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돌

“만해에 가려졌던 민족대표 용성 스님 삶 재조명돼야”

2019.02.27 21:45 입력 2019.02.27 23:15 수정

김택근 작가 ‘용성 평전’ 출간…“임시정부에 계속 자금 지원”

27일 서울 종로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용성 평전>의 김택근 작가(왼쪽)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용성 스님은 기미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로 참가했다. 용성 스님의 손상좌인 불심도문 스님(오른쪽)이 책의 감수를 맡았다. 이상훈 선임기자

27일 서울 종로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용성 평전>의 김택근 작가(왼쪽)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용성 스님은 기미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로 참가했다. 용성 스님의 손상좌인 불심도문 스님(오른쪽)이 책의 감수를 맡았다. 이상훈 선임기자

1919년 3월1일 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로 참석한 불교계 인사는 2명뿐이었다. 이 중 만해 한용운(1879~1944)은 널리 알려졌으나, 용성 스님(1864~1940)은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승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한 독립운동가였지만 이에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지난 22일 출간된 <용성 평전>(모과나무·사진)은 용성 스님의 일대기를 재조명했다. 책을 쓴 김택근 작가는 27일 서울 종로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용성 스님은 큰일을 했지만, 제대로 전해지지가 않았다”며 “심증은 가지만 증거가 없어 정작 평전에서 뺄 수밖에 없었던 일도 많았다”고 말했다.

용성 스님은 1864년 전라도 남원군(현 전북 장수군)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백상규로 1879년 해인사에서 화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용성은 법호이며 법명은 진종이다.

용성 스님은 ‘3·1 독립선언 이틀 전인 2월27일 한용운의 요청을 받아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왔다. 김택근 작가는 “환경 스님(1887~1993)의 회고록을 보면 ‘(1919년) 2월20일 서울에 올라가 오세창, 한용운, 백용성과 거사를 도모했다’는 기록이 나온다”며 “이는 용성 스님이 적어도 2월20일 이전 독립선언에 참여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 “당시 만해는 41세, 용성 스님은 56세로 나이차가 15살이나 나고, 용성 스님의 명성은 선승 중의 최고봉이었다”며 “한용운이 이틀 전에 (독립선언 참여를)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3·1절 100돌]“만해에 가려졌던 민족대표 용성 스님 삶 재조명돼야”

<용성 평전>의 감수는 불심도문 스님이 맡았다. 불심도문 스님은 용성 스님의 ‘손상좌’다. 용성 스님 상좌인 동헌 스님의 제자로 아래로는 법륜 스님을 상좌로 뒀다. 불심도문 스님의 증조할아버지인 임동수는 용성 스님이 독립운동 후원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닐 때 유일하게 호응해 준 사람이었다.

불심도문 스님은 “용성 스님은 반만년의 흐름은 군주제도였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민주제도로 올 것을 알았다”며 “독립운동이 대한제국 부흥 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 운동이라고 일찌감치 주장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나간 역사를 거울삼아 3·1절은 미래를 전망하는 날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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