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 온 렛지’

2012.02.19 21:06 입력 2012.02.19 22:51 수정
백은하 기자

“난 억울해” 뉴욕 빌딩 위 한판 자살쇼

누명을 썼다. 하지도 않은 도둑질 때문에 남은 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될 신세다. 억울하다. 하지만 상식적인 방법으로 무죄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법이 정당하게 개인의 누명을 벗겨주지 않을 때 혹은 그 법 위에 더 큰 힘이 도사리고 있을 때, 억울함과 분노에 사로잡힌 대한민국의 한 교수는 석궁을 들었다. 하지만 뉴욕의 이 남자는 대낮에 고층빌딩 난간 위에 선다.

4000만달러짜리 다이아몬드 절도 누명을 쓴 전직 경찰 닉 케시디(샘 워싱턴). 아버지 장례식 참여를 빌미로 탈옥에 성공한 그가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위치한 루스벨트 호텔 난간에 올라가 무죄를 외친다. 피 냄새를 맡고 하이에나처럼 몰려든 미디어와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만난 듯 “뛰어내려! 뛰어! 뛰어!”라고 외치는 비정한 군중심리를 이용해 닉은 한판 쇼를 벌인다. 하지만 21층 아래 군중이 닉이 벌이는 자살쇼를 즐기는 동안, 극장에 앉은 관객들은 바로 옆 건물에서 닉의 동생 조이(제이미 벨)가 벌이는 또 다른 쇼를 동시에 관람하게 된다. 이 쇼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23일 개봉하는 <맨 온 렛지>의 제목인 ‘맨 온 렛지’(Man on a ledge)는 실제 미국 경찰의 공통 무전용어다. 수많은 사건사고가 속출하는 마천루의 도시 뉴욕은 고층빌딩에서의 자살 시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 뉴욕 경찰들은 ‘맨 온 렛지’ 상황에서 그 사람이 뛰어내릴지를 두고 몰래 내기를 할 정도라고 한다.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와 45번가 인근을 모두 통제한 채 촬영된 <맨 온 렛지>는 한정된 시간과 장소를 집약적으로 이용한다. 닉 역의 샘 워싱턴이 동생과 이어폰으로 교신하며 작전의 순서와 속도를 결정하는 과정은 그의 출세작이 된 <아바타>를 떠올리게 만든다. 잠자는 상태로 뇌파만 움직이던 <아바타>의 제이크처럼 닉은 몇 발짝 안의 난간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동생 조이는 판도라의 나비족처럼 빌딩의 이곳저곳을 넘나들며 활약을 펼친다. 조이 역의 제이미 벨은 바로 <빌리 엘리어트>의 소년 ‘빌리’. 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여자친구이자 같은 팀인 앤지는 남성 관객 시각만족을 제1 목표로 한 듯 이유 없이 자주 벗는다. 앤지 역의 매력적인 남미 미녀 제니시스 로드리게스는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인 <라스트 스탠드>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상대역으로 캐스팅되어 촬영 중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목숨을 건 시도가 몇 시간의 구경거리가 되는 비정한 도시. 그 도시가 탄생시킨 영화 <맨 온 렛지>는 단숨에 눈길을 잡아끄는 설정, 자극적인 외피와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그리 치밀하지 않은 내부 설계도를 드러내고야 만다. 높은 빌딩 위에 선 남자를 올려다보느라 목이 다소 뻣뻣해지는 걸 제외하면, 그리 심심하지 않은 102분간의 소동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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