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창작 생태계에 내 자리가 있을까

2020.07.01 03:00 입력 2020.07.01 03:04 수정

ⓒ김태권

ⓒ김태권

“이십년 전에 인터넷 처음 보급될 때랑 지금이랑 비슷하지 않아요? 변화의 방향도 예측이 안 되고,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지인을 만나 한 이야기다. 그런데 거짓말이었다. 집에 와 다시 생각하니 사실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안다. 어떻게 변할지 무얼 해야 할지 말이다. 우리보다 더 빨리 변하는 곳을 보면 된다. 지금까지는 미국이었다.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사며 책이며 쏟아진다. 바로바로 우리말로 번역도 된다. “트렌드를 짚어준다”며 신조어를 지어내는 요란한 책 말고, 읽으면 도움 되는 용한 책들도 꾸준히 나온다.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 만화가

옛날에 인터넷이 처음 보급될 때는 어땠나? 한 치 앞을 모르겠다고 그때도 우리는 엄살을 떨었다. 하지만 답은 나와 있었다. 에번 슈워츠가 쓴 <웹경제학>을 비롯해 신통한 책이 몇 있었다. 읽은 사람도 꽤 많았다. 내용은 이렇다. 사이트에 사람을 많이 모으라 했다. 그러면 이용자들끼리 어울려 서로를 사이트에 붙잡아 둘 것이라 했다. 지금 보면 시시콜콜한 예측은 틀린 부분도 있지만, 굵직굵직한 방향은 책에서 말한 대로 되었다. 마침 내가 인터넷 회사를 다니던 때라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은? 바라트 아난드가 쓴 <콘텐츠의 미래>라는 책을 많이 본다. 이 칼럼에서도 언급한 책이다. 창작자 입장에서 기억에 남은 내용은 세 가지다. 창작자가 아니라 플랫폼이 큰돈을 벌리라는 예측이 첫째. 창작자가 조용히 작품만 팔아먹고 살기란 이제 쉽지 않으니 차라리 몸값을 올리는 편이 낫다는 제안이 둘째. 몸값이 오르면 음악인은 공연으로, 작가는 강연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작품은 돈 받고 파느니 공짜로 뿌리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충격적 조언이 셋째. 당장은 굶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왜 나는 정답대로 하지 않나? 이십년 전에는 어쩌다가 스톡옵션을 받고 인터넷 갑부가 되지 못했나? 지금은 왜 프로덕션을 설립해 내 작업을 전 세계에 뿌리지 않나? ‘수능 만점 받는 비밀’이라는 오래된 농담이 떠오른다. 성적을 올리고 싶던 아이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산 제물을 바쳐 저주받은 비밀의 책을 입수했더란다. 그런데 책을 펼치니 “국, 영, 수를 중심으로 예습, 복습 철저히”라고 적혀 있더라나. 창작자도 마찬가지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당장은 굶으라”는 조언은 어떤 작가한테는 굶어 죽으라는 소리나 같다. 남들 앞에 서는 생활이 견디기 힘들어 전업 작가가 된 창작자가 개인방송이나 강연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미래의 창작 생태계가 어떠할지 나는 대략이나마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내 자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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