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산산 독극물 쓰레기 치우려면 지금 속도로는 500년 걸린당게”

2019.03.30 06:00 입력 2019.03.30 06:02 수정

전북 익산 낭산산에는 채석 이후 생겨난 지하 60m의 공간에 납·비소가 포함된 유해 폐기물과 토사가 함께 매립됐다. 쓰레기 더미의 오염수가 거품을 일으키며 흘러나오는 모습.  익산 | 강윤중 기자

전북 익산 낭산산에는 채석 이후 생겨난 지하 60m의 공간에 납·비소가 포함된 유해 폐기물과 토사가 함께 매립됐다. 쓰레기 더미의 오염수가 거품을 일으키며 흘러나오는 모습. 익산 | 강윤중 기자

“하루라도 빨리 저놈을 퍼 가야제.” “오메 3000억이 든디야.” “어르신, 지금 속도로 치우면 500년이 걸린당게요.”

한국의 가장 오래된 석탑인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18년간의 복원을 마치고 공개된 지난 23일 점심 무렵이었다. 이 석탑으로부터 6㎞가량 떨어진 낭산면의 한 식당에서 주민 셋이 착잡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김이호씨(58·가명), 김한수씨(58·가명) 그리고 낭산면에서 가장 젊은 축인 최종화씨(48)는 식당 창문 너머 낭산산 자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1급 발암물질 ‘비소’ 등으로 범벅이 된 쓰레기 더미가 있다.

익산의 낭산산은 미륵산과 불과 3㎞ 거리를 두고 남북으로 마주 보고 있다. 미륵산 인근에 미륵사지 석탑이 지어진 것은 7세기 백제 무왕 시절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미륵산에서 오래전 돌을 캐낸 흔적을 발견했다. 1300년 전 약 14m 높이로 지어진 이 웅장한 석탑의 석재가 바로 미륵산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낭산산에도 돌로 지어진 백제 유적 낭산산성이 있다. ‘돌’은 한마디로 익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1000여년이 흘렀어도 익산에서 돌 캐는 일은 계속됐다. 익산 낭산면, 황등면 일대엔 지금도 채석을 하는 석산개발 업체들이 즐비하다. 과거엔 석공이 연장을 들고 직접 돌을 채취했다면 지금은 발파 작업으로 대규모로 돌을 파내다시피 한다는 게 차이점이다. 업체들은 솟아 있는 산자락을 깎아낸 것은 물론 지하로도 축구장만 한 구멍을 뚫어 깊이 60~70m까지 파냈다.

깎아낸 석산 단면은 그렇다 치고 채석 이후 생겨난 커다란 지하 공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공간에 쓰레기를 묻는 일이 2000년대 후반부터 ‘석산복구’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석산개발 업체가 채석을 끝내고 나가면 석산복구 업체가 들어와 쓰레기와 토사를 함께 매립하는 식이었다. 2000년대 초까지 법률에는 채석이 끝난 석산의 ‘복구재’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 2004년 익산시는 낭산산에서 채석을 마친 지하 공간에 폐기물과 토사를 ‘50 대 50’으로 메우겠다는 업체에 허가를 해줬다. 폐기물관리법 일부 조항을 확대해석한 결과였다. 물론 그때의 법으로도 인체에 유해한 폐기물(폐기물관리법상 ‘지정폐기물’)을 땅에 그냥 묻는 것은 금지돼 있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감시망은 헐거웠다. 10여년이 흘러 기준치의 600배가 넘는 비소가 포함된 쓰레기 약 143만t이 백제 유적 낭산산성 코앞에 묻히는 비극은 이렇게 시작됐다.

◆1급 발암물질 범벅된 쓰레기 수백만톤…채석 끝난 산에 그냥 묻었다

<b>쓰레기 침출수 넘치기 일보직전</b> ‘돌의 고장’ 익산의 낭산산에 위치한 한 채석장에선 산줄기를 깎은 것은 물론 60m 깊이까지 파 내려가 돌을 캐내는 대규모 채석이 이뤄졌다. 이후 지하공간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수준의 비소·납이 포함된 쓰레기 143만t이 묻혔고, 이 쓰레기에서 침출수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익산시는 일단 유해 쓰레기 더미 위에 막을 덮어놓았다. 지표면 위로 불룩 솟은 검은 막 위에 오목하게 공간을 만들어 쓰레기 침출수를 가둬놓은 상태다. 익산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쓰레기 침출수 넘치기 일보직전 ‘돌의 고장’ 익산의 낭산산에 위치한 한 채석장에선 산줄기를 깎은 것은 물론 60m 깊이까지 파 내려가 돌을 캐내는 대규모 채석이 이뤄졌다. 이후 지하공간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수준의 비소·납이 포함된 쓰레기 143만t이 묻혔고, 이 쓰레기에서 침출수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익산시는 일단 유해 쓰레기 더미 위에 막을 덮어놓았다. 지표면 위로 불룩 솟은 검은 막 위에 오목하게 공간을 만들어 쓰레기 침출수를 가둬놓은 상태다. 익산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움푹 파인 산자락 ‘검은 막’으로 뒤덮여…낭산산에는 무슨 일이

“가보믄 아주 볼만할 겨.”

낭산산 끝자락 인근에서 10년가량 논농사를 지어온 김이호씨(가명)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논판 너머엔 ‘ㅎ환경’(ㅅ환경으로 2017년 상호 변경)이라는 쓰레기재활용업체가 있다. 채석을 끝낸 자리에 2004년 즈음 들어온 이 업체는 뻥 뚫린 지하공간(석산 복구지)에 전국 각지에서 쓰레기를 받아와서 묻는 이른바 석산복구 작업을 해왔다. 지금은 지하공간은 모두 메워졌고 지표면 위로 봉긋 솟아올라온 대형 봉분 같은 형태가 만들어졌다. 익산시는 맹독성 폐기물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급한 대로 검은 막을 덮어놨다.

김씨는 논둑 끝까지 걸어가 ㅎ환경에서 경작지 방향으로 흘러나오는 침출수를 보여줬다. 마치 간장 국물 같았다. 농도가 진한 곳은 시커먼 색깔이었고 옅은 곳에서는 적갈색을 띠었다. ㅎ환경의 석산 복구지 내부에는 쓰레기를 묻은 토양에서 올라온 대량의 침출수를 처리하지 못해 자체적으로 만든 대형 저류조가 네 군데나 된다. 막을 덮어놓은 ‘쓰레기 봉분’ 위를 오목하게 만들어 침출수를 가두어놓는 식이다. “이놈들이 비 오면 확 터쳐버린당게.” 김씨는 비가 올 때 ㅎ환경의 침출수가 인근 경작지로까지 철철 흘러넘친다고 했다. ‘터쳐버린다’는 것은 ㅎ환경이 저류조에 가둬놓은 침출수를 비가 올 때 일부러 ‘터뜨려’ 바깥으로 흘러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ㅎ환경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 지역에서 논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이런 의심을 강하게 품고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날 침출수는 수로를 따라 흐른다. 그나마 익산시에서 최근 이 침출수가 논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콘크리트 수로를 만들었다. 하지만 과거엔 논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한다. 처음 농민들은 지하수나 빗물이 토사와 뒤섞인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넘기기 꺼림칙했다. 논에서 맨발로 일한 후에 피부에 발진이 생기고, “쌀알이 통통하게 여물지 않는” 일도 매년 반복됐다. 2008년엔 흑갈색의 물이 경작지에 흘러넘쳤고, 2013년과 2014년 인근 하천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농민들은 ㅎ환경을 수상하게 여겨 여러 차례 관공서를 찾았다.

“아마 10년도 더 됐을 거요. 우리가 도청도 가보고 시청도 가서 항의를 했는데 아무리 두드려도 안되더라고….” 김씨와 이웃한 논에서 농사를 지어온 노용수씨(가명)의 말이다. 이들이 오랫동안 확인하지 못한 진실은 세월이 흘러 2016년 환경부 중앙환경사범수사단의 수사로 일부 드러났다. 비소와 납이 대거 섞인 폐기물을 이곳에 파묻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 ‘돌’의 도시 익산에서 벌어진 일

이듬해인 2017년 정밀조사를 해 보니 상황은 더 심각했다. 전북녹색환경지원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ㅎ환경이 쓰레기를 묻어둔 곳의 토양에서 비소, 구리가 기준치(토양오염우려기준)의 10배 농도로 나타났고, 기준치의 80배가 넘는 납도 검출됐다. 침출수에서는 비소, 불소, 납, 페놀 모두 기준치(수질오염물질 배출기준)를 초과했다. 특히 비소는 지하수 생활용수 기준치의 1600배를 넘겼다. 다만 석산 복구지의 바깥에선 기준치를 넘는 중금속이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ㅎ환경이 맹독성 폐기물을 차단시설 없이 묻었기 때문에 오염물질은 결국 인근 지하수와 토양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전북녹색환경지원센터는 이 보고서에서 “주변지역으로의 확산 여부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60~70m 깊이 뻥 뚫린 산 ‘복구 명목’
맹독성 폐기물, 처리시설 없이 쏟아부어
유해 물질 퍼질라 검은 막으로 임시방편
인근 농경지·지하수로 침출수 흘러
기준치 초과 비소·납·페놀 등 검출

낭산산과 가까운 마을들은 발칵 뒤집혔다. 2016년까지만 해도 이 지역엔 지하수를 식수로 쓰는 마을이 많았다. 익산시는 부랴부랴 수돗물을 쓸 수 있도록 상수도 시설을 확대했다. 하지만 논과 밭, 축사에서까지 수돗물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농가들은 불안하지만 여전히 지하수에 의지하고 있다. ㅎ환경으로부터 나오는 독성 침출수가 때때로 흘러넘쳐 하천을 통해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것도 문제다. 낭산주민대책위원회의 최종화 사무국장은 “이 사건을 알고 있는 낭산산 인근 주민들은 쓰레기 침출수를 조심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들은 오염수가 섞인 줄도 모르고 하천 물을 퍼 올려 ‘농수’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낭산산 채석장에 묻힌 폐기물의 독성이 확인된 후 주민들은 낭산주민대책위원회를 꾸려 익산시와 싸웠다. 중금속 성분이 기준치 이상인 폐기물(지정폐기물)은 주변토양으로 오염물질이 유출되지 않도록 만들어진 매립시설 등을 통해 처리해야 하는데, 이제라도 이곳의 모든 쓰레기를 법에 따라 처리장으로 옮기라는 요구였다. 환경공단 역시 이 지역의 불법폐기물에 관한 용역 보고서에서 ‘전량 이적처리 방안’을 추천했다. 이때 환경공단이 추정한 처리비용이 약 3000억원이다.

[커버스토리]“낭산산 독극물 쓰레기 치우려면  지금 속도로는 500년 걸린당게”

정헌율 익산시장은 지난해 전량 이적처리를 약속했고 그해 말 포클레인으로 이곳의 쓰레기 더미를 파내기 시작했다. 낭산산 인근 주민들은 이곳의 폐기물을 모두 옮기면 폐석산 지하공간을 그대로 유지하길 바라고 있다. 이 공간 역시 ‘돌의 고장’으로서의 역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그렇게 한 사례가 있다. 포천에서는 포천화강암 채석을 마친 신북면 기지리의 폐채석장에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했다. 이곳에도 낭산산처럼 거대한 지하 웅덩이가 있었고, 그 웅덩이엔 지하수와 빗물이 고여 호수가 만들어졌다. 포천시는 이곳을 ‘천주호’라 이름지었다. 비록 인공적으로 산을 깎아 만든 지형이지만, 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 <달의 연인, 보보경심-려> 등이 촬영될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그러나 낭산산에서 포천시 사례를 꿈꾸기엔 폐기물 이적처리 속도가 ‘엉금엉금’이다. 익산시가 약속한 대로라면 지난해에 이미 5만t을 파내어 처리장으로 옮겼어야 하지만, 지금까지 단 270t을 파냈을 뿐이다. 주민대책위가 “지금의 속도로 계산하면 500년이 걸린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익산시는 이적처리 비용 3000억원을 폐기물 불법 배출·운송·매립한 45개 업체에 부담하게 할 계획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업체들이 내놓은 금액은 침출수처리 등의 긴급공사 비용까지 합해 아무리 크게 잡아도 30억~40억원이다. 앞으로 100배가량 더 걷어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31개 업체는 폐기물 이적처리 책임이 없다면서 행정소송으로 맞서고 있다.

■ 가해자는 누구인가

낭산산 불법 폐기물 사건을 가해자의 ‘관점’에서 되짚어보면 한국이 얼마나 환경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나라인지를 알 수 있다. 불법을 저지른 이들은 떼돈을 벌었다. 2016년 환경부 중앙환경사범수사단의 수사에서 밝혀진 ‘부당이득’은 56억원. 기록 확인이 가능한 2011년부터 4년간의 범행사실만을 토대로 계산한 액수다. 하지만 ‘ㅎ환경’이 폐기물 매립 승인을 받은 시점은 2004년이다. ㅎ환경을 비롯한 폐기물 배출·운반·매립업체들의 범죄행위는 밝혀진 것보다 더 오랫동안 이뤄져 부당이득 액수도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환경부 중수단의 수사결과와 재판부의 판결문,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익산 낭산산에서 일어난 환경범죄를 되짚어 본다.

일단 낭산산에 독성 폐기물을 매립한 당사자인 ‘ㅎ환경’은 주민들이 생각하는 가해자 1순위다. 하지만 ㅎ환경은 재판에서 ‘유해한 폐기물(지정폐기물)인 줄 모르고 매립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어떻게 ‘몰랐다’는 항변이 가능했을까.

ㅎ환경 측이 전국 각지로부터 받은 유해성 폐기물 가운데 약 70%는 자동차 폐배터리를 가지고 용광로에서 납을 추출하는 업체인 ‘ㄷ산업’ ‘ㅈ금속’ ‘ㅅ금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들 업체는 정부의 폐기물 관리 체계를 농락하다시피했다. 폐배터리에서 납을 추출한 이후 남은 불순물을 ‘광재’라고 하는데 납, 비소 등이 기준치 이상일 경우 지정폐기물로 분류된다. 세 업체에서 나온 광재는 모두 이런 폐기물이었다.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쓰레기와 달리 사업장쓰레기는 배출·운반·최종처리를 인터넷으로 실시간 관리하는 ‘올바로시스템’에 지정폐기물 여부 등을 등록한 뒤 처리해야 한다. 지정폐기물은 일반폐기물보다 처리비용이 t당 약 3만원 더 든다. 이들은 법을 어기는 대신 돈을 ‘아끼기로’ 결심한다. 올바로시스템에 지정폐기물인 광재를 일반폐기물로 등록했다.

물론 업체들의 허위등록을 막기 위해 외부 연구소로부터 ‘시험성적서’를 받게 하는 절차가 있지만, 이들은 이 ‘허들’도 간단히 넘어갔다. 연구소에 중금속 수준이 낮은 폐기물을 보내 일반폐기물로 분류될 수 있도록 했다. 지역 환경청 단속에 대비해 일반폐기물 수준의 ‘시료’도 따로 준비해뒀다.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납은 주로 자동차 배터리를 만드는 업체, 납을 이용해 용접을 하는 업체에 납품됐다. ㄷ산업, ㅈ금속, ㅅ금속은 모두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업체들이다. 이들이 추출한 ‘납’이 포함된 배터리가 지금 도로를 돌아다니는 자동차 상당수에 장착돼 있을 것이다.

법을 지킨 업체만 억울한 상황도 벌어졌다. 지정폐기물 광재를 법대로 처리한 폐배터리 업체 일부는 폐업을 하거나 휴업을 해야 했다. 2016년 환경부 중수단 수사결과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렸다고 한다. 쓰레기 처리비용을 아낀 ㄷ산업, ㅈ금속, ㅅ금속이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납의 납품단가를 낮췄을 가능성이 높다.

ㅎ환경은 세 업체로부터 받은 광재가 지정폐기물이라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1심 재판부는 ㅎ환경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2014년 5월부터는 유해성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새만금환경청이 그해 5월 ㄷ산업에 현장단속을 나갔다가 이 업체에서 배출하는 광재가 지정폐기물인 사실을 확인하고 ㅎ환경과 익산시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ㅎ환경은 2009년과 2016년에 복구재(흙과 폐기물 5 대 5)의 양을 최초 신청했던 것의 3배로까지 늘렸고, 시로부터 계속 승인을 받았다. 이렇게 하면 ㅎ환경으로서는 10억원의 추가 복구비용이 든다. 그럼에도 복구재 양을 늘린 것은 폐기물을 받아와 파묻는 일이 매우 짭짤했다는 얘기다.

◆농사 접는 농민들도 있는데…진짜 용서 빌어야 할 ‘환경범죄자’는 침묵

<b>시커먼 물 ‘콸콸’</b> 익산 낭산산 채석장 지하에 묻혀 있는 납·비소가 포함된 쓰레기 143만t으로부터 흘러나온 침출수가 고무관을 통해 콸콸 쏟아지고 있다.  익산 | 강윤중 기자

시커먼 물 ‘콸콸’ 익산 낭산산 채석장 지하에 묻혀 있는 납·비소가 포함된 쓰레기 143만t으로부터 흘러나온 침출수가 고무관을 통해 콸콸 쏟아지고 있다. 익산 | 강윤중 기자

업체에 각종 폐기물 매립할 권리 안겨주고
지정폐기물 법대로 처리하는지 감시 않는 등
12년간 관리 감독 손놓은 ‘수상한’ 지자체
발굴·복구 업체들 “독성 몰랐다” 발뺌하거나
“복구 책임 없다”며 행정소송으로 맞서

낭산산 인근에서 사는 농민들은 ㅎ환경의 ‘우리는 몰랐다’ 주장에 혀를 찼다. 김민수씨(64·가명)는 “ㅎ환경에서 보낸 건달들이 마을에 왔다 갔다 했다”고 말했다. ㅎ환경으로부터 ‘매수’당한 주민들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2016년 이후에는 ㅎ환경 문제를 두고 주민 간에 의견이 갈려 심한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폐기물의 합법적 처리를 주장하는 이웃들을 향해 ‘보상 바라고 그러느냐’는 비난이 난무했다. “조상님 말씀에 이웃하고 황소 한 마리 갖고는 다투지를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끼리 ‘ㅎ환경’ 때문에…. 정말 말도 못했어요.”(김씨)

석산복구 업체들이 주민들을 매수하는 일은 익산에서 별난 풍경이 아니다. 낭산면 용기리에 사는 이현선씨(62·가명)는 또 다른 채석장 인근에 살고 있다. “어느 날 참을 수 없는 냄새가 진동하는 거예요. 머리가 어지럽고 구역질이 나는 냄새가…. 처음엔 소똥을 누가 버렸나보다 했는데 갈수록 심해져서 알아보니까 (채석 이후 생긴 지하공간에) 뭔가를 묻고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폐수 침전물을 굳힌 덩어리가 채석장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이씨는 다른 주민들과 함께 해당 업체에 항의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웃들이 하나둘 “나자빠지는” 일을 경험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나중엔 일부 주민들이 오히려 이씨에게 ‘받아들이라’고 설득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큰 상처를 입었다. 결국 낭산주민대책위가 나서서 이곳에 폐수 침전물을 매립하는 일은 2017년 중단됐다. 적어도 지하로의 깊이가 60m는 족히 돼 보이는 채석장의 벼랑 앞에 서서 이씨가 말했다. “나는 지금은 ㅎ환경 그 쓰레기가 여기에 올까봐 걱정이랑게. 만약에 또 쓰레기 묻는다고 하면 나 여기서 콱 떨어져 죽을 겨.” 인터뷰에 응한 낭산산 인근 주민들은 한사코 ‘익명’을 요구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ㅎ환경이 보내는 ‘건달’도 두려웠지만 마을 주민 간 갈등의 골이 더 패는 것을 가장 걱정했다.

■ 정부, 지자체는 뭘 했나

“석산에 폐기물을 묻었다고요? 2010년부터 2012년 사이에 했다면 그건 불법인데요.” 산림청이 관리하는 산지관리법 담당자의 말이다. 산지관리법에는 그동안 석산 복구재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가 2010년 석산 복구재로 폐기물을 써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생겼다. 그러다가 2012년 다시 법이 개정돼 폐기물 가운데 일부는 허용하게 된다.

ㅎ환경이 낭산산에 폐기물을 흙과 함께 묻겠다고 신청한 시점은 2004년. 익산시는 법률에 석산 복구에 명확한 내용이 없어 고민에 빠졌다. 그때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익산시 청소자원과 담당자는 “당시 정부 자료를 보다가 환경부가 한 업체에 ‘채석이 끝난 폐광은 폐기물 관리법의 저지대 개념으로 볼 수 있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보낸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익산시는 환경부의 이 ‘해석’을 바탕으로 ㅎ환경에 폐기물관리법을 적용키로 한다. 결국 그 해 ㅎ환경은 낭산산 석산 복구지에 13가지의 폐기물(지정폐기물로 허용되지 않은 종류의 광재, 붕어빵 기계처럼 물체를 만드는 형틀을 부순 것으로 점토점성이 있는 ‘점토점결 폐주물사’, 건설공사장의 세륜시설 등에서 나온 폐수 침전물을 고형화한 것 등)을 매립할 ‘권리’를 익산시로부터 따낸다. “아니 산지인데 왜 산지관리법이 아니라 폐기물관리법을 적용하느냐고요.” “있는 놈들 법이라 그랴.” 낭산산 인근 주민들은 환경부와 익산시의 법 적용 잣대를 지금도 납득하지 못한다. 입법부과 행정부에 대한 불신은 이렇게 한 겹 더 두꺼워진다.

폐기물관리법을 적용한다고 해도 비극을 막을 기회는 있었다. 인체에 유해한 지정폐기물을 법대로 처리하도록 환경부와 지역환경청이 잘 감시했다면 낭산산 지하에 치명적 수준의 비소·납까지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7년 9월, 당시 안병옥 환경부 차관은 낭산산 폐석산을 찾아 주민대책위와 만난 자리에서 지정폐기물 관리 부실의 책임을 인정했다.

현장을 잘 아는 익산시가 감독을 제대로 했다면 어땠을까. 주민들은 침출수 유출, 물고기 떼죽음 등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익산시는 2008년 ㅎ환경의 쓰레기 침출수의 COD(화학적 산소요구량)가 허용기준치 40배를 넘는다는 것을 알고도 오염물질에 대해 알아보지 않았다. 매년 3회 하도록 돼 있는 점검 규정도 어겼다. 청소자원과장은 “폐기물사업장이 3700곳이 넘는데 3명이 감당하고 있어 규정대로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환경 담당자에 대한 불신이 쌓여가다 보니 업체와의 유착 의혹도 종종 불거진다. 실제로 2017년 익산시의 한 간부급 공무원은 채석 중지명령을 직권으로 풀어주는 대가로 한 석산개발 업체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파면되기도 했다. 그는 현재 2심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벌금과 추징금 3500여만원을 내게 됐지만 불복하고 항소한 상태다.

■ 지쳐가는 주민들

<b>무엇이 달랐을까</b> 대규모 채석을 한 것은 똑같았지만, 익산에서는 폐채석장에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포함된 쓰레기 143만t을 매립했고 포천(오른쪽)에서는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했다. 익산에서는 오염수를 가둬놓기 위한 저류조를 만들어야 했고, 포천에선 지하수와 빗물로 이루어진 호수가 형성됐다.  강윤중 기자·한국관광공사

무엇이 달랐을까 대규모 채석을 한 것은 똑같았지만, 익산에서는 폐채석장에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포함된 쓰레기 143만t을 매립했고 포천(오른쪽)에서는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했다. 익산에서는 오염수를 가둬놓기 위한 저류조를 만들어야 했고, 포천에선 지하수와 빗물로 이루어진 호수가 형성됐다. 강윤중 기자·한국관광공사

“낭산산이 왜 낭산산이냐, 그 산 위로 뜨는 달이 밝고 크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지금도 낭산산 남쪽에서 보면 달이 참 아름다워유, 산도 기와지붕처럼 딱 안정된 모습이고. 어릴 때 봤던 것처럼….”

식당에 앉아있던 김이호씨는 오래전의 낭산면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또 다른 주민은 “그때는 논두렁 물꼬마다 참게와 민물새우가 있었고, 낭산산 골짜기에 놀러가서는 가재도 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깨끗했던 낭산면은 50~60대 농민들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거기(낭산산) 있는 게 발암물질이라고 나왔을 때 그때 정말…. 그동안 내 쌀을 먹은 사람이 뭔 병에라도 걸린다고 생각을 해봐요. 세상 못 살아요. 말로 표현을 못하겠어요.” 노용수씨(가명)는 2016년 이전까지 10여년간 ㅎ환경 인근 2400평 논에서 벼를 수확해 팔았다. 2016년 불법 폐기물 사건이 드러났을 때 그는 자신이 거둔 쌀을 구입한, 얼굴을 알 수 없는 무수한 구매자들부터 떠올랐다고 했다. 물론 그 자신과 가족, 도시의 아들 내외, 손자·손녀들까지 먹은 쌀이었다. 그는 더 이상 이곳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다. 노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 쌀을 먹은 분들께… 죄송하지유.”

원상복구에 3000억원이 드는 대형 환경범죄. ‘죄송하다’며 용서를 구해할 이들은 누구인가. 맹독성 쓰레기 더미는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오늘도 익산 낭산산은 비소·납으로 뒤엉킨 쓰레기 140만여t을 품고 또 하루를 보낸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