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민중사상은 억압·착취에 맞선 해방·생명사상”

2014.11.13 21:22 입력 2014.11.13 21:39 수정

“노동자들이여 기죽지 마” 특강에서 민중사상 설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눈물이 바로 ‘따끔한 한 모금’이야.”

팔순을 넘겼지만 눈빛과 목소리의 힘은 여전했다. ‘민중사상 특강’을 준비 중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81)을 지난 11일 오전 서울 대학로 연구소에서 만났다. 그는 멸시와 모욕을 견디다 못해 분신한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이만수씨의 영결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박근혜 독재와 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이 이만수 열사를 죽인 거야. 이 열사는 생명이 아닌 반생명과 싸워 얻어낸 생명의 주인공이야. 노동자들이여, 기죽지 마!”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지난 11일 서울 대학로 연구소에서 민중사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지난 11일 서울 대학로 연구소에서 민중사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백 소장이 보기에 민중사상은 “생명이 아닌 것과 싸워 사람다운 생명을 얻어내는 것”으로 “억압과 착취에 맞선 해방사상이자 생명사상”이다. 지금껏 지배계층은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생각과 행동을 “쌍놈들의 개수작”이라고 짓뭉개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자본주의 문명이 싹튼 이래 민중사상은 때려 부숴야 할 적이 돼왔어. 지배계층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민중사상을 죽여왔지. 하지만 그들은 오판한 거야. 인류 문명은 민중사상이 이끌어왔고, 민중사상에 의해 끊임없이 발전해왔단 말이야. 특강에서 민중사상의 된깔(본질)을 설파할 거야.”

강의 주제는 ‘나는 왜 따끔한 한 모금에 이리 목이 메는가’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4년, 막일을 하던 백 소장은 삯을 받지 못해 굶고 다녔고, 결국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때 술 한 잔만 마시면 살겠다 싶었다. 어린 시절, 밥 대신 “따끔한 한 모금만 달라”던 걸인의 간청을 들어주지 못해 펑펑 울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선술집에 들어가 민중의 옛이야기를 해줄 테니 “따끔한 한 모금만 달라”고 했다. 돌아온 것은 배운 티가 나는 술꾼들의 멱살과 주먹질이었다. 민중, 그런 거는 이미 도태된 지 오래라는 충고에 ‘빨갱이’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그 후 진짜 민중사상을 알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공부하기로 작심했지만 자료가 없어 애를 먹었다고 회상했다. 도서관에서 민중(사상)이란 제목의 책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었고, 민중이 만들었다는 석굴암이나 경복궁에 가봐도 민중의 미학은 남아 있지만 민중의 사상은 없더라는 것이다. 결국 민중사상은 옛날이야기 속에 있다는 걸 알고 어르신과 가족들한테 들은 이야기를 모았다.

“글은 없지만 ‘혼백’이 있었어. 집에서 뒷골목에서 시장바닥에서 울었어. 감격의 연속이었지. 그러나 괴로웠어. 학문깨나 했다는 사람들은 날 무시하고 민중사상을 인정하지 않았지. 민중 자신이 민중을 저버릴 때가 가장 가슴이 미어지더군.”

공부를 시작한 지 60년 만에 처음으로 민중사상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백 소장은 오는 21일 오후 7시30분 조계사 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쇠뿔이 이야기’ ‘달거지 이야기’ ‘버선발 이야기’ 등을 토대로 민중정서와 민중사상을 풀어낼 예정이다. 그는 “인류역사상 최초의 강의”라며 연신 목에 힘을 주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운동하다 쫓겨난 해고자, 좌절과 절망을 밥처럼 먹고사는 젊은이들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서고금의 책을 다 섭렵했다는 석학과 사상가, 예술가들도 꼭 와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백 소장은 기력이 쇠약해진 탓인지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혼자 일어서는 것도 힘에 겨워했다. 당뇨가 있는 데다 최근 폐에서 염증이 발견됐다. 특강을 목전에 두고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강의를 끝까지 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민중 이야기를 하다가 울음을 참지 못해 강의가 끊기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특강은 ‘눈물바다’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괜찮겠냐고 물었다. “솔직히 1시간 넘게 버틸 자신은 없어. 하지만 민중사상이라는 ‘감격’이 있잖아. 그걸 지팡이로 삼아 버텨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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