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족도 한국의 2배, 대만 건강보험 ‘띵하오’의 이유

2018.03.30 06:00 입력 2018.03.30 06:02 수정

대만 노인들이 지난 5일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신이구에 있는 싱야구민노인센터에서 마작을 두고 있다. 이 센터는 타이베이시에서 위탁한 복합형 노인 주간보호센터의 하나다. 타이베이 | 이유진 기자

대만 노인들이 지난 5일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신이구에 있는 싱야구민노인센터에서 마작을 두고 있다. 이 센터는 타이베이시에서 위탁한 복합형 노인 주간보호센터의 하나다. 타이베이 | 이유진 기자

“대만에는 3대 보배가 있다. 첫째는 건강보험, 둘째는 노동자보험, 셋째가 299대만달러(약 1만2000원)짜리 고기뷔페다.”

지난 6일 대만 타이베이(臺北)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의료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며 연신 “띵하오!”(아주 좋아요!)를 외쳤다. 3대 보배로 꼽을 만큼 의료 서비스와 건강보험제도에 만족한다는 의미였다. 대만의 건강보험제도인 전민건강보험 국민 만족도는 2017년 기준 85.8%였다. 이는 한국보다 약 두 배 높은 수치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조사 결과 한국 시민의 국민건강보험제도 만족도는 43.3%였다.

대만의 건강보험제도가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전민건강보험의 높은 보장성을 꼽는다. 대만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85%로, 한국의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장기요양과 가정간호 등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10년간 60%대에 머물러 있다.

20년 전 대만으로 이민 온 김강호씨(60)는 “대만 사람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암이나 치매에 걸려도 국가가 나를 돌봐줄 것이란 믿음이 강하다”고 말했다.

대만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암·중증 만성질환자의 병원비를 일부 면제하는 중대상병제도, 노인들의 존엄 있는 죽음을 돕는 장기요양 정책 등을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대만에서 만난 노인들과 암 환자들은 하나같이 “비용 때문에 병원을 못 간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손을 내저었다.

타이베이시 위생복리부 관계자는 “장기요양 정책이나 중대상병제 모두 도입 초기에 과잉 복지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며 “하지만 병원과 의사, 지역 사회가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하자 점차 우려보다 만족하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앞장서서 의료는 시민의 기본권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장이 노인들 살피며 ‘방문진료’ 요청…사각지대 없앴다

대만의 건강보험 만족도, 한국의 2배인 이유

“대만의 장기요양 정책의 토대는 동화 ‘돌로 만든 국’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지난 6일 타이베이 네이후(內湖)구 위생소에서 만난 왕수친 타이베이시 위생복리부 선임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돌로 만든 국’ 이야기는 서양에서 유래한 전래동화다. 배고픈 군인을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 맛있는 국을 끓이고, 그 국을 배불리 나눠 먹었다는 내용이다. 왕 선임연구원은 “정부와 병원, 지역사회가 제 역할에 충실하는 게 이 정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대만의 장기요양 정책은 여러 기관의 협력을 통해 노인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 장기요양 정책의 핵심 ‘방문진료’

[우리는 충분히 ‘돌봄’ 받고 있는가](8)만족도 한국의 2배, 대만 건강보험 ‘띵하오’의 이유

지난 5일 오후 2시 대만 타이베이 신이(信義)구에 위치한 싱야구민노인센터에서는 노인 20여명이 마작을 두고 있었다. 바로 옆 실내 체육시설에서는 노인 10여명이 배드민턴을 치느라 분주했다. 이 센터는 타이베이시에서 위탁한 복합형 노인 주간보호센터의 하나다. 중학교에서 역사 교사를 하다 은퇴한 장가호씨(77)는 7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았지만 지금은 회복해 매일 아내와 함께 센터에 나오고 있다. 장씨는 “아프다고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밖에 나와 사람들과 마작도 두고 강의도 듣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흔한 노인복지관 같지만 이곳은 대만 위생복리부가 시행하는 장기요양 정책을 수행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복지사들은 노인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물론 이들의 건강상태도 유심히 살핀다. 한 사회복지사는 “꾸준히 나오던 노인이 보이지 않거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노인을 발견하면 곧바로 사회국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며 “장씨와 같은 만성질환자는 좀 더 세심히 관찰한다”고 말했다.

싱야구민노인센터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장 사무소도 식사 제공, 사례 관리 등 장기요양 정책의 일부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 동네 이장 주수펀(43)의 주된 업무는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취약계층 관리다. 이날도 주 이장은 독거노인들의 집을 방문할 동선을 짜느라 분주했다. 특히 한 노인의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상태가 심각하면 사회국에 알려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한다”며 “인근 병원에서 의료팀이 파견돼 방문진료를 한다”고 했다.

대만 정부의 의료복지 고민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노령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만 정부는 65세 노인 인구가 올해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만 위생복리부는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2016년 10월부터 ‘장기요양 10년 계획 2.0’을 실시했다. 지위추 네이후 위생소 센터장은 “일상생활 활동장애나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은 물론 건강한 노인도 돌봄의 대상이 된다”며 “노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총 세 등급으로 나눠 맞춤형 지원을 한다”고 설명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노인(C등급)의 경우 복합형 노인보호센터에서 순회 진료, 식사 제공 등의 서비스를 받는다. 일상생활에 장애(ADL)가 있거나 치매가 있는 노인(B등급)은 복합형 주간 보호센터나 치매 전문 거점 시설에서 경증 재활훈련이나 교통수단 등이 제공된다. 마지막으로 거동이 불편한 중증·말기 질환자(A등급)는 동네 장기요양소나 집에 거주하며 방문진료, 방문간호, 방문재활 등의 서비스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장기요양 정책의 핵심은 지역 병원과 협력하는 방문진료에 있다고 강조했다. 타이베이시는 타이베이 시립대학병원을 포함한 12개 병원을 지정해 12개의 방문진료 의료팀을 꾸렸다. 의사, 간호사, 영양사, 약사, 위생소 직원으로 구성된 의료팀은 주 1~2회 지역사회 취약계층의 방문진료를 담당한다. 지 센터장은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는 대상자들은 혈압 측정이나 구강 검사 등 간단한 검진을 받고, 거동이 불편하거나 질환이 있는 대상자의 경우엔 진료와 함께 약품 처방도 받는다”고 말했다. 타이베이에서만 지난해 1~9월에 1만956명이 장기요양 정책 대상자가 됐으며, 이 가운데 4229명이 방문진료 서비스를 받았다.

■ 병원 문턱 낮춘 ‘중대상병제도’

타이베이 동쪽에 있는 지룽(基隆)시에 사는 류미려씨(76·가명)는 폐선암 환자다. 2016년 암 진단을 받은 류씨는 2년째 투병 중이다. 류씨는 미국으로 이민 간 가족과 떨어져 대만에서 혼자 살고 있다. 지룽 장궁기념병원을 다니는 류씨는 “종양을 전문으로 다루는 유명한 의사가 이 병원에 있는 데다 이 의사가 민난어(대만어)도 할 수 있어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고 말했다. 국공립 병원을 포함해 종합병원 이상급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홈페이지에 사용 가능한 언어를 안내하고 있다. 외국인과 민난어를 주로 사용하는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다. 류씨는 “어느 나라나 좋은 의사와 좋은 의료 서비스를 찾아다니는 건 똑같다”고 했다.

류씨는 처음 진단을 받을 때 이미 암이 4기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가슴에 가벼운 통증을 느끼고 찾은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권유받아 6000대만달러(약 24만원)를 내고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았다. 류씨는 암 진단을 받은 그날 의사의 권유로 ‘중대상병제’ 대상자 신청을 했다. 류씨는 “일주일쯤 지나 중대상병 카드가 발급돼 이후 검사비는 물론 약값도 전액 무료가 됐다”고 했다.

그는 “대만에 혼자 건너온 뒤 바느질이나 자수 같은 소일거리로 돈을 벌어 생활비를 쓰는데, 의료비로 나가는 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류씨는 암 진단을 받기 전 MRI 비용과 내시경 검사비 100대만달러(약 4000원)를 지출했으나 중대상병 대상자가 된 이후에는 의료비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중대상병제도는 암·혈우병·만성정신질환 등 30여 질병군에 해당하는 100여개 질병을 대상으로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일부 면제하는 제도다. 치료비와 의약품, 생명 유지에 필요한 특수 영양품 비용 보조 한도를 80%로 하되, 매년 본인부담 총액을 정해 과도한 의료비 지출을 막는다. 중·저소득층과 6세 이하 아동의 경우는 전액을 지원한다. 대만 정부는 건강보험 외에도 별도의 기금을 조성해 중대상병제 지원에 활용하고 있는데, 2008년에는 1317억원이었다.

중대상병제 대상자가 아닌 환자도 의료비 부담이 적은 건 마찬가지다. 무분별한 병·의원 이용을 방지하기 위해 진료비의 일부를 건강보험 가입자에게 직접 부담시키는 본인부담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본인부담 상한의 연간 한도를 4만대만달러(약 160만원) 정도로 제한해 총진료비 중 본인부담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10%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은 국민이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높은 수준이다. ‘OECD 건강통계 2017’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한국 경상 의료비 가운데 가계직접부담 비중은 36.8%로, OECD 평균(20.3%)보다 1.8배가량 높았다. 이는 라트비아(41.6%)와 멕시코(41.4%)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것이다.

■ 높은 보장성·의료비 절감 비결은 총액계약제

대만 정부는 1995년 13개로 나뉘어 있던 보험제도를 통합해 ‘전민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세금의 형태로 일괄적인 보험료를 거둬 보험사에 의료비를 직접 지불하는 단일보험자 체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제도로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고, 의료 접근성을 높이며, 제도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2013년부터는 제2세대 전민건강보험이 시행됐다.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정부의 재정책임 확대, 소외계층 지원 및 자격취득 기준 강화 등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전민건강보험은 취약계층의 범위를 폭넓게 설정해 의료보장의 사각지대를 줄였다. 저소득계층은 물론 중증질환자, 정신·신체 장애인, 저소득 65세 이상 노인 등도 사회적 취약계층이다. 국고 지원 비율도 높다. 전민건강보험 전체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 비율은 2001년 37.4%, 2005년 33.3%, 2007년 32.4% 등 30%가 넘는다. 제2세대 전민건강보험법에서는 국고지원 비율을 36% 이상으로 명문화했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은 매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정부가 건강보험에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흔히 높은 보장성을 담보하려면 재정위기가 뒤따른다고 주장한다. 대만의 사정은 어떠했을까. 대만은 1998년 행위별 수가제가 재정부담을 초래한다는 지적에 따라 총액계약제를 도입했다. 일정 기간 동안 병·의원에 제공될 의료 서비스 총액을 사전에 결정하고, 총액 범위 안에서 진료가 이뤄지도록 관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1998년 치과 부문을 시작으로 2000년 한방 부문, 2001년 의원 부문, 2002년 7월 병원 부문으로 확대했다. 총액계약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대만만이 아니다. 독일은 2004년부터 병원에 대한 포괄수가제를 기초로 한 총액계약 방식으로 진료비를 지급하고 있다. 네덜란드, 프랑스, 캐나다도 총액계약제를 도입하고 있다.

총액계약제를 도입한 나라에서는 의료비 절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국 일각에서도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의료비 지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총액계약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왕수친 타이베이시 위생국 선임연구원은 “의사의 의료행위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시행하는 한국에서 그 부작용을 바로잡기 위해 총액계약제를 무조건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서로 장단점이 뚜렷한 만큼 한국 의료계에 총액계약제가 시사하는 바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높은 보장성을 담보하되 무분별한 의료비 지출을 막는 데 총액계약제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IC카드 건강보험증’으로 정보 유출 차단…한국선 ‘뜨거운 감자’

도입 후 유출 사건 한 건도 없어

의사에 설명 안 해도 병력 확인

효율적이고 안전한 진료·처방

[우리는 충분히 ‘돌봄’ 받고 있는가](8)만족도 한국의 2배, 대만 건강보험 ‘띵하오’의 이유


대만에서 만난 만성질환자나 장애인은 “IC카드 덕분에 효율적이고 안전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만성 신장질환자 천즈밍(42)은 “만성질환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의사가 과거 진료기록을 확인해 이에 맞는 진료를 해준다”며 “복용 중인 약이나 알레르기 정보도 담겨 있어 응급상황에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IC카드는 전자건강보험증(사진)을 말한다. 대만 정부는 2004년 기존 종이 건강보험증을 IC카드로 전면 교체했다. IC카드 전산시스템도 도입해 환자의 진료기록 등을 의료서비스 제공자에게 연결시켰다. 그 결과 의사는 환자의 IC카드로 복용한 약물명 등 진료내역을 최대 6회까지 확인할 수 있다. 대만 의료제도는 IC카드의 도입으로 한 단계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 IC카드 도입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2015년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은 IC카드 도입을 추진했으나 일부 시민단체와 의사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당시 건보공단은 “IC카드를 도입하면 메르스 등 감염질환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건강보험증 도용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유출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높고, 민감한 질병 정보가 새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까지도 IC카드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대만 위생복리부 관계자는 “IC카드 도입 이후 정보 유출 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고 했다. 어떻게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불식시켰을까. 환자의 의료 정보는 환자의 IC카드와 의사, 병원 카드가 동시에 접속됐을 때만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위조방지 장치가 설계된 안전장치(SAM카드) 인증을 거쳐야 읽기와 쓰기가 가능하도록 한 덕분이다.

대만 정부는 IC카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클라우드 약품 사용 이력’ 시스템도 시행 중이다. IC카드는 2000년대 초반의 기술을 이용한 만큼 저장할 수 있는 의료정보 양은 한계가 있다. 대만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13년부터 이 시스템을 도입해 IC카드와 함께 활용하고 있다. 클라우드에 기초를 둔 환자의 약품 사용기록 데이터베이스로, IC카드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진료기록과 약품 사용 이력을 저장한다. 위생복리부 관계자는 “클라우드 약품 사용 이력 시스템을 이용해 처방전 복제와 과다처방 사건, 약품 간 발생하는 유해한 상호작용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박효순·홍진수·노정연·이유진

기자공동기획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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