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의 이중국적

2017.06.12 20:55 입력 2017.06.13 10:03 수정
조호연 논설위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발사대 추가반입 보고누락 파문은 군내 ‘미군추종세력’의 건재를 확인해 준다. 과거에도 미군추종세력에 의한 국기문란 행태는 없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드를 수단으로 삼았을 뿐이다. 사드는 무오류의 미군 및 미국의 권능을 상징한다. 이 절대성에 의문을 제기하면 미국은 사드를 철수하고, 다시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진다는 삼단논법은 이들의 신념이다.

[조호연 칼럼]한국군의 이중국적

여기서 중대한 의문이 생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군 통수권을 갖고 있는가. 대한민국 헌법은 74조1항에서 “대통령은 국군을 통수하게 되어 있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군이 중대 안보 현안을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대통령의 군 통수권이 작동불량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통수권은 누구한테 있다는 건가.

사드 파문의 책임자인 고위장성은 “미군과 비공개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보고를 누락했다고 실토했다. 대통령보다 미군의 권위를 더 무겁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보고누락은 형식적으로는 불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합법인 셈이다. 군이 사드 배치 과정에서 주민설명회,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미국의 의지만 지킬 수 있다면 국내법이든 시민이든 안중에 없다는 식이다.

군의 대통령 통수권 무시 행태는 참여정부 때 더 심각했다. 2004년 ‘작전계획 5029’ 청와대 보고누락 사건을 보자. 북한 급변 사태 발생 시 미군이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의 이 작전계획은 한국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참여정부 방침과는 정반대였다. 그럼에도 합참은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고 미군 측과 논의를 진행했고, 이를 뒤늦게 안 청와대는 계획을 중단시켰다.

10여년의 시차를 둔 두 사건은 군의 통수권 무시 행태에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이런 일이 진보정권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보고누락 사실이 들통난 뒤 군의 행태도 똑같다. “미군과 협의했다”고 핑계대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신성불가침인 나라에서 이보다 더 좋은 변명거리는 없다. 정부가 여기서 문제를 키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미국은 한국에 선한 의지를 갖고 있으므로 추호도 의심해서는 안된다는 보수층의 굳은 믿음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싸움을 벌인다면 사면에서 적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미국보다 국내 보수 세력이 먼저 벌떼처럼 일어섰다. 보수정치인들은 사드 및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거론하고, 보수 언론은 미국 조야의 불편한 심기를 연일 집중 부각했다. 마치 한국 정부가 감히 미국에 도전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미국의 불만은 당연한 것이며 당장 한국이 사드에 대한 입장을 철회하는 것이 해결책인 양 몰고 갔다. 사드 보복을 자제하라고 설득하러 중국에 간 국회의원들을 매국노로 몰아붙이던 그들이 지금 와서 미국의 대리인처럼 행동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한국 대통령의 군 통수권에 누수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미군 위주의 한·미연합사 운영체계 탓이 크다. 한국군은 동등한 입장에서 연합사를 운영한다고 말하지만 중요 현안 논의 시 미군이 “외국군은 회의장에서 나가달라”며 한국군을 내쫓는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미군을 상전으로 모시는 이런 불평등 구조 속에서 한국은 자유의지를 갖고 안보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미군의 하위적이고 보조적인 존재로 전락했다. 문제는 한국군이 이런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내 미군추종세력의 한·미동맹에 대한 신뢰는 무한대에 가깝다. 그들은 북한과 중국이 한국을 무시하지 않고 대화상대로 여기는 것은 한·미동맹의 존재 때문이라고 믿는다. 또한 동맹이야말로 북핵 해결을 위한 유일한 카드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미국과의 협력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미국과의 관계가 절대적이고 영원불변한 국익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보통의 국가관계론’을 주장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다.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갖고 있고, 세계 10위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나라의 군대가 마치 젖을 떼지 않으려는 어린애처럼 미군에 매달리는 것을 과연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지 답답할 따름이다. 이러니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이명박 대통령의 보복 폭격 지시에 군 수뇌부가 미군에 “쏴도 되는가?”라고 문의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 대통령의 군 통수권은 온전할 수 없다. 현재 한국군에 대한 통수권은 한국과 미국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것 같다. 묻고 싶다. 한국군의 국적은 어디인가. 미국인가 한국인가. 아니면 이중국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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