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뮤지컬 ‘더데빌’

2014.08.27 21:13 입력 2014.08.27 21:20 수정
김여란 기자

한몸과도 같은 음악과 캐릭터들

창작 록뮤지컬 <더데빌>에는 화려한 무대와 의상, 달콤한 음악이 없다. 감옥이나 빌딩을 연상시키는 단상 여러 개와 지옥으로 향하는 듯한 높은 계단으로 짜인 검은 무대는 막이 내릴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무대에 선 배우는 셋이 전부다. 익숙한 기승전결의 서사를 기대해서도 안된다. 이야기 흐름대로 장면이 전환되는 게 아니라서 끝없이 이어지는 악몽을 보는 것 같다.

낯선 것투성이인 이 뮤지컬은 역설적으로 음악극인 뮤지컬의 본령에 가장 충실하다. 이야기와 음악을 퍼즐 조각처럼 적당히 끼워 맞추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는 음악이 곧 이미지와 캐릭터로 극을 끌어가며 장면을 바꾸는 장치다. 캐릭터와 음악이 일체가 돼 인간의 욕망과 파멸이라는 주제 그 자체가 된다. 창작 넘버들, ‘X’ ‘피와 살’ ‘눈동자’ ‘Mad Gretchen(미친 그레첸)’ 등은 처음 선보이지만 강렬하게 귀에 잘 휘감긴다. 록뮤지컬이라는 장르명과 달리 넘버 22곡 중 록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절반이 안된다.

[리뷰]록뮤지컬 ‘더데빌’

작품 기본 줄거리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한 오마주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설정은 그대로 둔 채 현대의 뉴욕 증권가로 배경을 바꿨다. 월스트리트의 전도유망한 증권맨 존 파우스트는 주식 사는 사람들의 소박한 꿈을 아낄 줄 아는 선한 남자다. 사랑하는 애인 그레첸과 신에 대한 믿음이 그를 지탱한다. 그러나 ‘블랙 먼데이’로 모든 것을 잃은 파우스트는 재기하기 위해 악마 X와 거래한 뒤 냉혈한이 돼 성공가도를 달린다. 거래의 조건은 파우스트가 가장 아끼는 것을 잘 지켜내야 한다는 것, 그러지 못하면 X가 그것을 거둬가겠다는 것이다. 그레첸은 파우스트가 X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걸 막기 위해, 사랑하는 남자에게 선의 가치를 다시 깨우쳐주기 위해 온몸을 던지다 자신이 먼저 망가지고 능욕을 당한다.

<더데빌>에서 이 같은 설정과 시대적 배경 등 서사 장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인물들은 각각 선과 악, 신과 악마,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신념을 지키다 파멸하는 인간의 마음을 상징한다. 배우들은 파우스트와 그레첸, X가 현실 속에서 어떤 인물일지 세밀하게 구현하기보다 그 자신이 이 같은 상징물이라는 듯 연기한다.

순수하면서도 농염하고 광기어린 차지연의 그레첸은 <더데빌>에서 가장 존재감 있는 요소다. 파우스트는 악에 자신을 맡기고서도 별 갈등을 겪지 않고, 대신 고통받는 것은 선한 그레첸이다. 다른 배우들 또한 흠 잡힐 데 없는 검증된 면면이다. X는 마이크리·한지상·박영수·이충주가 맡았다. 존 파우스트는 송용진·김재범·윤형렬이, 그레첸은 차지연·정은아가 연기한다.

연출은 <헤드윅>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이지나, 작사·작곡은 이지나와 우디 박, 이지혜가 맡았다. ‘다르다’는 것이 <더데빌>의 장점이지만 무대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극 초반에는 배우의 발성이 밴드 연주에 묻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음악과 조명, 코러스와 밴드, 배우의 역할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아 산만한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뮤지컬에 대한 통념을 바꾼 국내 연출진의 시도가 돋보이고, 치밀하게 만들어진 음악은 매력적이다. 묘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11월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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