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만에 힘겹게 벗은 간첩의 굴레

2008.06.23 18:22
제주 | 강홍균기자

조작간첩 강희철씨 무죄선고 … “누명 쓴 다른 사람에 희망줄 수 있어 기뻐”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고 20여년을 버텨왔습니다.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지만 나처럼 억울하게 간첩으로 조작된 사람들에게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는 희망을 줄 수 있어 기쁩니다.”

23일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국가보안법 재심사건에서 박평균 부장판사가 ‘무죄’를 선고하자 강희철씨(50·제주시 조천읍)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간첩이란 죄명으로 12년간 옥살이를 하며 겪었던 일들이 한순간에 떠올랐다.

23년만에 힘겹게 벗은 간첩의 굴레

강씨는 1986년 4월 느닷없이 제주도경찰국 대공분실로 강제연행됐다. 강씨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안 맞은 데가 없었지만 물고문이 가장 힘들었다”며 “경찰이 3일 동안 한잠도 안 재우고 밥도 안 주면서 두드려 팼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는 85일간의 불법구금과 고문 끝에 자포자기 상태에서 허위로 자백하면서 ‘간첩’이 됐다. 87년에는 간첩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98년 8·15특사 때 가석방되기까지 12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강씨의 혐의는 관공서·학교·기관 등의 위치를 북한에 알렸다는 것이었다.

강씨는 천주교제주교구사제단 등의 도움을 받아 2005년 9월 재심을 청구했고 2006년 6월 법원이 재심 결정을 내렸다. 강씨가 억울한 누명을 벗기까지 23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강씨는 “주위 사람들이 모른 체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이 때문에 이혼하고 직장도 구하지 못해 떠돌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아직도 당시 나를 고문했던 경찰이 현직에 남아 있다”며 “세월이 흐른 만큼 군사독재 당시 고문 수사관들이 이제라도 나서서 양심선언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고문 당사자가 입을 다물어버리면 간첩의 누명을 쓴 사람들이 진실을 밝혀내기가 힘들다”며 “그들도 인간이라면 이제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씨는 “신부님들이 모금해서 재판 비용을 대줬다. 최병모 변호사도 많이 힘써줬고 검찰도 나름대로 협조를 해줬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재판부는 이날 “주요 공소사실에 대해 피고인의 자백 이외의 증거물로는 일제 만년필, 겨울 스웨터밖에 없다”며 “나머지 증거들도 피고인이 지인들에게 청원경찰의 보수 및 근무 내용, 제주도에서 가장 비싼 호텔의 숙박요금, 광주항쟁 당시 상황, 경비정의 속력 등 일반적인 사항에 대해 개인적으로 물어왔다는 것과 제대할 무렵 영내를 배경으로 동료들과 사진촬영을 한 사실 등이 있을 뿐”이라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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