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 큰 돈 들여 지는 싸움

2019.08.03 16:16

비용과 시간 많이 드는 어려운 싸움… 의료분쟁조정중재원 통한 해결 먼저

/ by Sasin Tipchai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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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의료행위에는 필연적으로 위험이 따른다. 어려운 말로 ‘침습적(신체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도가 쥔 칼은 흉기이지만 의사가 쥔 칼은 치료로 보는 이유는 의사가 환자의 몸에 칼을 대는 행위가 환자의 상태를 개선해주기 위한 일시적 ‘위해(危害)’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위해의 결과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지만 모든 의료행위가 의사가 의도한 결과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의학지식이 없는 환자의 가족은 ‘멀쩡히 살릴 수 있었던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기나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원고 일부승소 비율도 20%대 머물러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원장 윤정석)의 자료에 따르면 환자 또는 유가족이 의료진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의 1심 판결 선고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26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꼬박 2년 2개월이라는 시간을 소송에 쏟아부어야 겨우 1심 판결문을 받아볼 수 있다는 얘기다. 항소심, 상고심의 판단까지 받을 경우 4~5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나마도 승소 가능성이 높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될 텐데 현실은 잔인하게도 환자의 편이 아니다. 전체 의료사고 민사소송(손해배상청구소송) 1심에서 환자(또는 유가족)의 승소율은 1% 안팎에 불과하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18년도 통계연보>에서 대법원 <사법연감>을 토대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의료사고 손해배상청구소송 접수건수는 955건으로 이 중 원고 전부승소는 11건(1.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거의 모든 연도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2012년 전체 의료사고 손해배상청구소송 접수건수는 1009건으로 이 중 8건(0.9%)만이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2013년은 0.6%(1101건 중 6건), 2014년 1.5%(946건 중 14건)에 그쳤다. 2015년과 2016년의 원고 전부승소율은 각각 1.4%, 0.6%였다. 승소율로만 따지자면 사실상 하나마나한 소송인 셈이다.

의료진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이 내려지는 비율은 20%대로 원고 전부승소 비율보다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의료진의 과실 비율을 단 일부만 인정해도 일부 승소로 분류하기 때문에 과연 환자나 유가족들이 만족할 만한 의료과실 인정을 받았는지는 해당 자료만으로 확인할 수 없다. 게다가 의사 책임 제한에 따라 명백한 과실이 인정돼도 의사의 책임을 일정 비율만 인정하고 있어 실질적인 배상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도 존재한다. 결국 고액의 변호사 선임비를 지불하고, 손해배상청구액에 따른 인지세, 각종 감정에 들어가는 비용 등으로 많게는 수천만 원의 소송비용을 치르고도 단 1% 안팎의 환자와 유가족만이 병원의 100% 과실책임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상황이 이러니 의료사고 소송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한 의사 출신 변호사는 “연수원 동기들 중에 ‘의료사건 소송을 맡았다’는 친구가 있으면 ‘양심이 있으면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의학지식이 있는 의사 출신 변호사조차도 이기기 어려운 의료소송을 일반 변호사가 맡는 것은 사실상 지고 들어가는 싸움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변호사의 양심상 명백히 형사적으로도 처벌해야 할 수준의 의료사고가 아닌 이상, 소송이 아닌 중재원을 통한 해결이 유가족에게 더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고비용 저효율의 소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2년 4월 도입된 것이 의료분쟁조정제도다. 일종의 의료소송계의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재판 외 분쟁해결)’로 볼 수 있다. 제도가 시행되면서 이 역할을 담당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다. 이곳에서는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전문의료인 등이 조정 및 감정을 맡아 의료사건을 중재한다. 굳이 소송으로 가지 않아도 중재원이 자체적으로 사실 조사와 감정을 실시하기 때문에 의료사고 발생과정에서 의료진의 과오가 있었는지, 환자에게 발생한 좋지 않은 결과가 의료 과오로 인한 것인지를 밝혀낼 수 있다. 무엇보다 병원으로부터 의무기록지를 비롯한 각종 기록들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이를 전문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전문의들이 있기 때문에 환자에게는 유리한 제도다. 또 양측이 조정에 합의할 경우 이는 판결에 준하는 효력이 있어 불필요하게 재판으로 가지 않아도 분쟁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

이 같은 순기능으로 중재원이 처리하는 의료분쟁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4년 827건(합의 성립건수 550건)이던 처리건수는 매년 증가해 2017년 처음으로 1000건(1162건)을 넘어섰다. 2018년에는 1589건을 처리했고, 이 중 935건에 대해 조정이 성립됐다.

중재결과 만족 못하면 소송 제기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효율적이다. 조정부는 조정절차가 개시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조정결정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단 1회에 한해 30일까지 연장 가능). 2018년도 평균 사건 처리기간은 102.7일로 1심 판결까지 평균 780일(26개월)이 소요되는 소송기간의 7분의 1 수준이다. 최단기간 중재가 가능한 이유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전문위원 및 감정위원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민사소송이 길어지는 이유는 감정이 가능한 의료기관들이 감정을 거부하거나 감정을 해도 결과 회신까지 최소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재원의 경우 감정 가능한 의료진이 포진돼 있어 이 같은 수고를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양측을 중재하고, 조정을 담당하는 조정위원은 총 203명으로, 이 중 79명이 판사 또는 판사 출신 법조인, 변호사이며, 50명이 의사다. 의료사고 여부 및 책임범위 등을 평가하는 감정위원도 243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 중 25명이 현직 검사, 39명이 현직 판사다. 전문의료인도 136명에 달한다.

경제적인 부분도 장점이다. 조정중재 이용 수수료는 법원 소송수수료의 10분의 1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중재원의 조정·중재 신청 수수료는 2만2000원으로 책정된다. 청구금액이 500만원을 초과할 경우 1만원당 10원(5000만원 이하)~20원(5000만원 초과)을 가산한다. 반면 민사소송은 변호사 선임비에만 최소 500만원 이상이 들어간다. 거기에 각종 송달비용과 인지세, 감정료까지 하면 재판당 최소 1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관계자는 “중재원은 의료사고 발생원인 규명은 환자가 아닌 의료인이 해야 한다는 인식을 토대로 만들어진 제3의 독립기구”라며 “의료진들이 조정과 감정 과정에서 의사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 각 절차에 소비자권익위원을 포함시키고, 각 절차에 참여하는 조정·감정위원에 대한 엄격한 제척기피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재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경우 소송을 다시 제기할 수 있으므로 의료사고를 의심하는 피해자라면 중재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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