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노동운동가 한석호

2012.10.02 21:10 입력 2012.10.02 23:05 수정
글 김규항

“노동운동 낡은 형식 박살 낸 희망버스에 ‘이런 게 있구나’ 충격”

한눈에 보기에도 ‘운동권’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다. 한석호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환한 웃음과 함께 느껴지는 강하고 단단한 인상이 그렇고, 군중 앞에서 발언을 많이 해서 트인 목소리와 절도 있고 명료한 말투가 그렇다. 오랫동안 노동운동 진영에서 선봉대, 사수대, 조직 쟁의 등을 도맡아오면서 야전군으로 잔뼈가 굵어온 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 그가 ‘무지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갱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가 청춘을 바쳐온 민주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그의 무지개는 펼쳐질 수 있을까?

사진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사진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경직된 노동·좌파운동의 이중성
‘무지개 사회주의’로 혁신해야

▲ 노동 중심성·진보정치 운동성의
문제의식 갖고 있는 사람 선결집
정당 및 정치세력 새판짜기 구상

김규항 =야전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력이 그렇지요?

한석호 =87년 6월항쟁 때 명동성당투쟁동지회를 만들어 처음 구속되었다가 88년에 노태우가 대통령 되고 풀려나선 바로 인천의 현장에 들어갔죠. 현장조직사업에 결합하면서 줄곧 사수대, 선봉대, 선동훈련 강사를 했습니다. 90년 전노협 결성 때도 선봉대 담당이었죠. 민주금속연맹, 조선노협, 자동차연맹, 대노협, 현총련 등이 모여서 금속산업연맹을 만들 때 조직쟁의 담당을 했고, 99년 주5일제 싸움 때 구속되고 2001년 대우차 투쟁할 때 금속연맹 조직쟁의실장으로 구속되고…. 더 이야기해 봐야 빼도 박도 못하는 야전이네요.(웃음)

김규항 =청춘을 노동운동에 바친 사람으로서 지금 노동운동의 현실을 보면 어떻습니까.

한석호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민주노동운동이 조합원들의 임금과 단체협약과 고용만을 위한 운동이던 게 문제였습니다. 노동운동은 생태, 의료, 주택, 빈곤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제와 결합하지 못했고 노동 내에서는 비정규직과 연대를 못하고 있어요. 우리는 노동해방의 문제를 노동운동의 전투성에만 몰두하고 자족했던 것 같습니다. 변혁이라는 게 물리력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 전체 사회의 체제나 질서에 대해 고민하면서 함께 풀어나가는 것인데요. 가장 전투적으로 싸워서 임금과 단체협약을 잘 따내면 잘한 투쟁이라 했던 게 굳어져버린 거죠. 그 운동의 성원 중 한 사람으로서 현재 청년들이나 젊은 노동자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아픕니다.

김규항 =민주노총의 주력인 대공장 정규직은 중산층으로 체제에 포섭되고 그나마 전투성마저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석호 =말씀대로 대공장 정규직이나 금융 사무직 부분은 중산층 중에서도 안정된 축에 속합니다. 체제내화 현상은 자연스러운 데가 있는데 최근에 달라지는 조짐이 보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대공장 정규직에게 비정규 이야기하면 콧방귀도 안 뀌었는데 비정규 불안정 노동 문제가 이젠 자신도 분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거든요. 정년퇴직 이후 여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있고, 자식들을 대학까지 다 보냈는데 제대로 취직을 못하고 비정규로 아르바이트로 부유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흐름이 바뀌고 있어요.

김규항 =현실이 이기적인 태도를 만들었지만 이제 현실이 이기적일 수만은 없게 만들고 있지요.

한석호 =여전히 부족하고 비판할 점도 많지만 바뀌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문제는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가 얼마나 체계적인 계획을 갖고 조합원들을 당겨내는가가 중요합니다.

김규항 =현재로선 자본 측이 우위입니다. 그들에게 비정규 불안정 노동은 이윤율을 높이고 노동을 유연화하는 수단이지만 그럴수록 잠재적 위험이 높아갈 수밖에 없는데요. 일단은 노동운동, 진보운동 진영을 정권교체 운동 일변도로 몰아가면서 매우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있지요. 민주노총 집행부는 지난 총선에서 통진당 배타적 지지가 실패로 돌아간 후 더욱 무기력해 보입니다.

한석호 =민주노총 집행부만의 문제라면 차라리 수월할 겁니다. 집행부를 제대로 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로 바꿔내면 되겠는데 문제는 민주노총뿐 아니라 저를 포함해서 전반적인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정파의 간부들 역시 그런 관성에 빠져 있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중앙뿐 아니라 단위노조가 심각한 모습도 많거든요.

김규항 =뿌리가 깊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이 양적 성장하는 한편에서 문제도 자라나고 있었거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자와 시민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90년대 이후엔 박원순 선생 같은 분들이 시민의 가치관과 문화를 활발하게 사회화할 때 노동운동은 노동의 가치관과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지요. 젊은 시민들 즉 젊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운동은 낡아 보이고 거부감이 들게 되었지요. 선생은 근래 자신을 ‘무지개 사회주의자’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석호 =제 스스로 변화하고 혁신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말인데요. 세상은 다양한 생각과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이 어우러진 상태인데 내가 몸담았던 노동운동·좌파운동이 너무나 경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중화하는 현상을 보여왔습니다. 집회장이나 언어나 글로선 아주 단선적으로 세상을 재단해버리면서 자기 삶에선 자본주의적인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거죠. 아파트 평수를 넓히고, 아이를 더 좋은 학원에 보내서 시장경쟁력을 올리고 주식이나 부동산에 몰두하고. 이런 이중성이 통일이 되려면 우리가 무지개처럼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경직성이 이중성을 만들어냅니다. 경직성은 집회나 시위의 형식에서도 나타나죠. 노동운동의 집회나 시위는 그 주력인 대공장 노동자들에게 맞추어져 상명하달식의 군대식 대오가 중심이었죠. 문화 부분은 부차화되어 그 대오에 복무하는 식이고요. 그런데 노동자들의 삶 전체가 그렇진 않거든요. 삶의 총체성을 담기 어려운 운동이 이중적 모습을 띠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요.

한석호 =그런 낡은 형식을 아예 박살내버린 게 희망버스였죠. ‘아, 이렇게도 하는구나’ ‘이런 게 있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죠. 문화적 변화와 수용이 필요합니다. 제가 문화다양성포럼에 참여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나 노동자 아이들에게 ‘전태일이 실린 어린이잡지’를 보급하자고 나선 것도 그래서였죠.

김규항 =사실 선생이 ‘고래’ 보급에 팔을 걷고 나설 때 좀 의외였어요. 전형적인 남성 노동운동가의 모습이 아니거든요. 대공장 노조에 간부교육을 가보면 다른 이야기는 그런 대로 듣다가 아이들 이야기, 교육 이야기하면 자는 사람이 많습니다.(웃음) 그 또한 우리 노동운동의 상태를 보여주는 거겠지요. 그런데 무지개 사회주의자라는 말도 그렇고 설명도 그렇고 어딘가 익숙합니다. 급진적인 사람이 급진성을 포기할 때, 체제 내로 들어갈 때 꼭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내가 변했다고는 안 하거든요. 세상이 변했고 사회가 변했다, 그래서 나는 변화한 세상과 사회에 조응하려 한다, 이러죠.(웃음)

한석호 =무수히 보아왔고 충분히 의심당할 만합니다.(웃음) 운동의 지향과 원칙은 지켜져야 하는 거죠. 극단적이고 경직된 모습은 바꾸고 원칙은 더 견고해져야 하는데 거꾸로 가는 경우가 많죠.

김규항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고 우리와 아는 사람들이라 특별하게 보일 뿐 역사 속에서 늘 반복되는 모습이죠. 급진적인 반체제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극악한 문제들이 조금 가시면 체제 안으로 편입되어 진보 인사 행세를 하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운동을 폄훼하면서 대중과 운동을 이간질하는 것도요. 민노당의 ‘전진’이 만들어진 게 2004년이었지요?

한석호 =2001년 구속되고 감옥에서 제대로 된 정파운동을 해야겠다는 구상을 했습니다. 출소하고 민노당의 평등파와 노동운동의 이른바 중앙파 동지들을 결합해서 전진을 만들었죠.

김규항 =원론적으로, 진보정당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입니다. 의회 진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과 의회라는 공간과 대중정치 공간에서 운동을 하려는 사람.

한석호 =진보정당이 운동정당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진보정치가 의석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고 권력에 개입해서 실제 제도를 바꿔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론 사상누각이죠. 그 의원들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제도들은 정권 바뀌면 싹 바뀌어버리기도 하고.

김규항 =우리 진보정당 운동은 그런 우려대로 왔습니다. 의석수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그래서 선거중심 정당이 되고 선거에 이기려면 명망가가 필요하고 그 명망가들이 활동가를 누르고 당을 지도하고 정체성을 결정하면서 진보정당의 운동성은 사라져왔죠.

한석호 =민노당 초창기만 해도 운동정당, 노동중심의 정당 기조를 깔면서 했는데 그게 무너진 건 오히려 2004년 총선에서 10석을 만들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다들 잘해봐야 2, 3석 예상했는데 갑자기 10석이 나와버리면서 집단으로서의 욕망, 개인의 욕망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김규항 =이번 통진당 사태도 자주파의 몰상식한 행태에 비판과 여론이 집중되었지만 실은 자주파가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해도 내용은 마찬가지였죠. 진보정당 운동의 변질에서 나타난 한 단면이었을 뿐입니다. 자주파의 행태를 떼어놓고 말하더라도 그들과 도저히 당을 함께할 수 없다며 분당했던 심상정·노회찬씨가 그들과 결합하고는 그 문제가 대중에게까지 불거지니까 몰랐다는 식의 얼굴로 자주파를 비난하더군요. 선생은 분당의 기획자라 불리기도 했고 진보신당 사무총장도 지냈는데요.

한석호 =진보정당은 대중공간의 진지들이 튼튼하게 구축되어야만 어떤 정치세력도 운동성이나 정체성을 함부로 못 바꾸고, 그런 진지를 기반으로 의원이 될 때 감히 배신할 엄두를 못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거의 안되었죠. 분당에 역할을 했고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큰 흐름을 막진 못했습니다. 분당 후엔 운동정당이라는 목표가 민노당뿐 아니라 진보신당에서도 완전히 사라져버렸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김규항 =어찌 됐든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대중에겐 자주파의 행태가 진보정당 운동의 모습, 진보운동의 모습으로 비쳐졌고 그래서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입니다.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요?

한석호 =노동 중심성, 진보정치의 운동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선결집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운동이나 진보정당 쪽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그런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현재 정당 및 정치세력들과 새 판을 짜 들어가야 합니다. 저만의 생각이 아니고 곧 그런 움직임이 가시화될 거라 봅니다.

김규항 =어려운 상황일수록 연대가 중요한데 사람이란 참 묘한 존재라서, 적보다도 노선이 다른 혹은 경쟁관계에 있는 동지가 더 미운 그런 속성이 있죠. 공식적으로는 노선이나 견해의 충돌로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인간적인 상처나 불화가 주된 경우가 많고요.

한석호 =중요한 문제입니다. 운동을 떠나는 사람들이 세가지 유형이 있더군요. 첫 번째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둘째는 전망이 없고 지쳐서, 그리고 세 번째가 인간적인 관계로 받은 상처 때문입니다. 저런 사람하고 함께 운동할 순 없다고 떠나는 거죠. 노조위원장이라는 게 원래 감옥가는 길, 가시밭길이었는데 노동운동이 합법화되고 시민권을 확보하면서 권력화돼버렸어요. 노선 차이 때문에 서로 비판을 할 땐 덜 심각했는데 노선과 욕망이 결합되면서 극단적인 상황이 돼버렸죠.

김규항 =어떤 오류나 기만도 현실 자체를 끝내 덮을 순 없으니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날 거라 믿습니다. 전태일재단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한석호 =전태일 40주기 행사 집행위원장 일을 하면서 전태일다리 이름바꾸기 캠페인, 현장과 결합한 행사, 문화제 등 이것저것 진행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88년 연세대에서 열린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부터 전태일이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었죠. 전태일기념관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많이들 했는데 40주기에도 못했더라고요. 운동이 그때그때 떨어지는 당면한 문제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전망하면서 뭔가 구축해놓은 게 부족한 거죠. 전태일기념관을 만들어야겠다는 것, 전태일을 매개로 해서 초·중·고 교과서에 노동과 노동자와 노동조합과 노사관계를 담아야 한다는 숙제를 생각하게 된 거죠.

김규항 =‘기념’이라는 건 박제의 절차이기도 합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 급진적인 사건이 다음 역사에서 기념이 되고, 기념관과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질 때 공식적으로 그 의미를 인정받는 의미도 있지만 현실에서 급진성으로 살아나지 못하고 박제가 되는 거죠. 민주화운동 기념이나 광주항쟁 기념 쪽도 그런 모습들이 보이는데요.

한석호 =전태일은 기념이 아니라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42년 전의 전태일을 말하는 이유는 현재의 전태일들을 불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40주기 행사도 비정규직과 청년을 주제로 갔고, 이소선 어머니 장례도 비정규직 투쟁 단결로 갔죠. 전태일을 땅으로 끌어내리자, 열사가 아니라 형으로 오빠로 친구로 살려내자는 의미로 전태일 캐릭터도 20여가지 만들었어요. ‘전태일의 집’도 전태일기념관이라기보다 ‘노동자의 집’으로 가려고 합니다. 오늘의 전태일들이 모여 교육도 하고 토론도 하고 삶을 나누는 공간이 되는 겁니다.

김규항 =‘고래가그랬어’도 함께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교과서에 노동을 넣는 일, 아이들이 노동에 대해 배우는 일은 우리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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