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지른 소년, 그 후

가정 붕괴·사회 방관·교정 한계… 변하고 싶어도 도로 제자리

2015.02.27 21:41 입력 2015.02.27 22:01 수정
이혜리·김원진·배장현 기자

청소년 범죄 악순환의 고리

▲ 소년범 부모 5명 중 1명은 이혼 뒤 재혼하거나 한부모
교사 대부분 아이 상태 몰라… 교정, 전문성 없이 가정에 맡겨
불안한 가정의 아이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범죄 유혹에

지난 5일 오전 4시40분쯤 김모군(16) 등 10대 청소년 5명이 서울 종로구의 한 휴대폰 매장으로 향했다. 가출한 뒤 돈이 궁해지자 유리 너머로 번쩍거리며 진열돼 있는 휴대폰들이 생각난 것이다. 이들은 벽돌로 유리문을 부쉈다. 그러나 매장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비상벨이 울렸다. 범행에 실패하고 도망친 이들은 숭인동, 보문동 일대의 PC방과 사우나를 돌아다녔다. 휴대폰을 놓고 잠을 자거나 화장실에 가는 사람들을 노렸다. 휴대폰 6대를 훔쳐 그중 3대로 80만원 상당을 소액결제했다. 대부분 밥을 사먹는 데 썼다. 이들은 3일간 모텔에서 함께 지내다 추적하던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 중 3명은 한부모 가정이었고, 2명도 부모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다고 했다. 학교에도 가지 않았다. 3명은 이전에도 절도를 저질러 보호관찰을 받다 또 범행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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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 붕괴·학교의 방관… 버려진 청소년

가정환경이 불안한 아이들은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 와중에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가 사라진다. 교정시스템을 거친다고 해도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재범을 막을 수 없다.

서울지역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한 청소년범죄 수사 담당 경찰관은 “소년범을 조사하다 보면 진정성이 느껴질 정도로 뉘우치는데 가정에 다녀오면 다시 망가져서 오는 경우가 많다”며 “학교 교사도 아이들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아 관리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경찰관은 “가정이 불안한 아이들은 외로움을 해소할 데가 필요하기 때문에 거리로 나가고 또래와 어울리다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의 경제수준도 청소년범죄와 연관성이 높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소년범 9만1633명 중 생활수준이 낮은 경우가 5만85건으로 54.7%를 차지했다. 중산층은 3만1211건(34.1%), 상류층은 773건(0.8%)에 불과했다. 소년범 5명 중 1명은 부모가 이혼 뒤 재혼했거나 부모 한쪽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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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범 처분… 보호일까 방치일까

소년범에 대한 교정은 가정에 맡겨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형법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을 다르게 하지만 소년법은 보호자의 보호 능력에 따라 처분 수위를 정한다. 소년범은 성인범과 달리 처벌보다 교육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취지지만 국가가 1호 처분(보호자 위탁)을 쉽게 하면서 청소년 문제에 전문성이 없는 가정에 책임을 미룬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 사법연감의 2012년 소년보호사건 현황을 보면 1~10호(장기 소년원 송치) 처분을 받은 전체 건수 중 1호 처분이 60%를 차지했다. 소년법에서는 판사가 필요한 경우 보호자도 교육을 받으라는 결정을 내리고, 만약 교육받지 않으면 과태료 부과 등 제재를 가하게 돼 있지만 1호처분에 대해서는 보호자 교육을 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호자에게 아이를 맡겨놓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아이의 긍정적인 변화와 반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보돼야 하는 것이다.

소년원, 보호관찰소 등 교정기관은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 법무부는 비행 초기 단계에 있는 위기청소년의 범죄를 예방하고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청소년비행예방센터(꿈키움센터)를 2007년 설립했지만 아직 전국적으로 16곳에 불과하다. 일본은 100개가 넘는다. 보호관찰 인력도 마찬가지다. 서울지역 보호관찰소 공무원이 담당하는 청소년은 1인당 150~200명에 달한다. 이 중 현행법상 한 달에 4번 이상 출석면담과 1번 출장면담을 해야 하는 집중 대상자가 20%, 한 달에 1번 출석면담을 하는 주요 대상자가 60~70%, 3개월에 1번 출석면담을 하는 일반 대상자가 10~20%다. 출장면담을 제외해도 하루에 최소 10명은 면담해야 하는 것이다. 맞춤식 지원은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의 재범률은 2012년 12%로 성인(4.1%)의 3배에 달한다.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 10명 중 1명은 재범을 저지르는 셈이다.

소년원에서 만난 친구와 출원 이후 재범을 벌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수용가능 인원을 초과 수용해 ‘시루떡 소년원’이라고 불린 지 오래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6개월 단기송치의 경우 나쁜 것을 배우는 데는 충분히 긴 시간이지만 나쁜 것을 교정하고 계도하는 데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는 연구도 있다”며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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