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들의 반란? 미국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나선 장성들

2017.03.01 11:16 입력 2017.03.01 15:23 수정
김진호 선임기자

취임 뒤 첫 해외순방길에 한국을 찾은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오른쪽)이 지난 달 3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함께 서울 용산 국방부 앞 연병장에서 국군의장대 사열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취임 뒤 첫 해외순방길에 한국을 찾은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오른쪽)이 지난 달 3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함께 서울 용산 국방부 앞 연병장에서 국군의장대 사열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근혜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공통점을 한가지 꼽으라면 취임 초 전·현직 군장성을 요직에 앉힌 선군(先軍)인사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독 육사출신을 선호했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27기)과 박흥렬 대통령 경호실장(28기), 김관진 국방부 장관(28기), 남재준 국가정보원장(25기), 김규석 국정원 3차장(29기) 등 5인방을 발탁했다. 남 원장이 육사 졸업반일 때 각각 2학년(김장수)과 1학년(김관진·박흥렬)으로 함께 생도생활을 한 사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군 출신을 중용했다. 특히 해병대 출신 전·현직 장성들을 좋아하는 듯하다. 1월20일 취임 첫날 민간인들을 임명해오던 관행을 깨고 국방장관에 퇴역 4성장군 제임스 매티스를 임명했다. 국토안보부 장관인 퇴역 4성장군 존 켈리도 ‘영원한 해병’이다. 불명예 퇴진한 마이크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군 장성 출신이었고, 그의 후임인 H R 맥마스터는 현역 육군 중장이다.

■박근혜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선군(先軍)인사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인 2015년 임명된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도 해병대 4성장군이다. 켈리 장관과 던포드 합참의장은 모두 2003년 매티스 당시 해병 1사단장 휘하에서 이라크 침공을 이끌었다. 켈리는 그 때 처음 별을 달았다. 대령이던 던포드는 장병들이 모두 방탄복을 입고난 뒤에 자신의 방탄복을 입은 것으로 유명해졌다.

존 켈리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왼쪽)이 지난달 10일 로널드 비텔로 미국 국경경비대 대장과 함께 멕시코 티후아나와의 접경지역인 샌디에이고 산이시드로 출입국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샌디에이고/UPI연합뉴스

존 켈리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왼쪽)이 지난달 10일 로널드 비텔로 미국 국경경비대 대장과 함께 멕시코 티후아나와의 접경지역인 샌디에이고 산이시드로 출입국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샌디에이고/UPI연합뉴스

하지만 한국과 미국 장성 출신들의 공통점은 군 출신이라는 것에서 그친다. 임명된 뒤 행보를 보면 한국과 미국의 별들은 큰 차이를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별들이 묵묵하게 밥벌이에 충실해왔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별들은 자기 목소리를 숨기지 않는다. 항명까지는 아니더라도,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대통령의 지시에 소신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해병 출신들의 기개가 남다르다.

■잇달아 소신발언, ‘해병 3인방’의 기개

하루가 멀다 하고 막말을 쏟아내는 트럼프가 지난 달 21일 반이민 조치를 내놓으면서 “서류를 갖추지 못한 이민자들을 내보내는 것은 ‘군사작전’이 될 것”이라고 하자, 켈리 장관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정정했다. 켈리는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니다. 이민자 대책에 군을 동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못박았다. 백악관은 뒤늦게 “대통령은 ‘군’을 다만 형용사로 사용했을 뿐”이라는 군색한 변명을 내놓아야 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 전·현직 장성들과 백악관 간의 불일치를 드러내는 동시에 군의 역할에 대한 트럼프의 천박한 인식을 보여줬다. 반 이민 행정명령 탓에 곤경에 처한 켈리가 ‘트럼프의 최순실’에 비유되는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와 한바탕 붙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조지프 던포드 미국 합참의장(왼쪽)이 지난 1월21일 버지니아의 미국 국방부 청사 앞에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던포드는 매티스가 해벙 1사단장일 당시 휘하에서 대령으로 근무했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조지프 던포드 미국 합참의장(왼쪽)이 지난 1월21일 버지니아의 미국 국방부 청사 앞에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던포드는 매티스가 해벙 1사단장일 당시 휘하에서 대령으로 근무했었다. 워싱턴/AP연합뉴스

‘해병 3인방’의 수장 격인 매티스 장관은 이미 트럼프와 사뭇 결이 다른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전혀 배제하지 않는다. “이라크에서 석유도 챙기지 못했다”고 비난한 트럼프와 반대로, 장관 자격으로 이라크를 방문해 “미국은 석유를 훔치러 여기 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이라크 정부를 달랬다.

중앙정보국(CIA)과 미군이 외국인 테러용의자들을 납치, 고문하던 관행을 되살리겠다는 트럼프의 입장을 바꾼 것도 매티스였다. “술 한병과 담배 몇 개비만 주면 (포로를 고문하는 것보다) 훨신 잘해낼 수 있다”는 게 야전사령관 출신인 매티스의 소신이다. 트럼프가 불신을 표시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해서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동맹”이라면서 지지를 표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를 분열시키려고 한다”고도 했다. 중동문제에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아 팔레스타인 주권을 존중하는 ‘두 국가 해법’을 공공연하게 지지하고 있다.

던포드 합참의장은 트럼프가 합참의장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수석회의 고정 멤버에서 제외하고 배넌을 집어넣자 성명을 내고 “합참의장은 앞으로도 NSC의 부처간 협의 과정에 완전하게 참여해 대통령과 회의 멤버들에게 최상의 군사적 자문을 할 것”이라고 결기를 내보였다.

■“군 장성들은 대통령과 의회 앞에서 난폭할 정도로 직선적이어야 한다”

육군 출신인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군이 대통령과 의회 앞에서 ‘난폭할 정도로 직선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공론화한 인물이다. 그는 <직무유기(Dereliction of Duty)>라는 1997년 저서에서 “베트남전의 패인은 합참 장교들이 대통령을 상대하면서 실패가 뻔한 전략에 반대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은 바 있다. 그의 책은 발간 즉시 주목을 받았고, 휴 셸턴 당시 합참의장이 모든 군 지휘관들에게 일독을 권하면서 필독서가 됐다.

H R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달 20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휴양지 마라라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팜비치/AP연합뉴스

H R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달 20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휴양지 마라라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팜비치/AP연합뉴스

맥마스터는 취임 1주일만에 NSC 전체회의를 열어, 합참의장과 16개 미국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DNI)을 수석회의 고정멤버에서 제외한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가 상용하는 ‘과격한 이슬람 테러리즘’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그런 정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쟁을 수행해본 장성들이야말로 평화의 소중함을 안다. 맹목적인 적의와 반목보다는 협상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 것이 분명하다. 장성 출신 고위당국자들이 오히려 군 경험이 없는 관료들에 비해 무난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미국의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대통령에 충성할 것인가, 국가에 충성할 것인가

미국 장성들이라고 완벽한 것은 아니다. 매티스는 2004년 이라크전 당시 결혼식장을 적의 은신처로 잘못 알고 오폭해 민간인 42명을 희생시킨 전력이 있다. 육·해·공·해병대가 각각 개군(個軍) 이기주의에 매몰돼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맥마스터는 ‘직언’을 강조한 책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정작 부하장교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포린 폴리시가 전했다. 제3기갑연대장 맥마스터 밑에서 중령으로 근무한 폴 잉글링은 2007년 저서 <장군들, 2차 세계대전부터 지금까지의 미군 사령부>를 통해 이라크전의 실패 요인으로 군 장성들이 군대를 준비시키는 데에는 물론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군을 어떻게 동원해야 하는지 충고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비판 대상에 맥마스터가 포함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맹종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폴리티코는 장군들의 소신 발언을 놓고 “트럼프 취임 한 달이 되면서 군과 민간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민간 지도자들이 군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군 지도자들이 도를 넘은 민간정부를 통제하는 양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군 지도자들은) 조국을 방위하겠다고 헌법에 맹세했지 개인에게 맹세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대통령과 민간인 보좌관들이 계속해서 역사적 의미와 헌법적 구속을 행정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군 지도자들이라도 가장 믿을만한 미국 민주주의의 수호천사가 돼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트럼프는 어찌 보면 너무도 미국적이지만, 과거의 미국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소한 현대 미국 사회의 여러 제도들이 추구해온 미국적 가치에는 맞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한 트럼프의 등장으로 오히려 미국 사회의 저력이 새삼 돋을새김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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