회다. 안타까운 바람이다. 4월 16일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배만 안 탔다면, 배가 인천항을 떠나지만 않았다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아이들은 지금쯤 평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재잘거리며,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고, 엄마에게 밥투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만이 아니다. 15년 전 인현동 사건 때도, 20년 전 삼풍 사건 때도 그랬다. 대형참사가 날 때마다 언론은 인재를 말한다. 막장이었던 관리시스템을 고발한다. 돈벌이에만 눈이 먼 파렴치한의 행태도 짚는다. 그런데 왜, 사건은 판박이로 되풀이되는 걸까. 과거 대형참사로부터 대한민국은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의문을 품고 <주간경향>은 과거 대형참사 현장에 달려갔다.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낳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얼굴을 목격했다. <편집자 주>

5월 6일 연휴의 마지막 날,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 씨랜드 참사 현장을 방문했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이 발생한 날은 1999년 6월 30일 새벽. 유치원생 19명 등 23명이 숨졌다. 올해로 15년이 지났다. 진입로는 여전했다. 현장으로 가는 두 길 모두 차 한 대가 가까스로 지나갈 수 있는 농로였다. 사건 당시도 소방차가 들어가기 힘들어 원망을 받았던 도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참사가 일어난 장소가 어딘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국가기록원이 보관하고 있는 2권짜리 정부 측 백서에 나와 있는 주소를 찾아보면 현재 오토캠핑장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 내부에 자리잡은 수영장 인근으로 나온다. 이 오토캠핑장은 개설 후 카페를 통해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캠핑장 측에서 개설한 카페에 들어가 보면 지난 3월 말 KBS 1박2일 촬영지로 사용되었다는 글과 사진이 공지되어 있다. 해당 카페에 공개되어 있는 글 중에선 씨랜드 사건은 거론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오토캠핑장 이름과 ‘씨랜드’를 검색하면 관련된 논란이 나온다. 참사가 일어난 장소라는 주장과 이곳이 아니라 바로 옆에 위치한 야**마을 오토캠핑장(현재 폐쇄)이라는 주장이다.

1999년 6월 30일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의 현장. 사건 당시 씨랜드는 오른쪽 수영장 바다쪽 면에 위치하고 있었다.<br />사진 왼쪽의 원형 수영장은 여름에는 사진 위쪽에 자리 잡은 오토캠핑장이 사용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1999년 6월 30일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의 현장. 사건 당시 씨랜드는 오른쪽 수영장 바다쪽 면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진 왼쪽의 원형 수영장은 여름에는 사진 위쪽에 자리 잡은 오토캠핑장이 사용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캠핑장 주인은 화재현장 다른 곳 주장

해당 오토캠핑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이었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군데군데 비어 있지만 야영을 마친 많은 가족들이 삼삼오오 따뜻한 봄볕을 즐기고 있거나 공놀이, 갯벌체험을 즐기고 있었다. 사고가 난 수영장 쪽은 펜스로 둘러쳐져 있었다. 하지만 사건 당시부터 있었던 두 개의 수영장 중 위쪽 원형 수영장은 여름이면 이 캠핑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수영장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수영장, 매점가는 길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 캠핑장을 이용한 손님들이 수영장을 이용한 후기가 나온다. 6일 만난 캠핑장 손님들 대부분은 이 캠핑장이 15년 전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 장소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다. “씨랜드 화재사건이 난 곳이 근처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확실히 어딘지는 모르겠다”와 같은 반응이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의 등기부등본에는 이곳 땅주인이 김모씨(41)로 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재판 기록 등을 보면 시설대표 박모씨(54)가 구속·처벌받았다. 박씨는 최종적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이 오토캠핑장을 운영하는 주인 김모씨를 만났다. 김모씨는 땅주인 김씨의 친인척이다.

씨랜드 사건이 난 곳이 어디인가요. 등기부등본 상에는 수영장 지번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가 아니고 저쪽(야**캠핑장 쪽을 가리키며) 가건물을 지은 데고, 그 사람이 화재사건을 낸 주범입니다. 저쪽 펜스 너머.”

수영장 자리가 아닙니까.

“화재가 난 건물은 그쪽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쭉 이어져 있는 곳이에요.”

땅주인이 김모씨로 되어 있는데, 그러면 박씨는 임대한 것입니까.

“45년 전부터 우리 일가 소유입니다. 박씨가 거기를 포함해 전체를 임대해서 쓴 것입니다. 저 사람(박씨)이 들어와 임대해 쓰다가 결과적으로 그런 사고가 난 거예요.”

오신 손님이 씨랜드 사건 거론하면 힘들겠네요.

“우리한테는 악몽이죠. 무슨 관광 온 것처럼 ‘야, 저 자리가 거기래’, ‘어디가 사고 난 곳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참 한심하죠. 자기 자식이 죽었어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따져 묻고 싶습니다. 당신 관광 온 거냐고.”

인터넷에 보면 이 캠핑장 자리가 사고난 곳이라는 사람도 있는데요.

“저 사람들 일가 중에서 일부러 그렇게 올리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 잔당들의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씨네와 교류는 전혀 없었습니까.

“전혀 없죠. 우리에겐 원수 같은 사람인데, 저 사람 하나 때문에 동네가 욕을 먹으니, 동네 사람들도 싫어하죠. 박씨가 감옥에서 나온 뒤 오토캠핑장을 열었는데 다 불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네사람들의 평가는 조금 달랐다. 박씨가 출소한 뒤에도 자주 동네를 방문하며 동네 경조사 등에 꾸준히 성의를 보인다고 했다. 반면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는 외지 사람들’은 동네에 기여하는 것 없이 제 잇속만 챙긴다는 비난이 공통적이었다.

화재난 시설 대표 박모씨는 이웃 땅 주인

2011년 박씨 일가가 씨랜드 사고가 난 바로 옆에 위치한 자신들의 땅에서 캠핑장을 운영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당시 보도를 보면 박씨 쪽이 설치한 방가로 등은 불법건축물로 시로부터 철거당했다. 그 후 ‘야**캠핑장’은 문을 닫았다. 수소문 끝에 박씨와 연락이 닿았다.

씨랜드 사건 후 언론과 최초 인터뷰다. 몇 차례의 전화 통화 끝에 박씨가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아는 대로 다 설명드리겠습니다.”

서울에서 박씨를 만났다. 현재 일정한 직업 없이 월셋집에 산다. 캠핑장이 문을 닫은 후 부인은 식당에 나가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업무상 과실치상·치사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2004년 6월 28일 출소했다. 출소 당일 유족 대표를 찾아갔다. “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죄 없는 아이들을 죽인 책임은 죽을 때까지 못 벗을 것이라고.” 약 2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씨랜드 수련원을 운영하게 된 경위와 그날 사건의 정황, 안타까웠던 일과 그 후 살아온 이야기 등을 털어놨다. 사건 장소 인근에 2009년 캠핑장을 연 경위에 대해 그는 “그 땅을 파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팔리지 않으니 땅을 놀릴 수 없어 곤란하던 차에 장모가 문을 열고 집사람이 도왔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웃하고 있는 두 일가는 사건 뒤 사이가 좋지 않았다. 2011년 보도 전, 진입로 문제로 멱살잡이도 했다. 폐쇄된 박씨 일가의 캠핑장에 지금도 놓여진 ‘방가로’의 상태는 화성시청에서 정기적으로 나와 점검한다. 화성시청 건축행정계 담당자는 “영업을 하면 불법이나 준공 전이기 때문에 방가로를 불법건축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박씨 옆 오토캠핑장 주인 김씨의 말을 듣고 씨랜드 참사 현장 위치를 재차 확인했다. 주인 김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화재가 난 컨테이너 박스 건물은 수영장 바로 앞쪽에 위치해 있었다. 정리하자면 씨랜드 사건이 난 장소는 현재 영업 중인 오토캠핑장의 일부 시설로 이용되고 있고, 사건으로 복역하고 나온 박씨는 바로 옆에 오토캠핑장을 열었다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현재 폐쇄했다.

그렇다면 씨랜드 사건이 난 부지에 자리잡은 오토캠핑장은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걸까. 화성시청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말하자면 불법인데, 입법 미비로 현재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건축법이나 산림법 등으로만 규제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오토캠핑장 설치와 관련된 법령은 관광진흥법 시행령 상 자동차야영장업 규정이다. 오토캠핑장의 사업계획이 인·허가를 받으려면 차량 1대당 80㎡ 이상의 주차·휴식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며, 상·하수도 시설 등을 갖추고 2차선 이상의 진입로를 갖춘 도로가 있어야 한다. 이 관계자는 “관내에 있는 오토캠핑장 중 정식 인·허가 절차를 밟아 운영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웃한 두 오토캠핑장 모두 법 위반

화성시 건축과 관계자에 따르면 박씨뿐 아니라 씨랜드 부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김씨네 오토캠핑장도 불법증축으로 제재를 받고 있다. 건축과 관계자는 “김모씨와 유모씨 소유로 되어 있는 이 오토캠핑장 역시 2011년 말 매점, 야외개수대, 식당관리실, 강당 옆 시설 등을 건축법상 무단증축으로 적발해 철거를 요구했지만 이행하지 않아 매년 500만원씩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있다”며 “지난 1월 말에도 철거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는 사전 통지서를 보냈지만 응하지 않아 한 달 전쯤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고 말했다.

“박씨가 찾아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사람도 있었는데 솔직히 아직도 용서가 되지 않네요.” 이튿날, 씨랜드 유가족 이경희씨를 만났다. 세월호 사건이 난 후 씨랜드 유족들은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거의 응하지 않았다. 연초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건이 났을 때도 그랬다. 그때의 악몽이 생각나 너무 힘들어서다. 이씨는 사건이 나던 전날 밤, 자신의 배 위에 올라와 잠을 잤던 아들 생각이 지금도 선명하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렇다. 우리 아이들이 사고 난 뒤 인생이 끝나버렸다. 그 사건이 내 인생을 묻어버린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나고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을 보면서 가슴에 열불이 났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때와 달라진 것이 없어요. 똑같습니다. 앞으로 보세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결국 이리저리 다 빠져나갈 것입니다. 대구지하철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피하라는 사람이 없으니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다 타죽은 거 아닙니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법을 지키면 뭐합니까. 선장이 그대로 있으라고 하니 있던 아이들은 다 죽었는데. 지키면 죽고 안 지키면 사니.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에서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지 않아야 사는 거 아닙니까.”

1박2일을 연출한 류호진 PD는 5월 8일 <주간경향>에 “그 오토캠핑장은 당시 풍섬이라는 곳을 가기 위해 출연자의 집결지로 사용되었고, 1시간 남짓 체류한 장소였기 때문에 장소에 대한 사전조사가 부족했다”며 “그곳이 씨랜드 참사가 일어난 곳인지 알았으면 촬영지로 섭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1박2일팀이 신세를 진 곳이기 때문에 홍보 목적으로 방문 사실을 홍보하는 것에 대해 묵인하는 편인데, 이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내부 회의를 통해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씨랜드 참사 사건이 난 후 15년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유족의 말은 과연 과장일까.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는 지금도 불법으로 증축된 위락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만약 화재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면 좁은 진입로는 다시 15년 전 새벽과 같은 아비규환의 참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올해 6월 30일이 되면 씨랜드 사건의 공소시효는 만료된다. 하지만 씨랜드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일주일간 기자가 취재한 ‘씨랜드수련원 화재참사 사건 이후 15년’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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