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홍콩H지수 ELS였나···그리고 은행은 ‘왜’ 권유했나

2023.11.30 10:52 입력 2023.11.30 11:30 수정

당시 초저금리·은행 실적 경쟁 등 원인

내년 상반기 8조4100억원 만기 도래

금융당국, 투자 권유 등 사실관계 조사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시중은행 현금 입출금기가 모여 있다. 성동훈 기자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시중은행 현금 입출금기가 모여 있다. 성동훈 기자

대규모 손실이 예견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해, 안전자산을 주로 취급하는 은행에서 왜 고위험 상품인 ELS가 많이 판매됐는지 그 배경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선 당시 초저금리였던 시장 상황, 금융당국의 고위험 상품 규제 여파, 은행의 비이자이익 실적 경쟁 등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30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3년)가 도래하는 물량은 8조4100억원 정도다.

3년 전 왜 ELS를 권유했나

원금 손실을 꺼리는 경향이 강한 은행 이용자들이 고위험 투자상품인 ELS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정기예금이 초저금리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0~2021년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가중평균금리(1년 만기 기준)는 연 0.91~1.79%에 불과했다. 정기예금보다 약간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한 소비자들에게 은행이 추천할 만한 상품이 ELS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 홍콩H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이래로 장기간의 하락장 없이 8000~1만2000포인트 사이를 오르내렸다. 이 때문에 앞서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에서 손실이 발생한 선례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3년 만기의 ELS는 통상 6개월마다 한 번씩 가격을 평가해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배리어 가격) 이상이면 원금과 수익이 만기와 상관없이 조기 상환된다.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한계 가격) 이하로 떨어져야 만기 시에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은행 영업점 직원들은 홍콩H지수의 과거 추이를 근거로 들며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권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홍콩H지수가 2021년 1만2000포인트 부근에서 거래되며 강세장을 연출했던 것도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한 것으로 보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9일 은행이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하면서 ‘적합성의 원칙’을 지켰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9일 은행이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하면서 ‘적합성의 원칙’을 지켰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DLF 여파에 KB국민은행에 판매량 몰려

당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홍콩H지수 ELS 손실 사태와 관련해 은행별 희비를 가른 원인이 됐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을 보면 KB국민은행이 4조7725억원으로 전체의 57%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NH농협은행 1조4833억원, 신한은행 1조3766억원, 하나은행 7526억원, 우리은행 249억원이다.

ELS 판매 금액이 한 은행에 유독 몰려있는 것은 2019년 최대 98% 손실을 냈던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여파와 관련 있다. 2019년 11월 금융위원회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은행의 사모펀드·신탁 판매를 금지하려고 했다.

은행권이 반발했고, 금융당국은 이를 수용해 공모로 발행된 주가연계신탁(ELT)에 한해 은행 판매를 허용했다. 은행은 ELS를 ELT의 형태로 취급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ELT의 기초자산을 코스피200, S&P500, 유로스톡스50, 홍콩H지수, 닛케이225 등 5개 지수로 한정했다. 이와 함께 은행이 2019년 11월 말 기준 파생상품의 잔액 이내에서만 해당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제한했다.

DLF 사태의 중심에 있던 하나·우리은행은 파생상품 판매를 축소한 상황이라 잔액이 4조~6조원 정도였다. 반면 DLF를 취급하지 않아 사태에서 동떨어져 있던 KB국민은행은 ELS를 적극적으로 판매하던 터라 잔액이 13조원가량에 이르렀다. 취급할 수 있는 한도가 다른 은행의 2~3배 규모라 판매량도 더 많았던 셈이다.

이 밖에도 ELS 판매량이 은행의 비이자이익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영업점 직원들에게 실적에 대한 압박이 있었는지도 금융당국이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7~11월 만기 물량, 46% 손실 발생

홍콩H지수가 이른 시일 내에 강하게 반등하지 않는다면 내년 상반기 ELS 손실률은 수십 퍼센트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하나은행 사례를 보면 지난 7~11월 만기가 돌아온 홍콩H지수 ELS 181억원 중 83억원(45.9%)의 손실이 확정됐다.

은행에서 판매한 고위험 상품 가입자의 상당수가 노후 자금을 맡긴 경우가 많아 손실에 대한 충격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의 2019년 11월 자료에 따르면 은행 파생상품 가입자 중 50대 비중(29%)이 가장 높고, 60대(25%), 40대(16%), 70대 이상(15%) 순이었다.

금융당국은 은행이 소비자의 가입 목적에 적합한 상품을 권유했는지, 또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설명했는지, 투자 권유 관련 서류에 대필 기재하거나 원하는 답을 유도한 사실은 없는지 등을 조사해 연내로 대략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할 방침이다. 은행의 불완전판매 사실이 입증되면 은행은 소비자에 대한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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