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히틀러···어떤 이야기에 끌리십니까

2023.02.25 08:00 입력 2023.03.08 14:18 수정

과거 차별·탄압 받았다는 서사에

타민족·종교를 학대하는 행위 등

공감하는 이야기의 성격에 따라

행동·생각이 달라지는 사람들

협력과 공생은 스토리텔링 긍정 기능

악당 만들고 비인간화하는 부정 기능

영화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의 한 장면. <해리 포터>를 읽는 아이들은 소수 인종과 동성애가 같은 소외된 ‘타자’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영화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의 한 장면. <해리 포터>를 읽는 아이들은 소수 인종과 동성애가 같은 소외된 ‘타자’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조너선 갓셜 지음·노승영 옮김|위즈덤하우스|356쪽|1만8000원

지난 22일자 경향신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해 두 다리를 잃은 스물다섯 살 변호사 올레크 시모로스의 이야기가 실렸다. 기사에서 한동안 두 눈을 뗄 수 없었다. 두 다리가 잘려나간 채 병상에 앉아있는 그의 표정이 고통스럽고 절망스럽기보다는 당당하고 자부심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와 좋은 직업, 창창한 미래를 꿈꿨던 과거의 삶과 참전으로 두 다리를 잃고 병상에 있는 현실의 격차가 매우 컸기에 그 기사가 주는 충격이 더 컸다. 그는 자원해서 입대했다. 도시와 나라를 잃는 두려움이 컸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부숴버린다. 올레크는 두 다리를 잃었다. 한국전쟁으로 부상을 입은 군인(상이군인)들이 많았던 한국의 역사를 떠올려볼 때 그의 고통이 남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적어도 그 순간, 좌절과 낙담을 기자에게 내비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조국과 세계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커다란 이야기 속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발발 후에도 수도 키이우를 떠나지 않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단합과 애국심을 이끌어냈다. 러시아라는 거대 악에 맞서 나라를 지킨다는 강력한 이야기를 이들은 공유하고 있다.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영문학과 진화생물학을 함께 공부하며 ‘이야기 과학’을 연구해왔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저자는 스토리텔링은 뿌리 깊은 인간의 본성이며 “이야기꾼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고, 집단의 가치를 공유한다. “서사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연장이며 개개인뿐 아니라 문명 전체를 구슬릴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은 서방세계와 러시아 사이의 지정학적 변화에 따른 충돌이라고 조감도를 보듯 설명할 수 있겠지만 삶의 터전이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겐 죽음이 코앞에 닥친 위기다. 두 다리를 잃고도 “세계를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올레크를 보면서 ‘이야기’가 발휘하는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스토리텔링의 목적은 ‘구슬림’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 하고, 타인의 생각과 느낌,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인류가 동굴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시작됐다. 책은 약 1만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진 프랑스의 수직동굴 속 진흙으로 빚은 들소를 예로 들며 신·정령·기원 등 부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부족원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말한다. 프랑스까지 갈 것도 없다. 신석기 시대 그려진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전하는 고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이야기에 빠져드는 인간의 본능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야기를 통해 지식을 전수하고, 집단을 결속하고, 적과 우리 편을 구분했다. “어떻게 이 모든 지혜를 이해 가능하고, 전달 가능하고, 설득 가능하고, 실행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한마디로 어떻게 착 달라붙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고 해법이 발견되었다. 스토리텔링이 해법이었다.” 스토리텔링이 있어 문명도 가능했다.

전작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이야기의 긍정적 기능을 역설했던 저자는 이번엔 스토리텔링의 위험성을 말한다. 원제는 <The Story Paradox>, ‘이야기의 역설’이다. 다문화·다민족 시대에 ‘우리’와 ‘적’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스토리텔링의 본성은 갈등과 분쟁, 분열과 불신의 씨앗도 함께 뿌린다. 민족·인종 간 갈등에는 상반되는 이야기가 있고, 기업들은 상품을 팔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적극 이용한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플라톤부터 기독교의 발원 등 역사와 종교를 오가고 할리우드 영화와 넷플릭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섭렵하며 논의를 펼친다. 스토리텔링 전문가답게 독자들을 구슬리는 솜씨가 좋다.

이야기는 왜 힘이 셀까? 이야기가 지닌 힘의 원동력은 ‘서사이동’이다. 책을 펼치거나 영화를 보며 일상에서 벗어나 이야기의 세계로 정신적 순간이동을 하는 미묘한 감각을 말한다. 서사이동을 통해 우리는 현실뿐 아니라 자신으로부터도 분리를 경험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주인공)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실에 기반한 논증을 접하면 경계 태세를 취하고 비판적인 자세가 되지만 이야기에 빠져들면 지적 방어망이 느슨해진다. “서사이동은 신중한 판단과 논증 없이도 지속적 설득 효과를 낳는 정신 상태다.” 만약 누군가 어떤 이야기가 ‘좋다’고 말하면, 그건 서사이동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게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국 시트콤 <윌 앤 그레이스>. 2012년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동성애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각이 달라진 것은 <윌 앤 그레이스> 덕분이라고 말했다.

게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국 시트콤 <윌 앤 그레이스>. 2012년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동성애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각이 달라진 것은 <윌 앤 그레이스> 덕분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12년 부통령 시절 텔레비전에 출연해 시트콤 <윌 앤 그레이스> 덕분에 동성애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가 일부 언론으로부터 또 말실수를 했다고 조롱당했다. 하지만 저자는 “바이든은 선도적 사회적 이론의 핵심을 짚었다”고 말한다. 연구 결과 동성애자에게 우호적인 텔레비전 드라마를 시청하면 편견이 줄어들었다. 우리가 허구의 등장인물과 맺는 가상의 관계는 실제 관계와 같은 영향을 미친다. J K 롤링의 <해리포터>를 읽은 독자들은 소수인종과 동성애자 같은 소외된 타자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줄어들었다. (롤링이 후에 트랜스젠더 차별 발언을 한 것은 논외로 한다.)

문제는 서사이동이 항상 좋은 쪽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스토리텔링에 대해 우려해야 하는 이유는 이야기꾼들이 부도덕해서가 아니라 더 유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이야기를 사랑하며, 이야기는 접착력이 강하다. 좋은 이야기는 되풀이하고 싶어지며, 격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격렬한 감정, 이게 중요하다. 감정은 이야기가 설득력을 발휘하는 원동력이며, “의심을 녹이는 용매”다. 감정 중에서도 힘이 센 쪽은 분노·불안 같은 활성화 감정이다. 활성화 감정은 심박수, 호흡, 혈압을 증가시킨다. 반면 만족과 좌절 같은 비활성화 감정은 이완 효과가 있어 행동을 억제한다. 즉, 분노와 불안을 강하게 일으키는 이야기가 더 잘 퍼진다는 것이다.

처음엔 예수를 비롯해 스무명 남짓이었던 기독교인이 서구 문화를 지배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교가 된 데에는 ‘강력한 스토리텔링’이 있다. 저자는 성서학자 바트 어먼의 연구를 인용해 “입소문 스토리텔링의 승리”라고 말한다. 기독교는 이야기로 만들어졌으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신도의 의무다. 또 천국과 지옥이라는 대조적 개념을 통해 “훨씬 달콤한 당근과 훨씬 굵은 채찍”을 내밀었다. 특히 지옥 이야기는 몸서리치게 실감나고 공포스럽다. 내세 이야기는 놀라움, 경외감, 경악, 두려움, 희망 같은 강력한 활성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의심을 무너뜨리고 믿음을 증진하는 강력한 감정 말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류의 대처가 굼뜬 이유는 기후 변화가 ‘나쁜 이야깃거리’라는 점이다. ‘좋은 이야기’는 명확한 영웅과 악당이 등장하고 급박한 위험을 극적으로 묘사해 우리들을 사로잡는다. 느리게 녹아내리는 빙하의 속도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낚아채기 어렵다. 기후위기를 다룬 소설과 영화가 많지만, 본질적으로 ‘비활성화하는 이야깃거리’라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의 규모가 너무 방대하고 대체로 우리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 때문에 명확한 ‘악당’을 지목하기 어려운 탓이다.

그렇다면 ‘좋은 이야깃거리’는 무엇인가? 스토리텔링의 보편 문법으로 ‘말썽’과 ‘도덕적 층위’를 꼽는다. 곤경에 처한 인물이 역경을 극복하는 구조가 ‘말썽’이라면, 도덕적 층위는 선과 악의 대결 구도를 말한다. 이야기엔 문제가 필요하고, 문제를 일으킬 악당이 필요한 것이다. 악당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누굴 악당으로 만드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쁜 목적의 ‘좋은 이야기’도 충분히 가능하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거칠게 요약하면 유대인을 문명을 위협하는 악당으로 만들고, 그렇기에 박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민족·인종 갈등에서 서로 상대방을 ‘악’으로 지정하는 다른 이야기를 공유한다.

히틀러의 고도로 극화된 인생 이야기 <나의 투쟁>은 유대인을 비롯한 바람직하지 못한 자들은 문명 최고의 악당이며 그렇기에 박멸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히틀러의 고도로 극화된 인생 이야기 <나의 투쟁>은 유대인을 비롯한 바람직하지 못한 자들은 문명 최고의 악당이며 그렇기에 박멸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기술 발전과 지식의 증가로 이제 누구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며, 어떤 이야기가 효과적인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퍼져나간다. 가짜뉴스와 음모론, 확증편향의 탈진실 시대가 된 지금은 ‘이야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사람들은 빙하와 북극곰 이야기보다는 선악이 명확해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에 끌린다. ‘호모 픽투스(Homo Fictus·이야기 사람)’는 수렵·채집인 시대의 본성을 지니고 있는데, 기술과 사회가 급변했다. “문화적·기술적 변화의 속도 때문에 한때 우리를 고양하고 단합시키던 이야기가 도리어 광기를 일으키고 있다. 해체와 무질서의 치료제가 오히려 해체와 무질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저자는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서사과학에 대한 학제 간 연구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 차원에서는 스토리텔링의 편향을 알고 통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야기에 흠뻑 빠져 어떤 사람을 악당으로 만들어 비인간화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면, 뇌의 자동적 처리 과정을 끊고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상상하려고 노력하는 식이다.

저자는 악인 없이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영화 <바벨>을 대안적 이야기의 가능성으로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으로 일관하는 <바벨>에서 사람들은 선의로 행동을 하지만 나비효과를 불러오면서 끔찍한 문제를 불러온다. ‘나쁜 놈’ 없이도 이야기는 가능하다. 저자는 ‘악마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는 논의로 나아간다. 악당을 뜻하는 ‘빌런’의 어원은 비천한 사람, 소작농, 평민, 하층민, 시골뜨기였다. 저자는 “약한 자, 가난한 자, 갇힌 자, 피해자 같은 이 땅의 비참한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악마는 ‘남’이 아니다. 악마는 우리다. 그런 처지로 태어났다면, 나도 당신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책과 삶]해리 포터와 히틀러···어떤 이야기에 끌리십니까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