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조업 거부도 “업무 방해”, 76%가 유죄… ‘파업은 범죄’로

2015.07.05 22:31 입력 2015.07.05 22:42 수정
강진구 노동전문기자(공인노무사)

(1) 사용자 편향성 도 넘은 대법원

▲ 근로조건 영향 줘도 ‘경영상 이유’로 파업 정당성 부정
파업 참여 노동자들 형사사건 유죄선고율 83% 넘어

대법원의 노동사건 판례에서 노동기본권 보호는 기업경쟁력 강화 논리에 지속적으로 밀려왔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이 방향성은 외환위기 후 속도가 붙고, 보수정권 집권기에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사법적 완충지대가 사라졌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이제 문제가 생기면 ‘법’이 아니라 ‘몸’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쌍용차에 이어 스타케미컬, 하이디스 등 정리해고 사업장이 넘쳐나지만 더 이상 사법부와 법전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힘든 노동자들은 고공농성·오체투지·해외 원정 삭발 시위 등 격렬하면서도 원시적 저항을 선택하고 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우리 헌법은 노동조합에 사회적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실제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판례를 보면 단결금지법이 통용되던 19세기나 20세기 초 유럽의 법리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이 1990년부터 올 2월까지 25년간 대법원 판례(심리불속행 제외)를 전수조사한 결과 대법원의 친사용자적 편향성은 이미 도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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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의행위 ‘목적 제약’ 심해

대법원에서 이뤄진 쟁의행위 관련 선고 408건 중 파업 정당성이 인정된 것은 59건(14.5%)이고, 349건(85.5%)은 위법 판정이 내려졌다. 대법원이 쟁의행위 정당성 요건을 주체·목적·절차·방법 등 4가지로 나눠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한 데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파업 정당성을 부정한 근거를 밝힌 판례 313건을 유형별(복수위반도 있음)로 보면 주체 위반(노조 아님) 47건(15%), 목적 위반 143건(45.7%), 절차 위반 130건(41.5%), 방법 위반 123건(39.3%)이었다. 쟁의행위 목적의 정당성 문제가 노동3권 실현의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한 셈이다. 구체적으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상고를 기각한 판례까지 합치면 목적의 정당성 때문에 불법파업으로 분류된 것은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 판례들은 ‘정리해고나 사업조직 통폐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이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더라도 경영권에 속하는 사안은 파업의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대법원의 완고한 입장에 따른 것이다.

목적 외에 쟁의행위 정당성을 인정하는 나머지 요건도 지속적으로 노동계에 불리하게 바뀌어왔다. 1994년 기존 노조의 비민주성에 불만을 품고 6500여명이 가입한 전국기관차협의회 소속 기관사들의 파업에 대해 대법원은 “노조법상 조합이 아니면 쟁의행위 주체가 될 수 없다”며 쟁의행위 주체를 법내노조로 엄격히 제한했다. 파업 찬반투표 문제도 만도기계 노조는 1998년 파업 당시 ‘조합원 대다수가 참여한 총회에서 파업을 결의했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직접·비밀·무기명 찬반투표를 거쳐 재적 과반수의 찬성을 얻지 않으면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종전 판례를 변경했다. 그전까지 판례는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아도 민주적 의사 결정이 실질적으로 확보되면 된다’(99도4836)는 것이었다. ‘집단적인 월차휴가’(91도2323)와 ‘간호사들이 규정된 복장을 착용하지 않고 티셔츠를 입고 근무한 행위’(2003도1317)도 불법파업으로 판단했다.

판례 분석작업에 동참한 김승현 노무사(23기)는 “2심에서 한번 파업의 정당성이 부인되면 대법원에서 거의 그대로 확정됐다”며 “부당노동행위와 쟁의행위가 서로 엮여 있는 경우에도 쟁의행위 정당성이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 쟁의행위에 업무방해 기소 1위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실현하는 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법원이 ‘파업은 범죄’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업 참여 노동자에 대한 형사사건 287건 중 유죄 선고율은 83.7%(241건)로 나타났다. 파업 정당성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고,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은 불법파업은 자동적으로 유죄로 판단한 것이다. 기소죄목별로 분석(복수죄목도 있음)한 결과 업무방해를 적용한 판례가 169건(58.9%)으로 가장 많고 이어 폭력 121건(42.2%), 노조법 74건(25.8%), 집시법 52건(18.1%), 공무집행방해 29건(10.1%), 명예훼손 15건(5.2%) 순이었다. 업무방해가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탄압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임이 확인된 것이다. 특히 단순한 집단적 노무 제공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업무방해로 기소된 경우가 71건(24.7%)에 달했고 이 중 54건(76.1%)에 대해 유죄가 선고됐다. 노동자가 다른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 단순파업만 해도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따른 임금 미지급 외에 사용자의 재산상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과 형사처벌까지 3중의 책임을 지게 한 것이다.

판례 분석 작업에 참여한 박정호 노무사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쟁의행위 절차나 방법 측면에서 과격한 투쟁을 하면서 정당성이 부정된 경우가 많았는데 2000년대 중반 이후 단순 조업 거부만으로도 처벌된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나마 2011년 “불법파업이라도 ‘전격성’과 ‘막대한 손해’가 인정되지 않으면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판례가 변경된 후 대법원은 6건에 대해 쟁의행위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업무방해는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법원은 ‘자유 의사에 따른 단순파업까지 국가가 형벌권을 동원하는 게 옳으냐’는 법조계 안팎의 지적에 오불관언이다.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불법시하는 경우도 외국에선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도케 교수는 지난해 9월 한국노동법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경영적 결단에 대항하는 파업이 불법이라는 한국 대법원의 논리로 본다면 파업권은 현실에서뿐 아니라 법 논리 자체에서도 부인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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