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욕을 먹어서…” TV 정치풍자 부활 가능할까

2021.11.06 08:59 입력 2021.11.26 15:41 수정

시원한 촌철살인 멘트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LTE 뉴스’의 업데이트 버전 ‘LTE-A 뉴스’(위)와 ‘내 친구는 대통령’

시원한 촌철살인 멘트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LTE 뉴스’의 업데이트 버전 ‘LTE-A 뉴스’(위)와 ‘내 친구는 대통령’

내년 3월, 제20대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둔 정치의 계절이다. 연일 서로 각을 세우는 TV 정치토론이 봇물을 이룬다. 하지만 과거 ‘대선정국’ 때와 확연히 달라진 한가지가 있다. ‘TV 정치풍자 코미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KBS <개그콘서트>가 21년간의 대장정을 마친 것을 끝으로 지상파 3사에서는 아예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케이블TV인 tvN이 유일하게 <코미디 빅리그>를 그나마 유지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정치풍자는 보기 힘들다. tvN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쿠팡플레이로 옮겨 방송되고 있는 <SNL 코리아>가 주목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를 포함한 시사풍자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국회의원(무소속 이용호)까지 나서서 KBS 코미디 프로그램 부활을 촉구하며 “정치인도 기꺼이 코미디 대상이 되고 싶다”고 말했을까.

이런 가운데 KBS는 11월 13일 새 코미디 프로그램 <개승자> 시즌1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코미디언들이 팀을 이뤄 경쟁을 벌이면서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고,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된다. 매 라운드 시청자 개그 판정단의 투표로 생존 결과가 좌우된다. 내년 2월 12일까지 4개월간 매주 토요일 밤에 KBS2를 통해 시즌1이 방송된다. 그런데 적어도 1회 녹화분에서는 정치풍자를 포함한 시사풍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승자>를 연출하는 조준희 PD는 “경연이고 서바이벌이기 때문에 제작진이 출연 개그맨들이 짜온 아이템에 간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와 팬덤정치의 압력

정치풍자 또는 시사풍자는 코미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요 장르다. 정치권력이나 기득권층,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불만이나 답답함을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으로 승화시켜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엄혹했던 5공 시절에서도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정치풍자, 시사풍자가 펄떡였다. KBS <유머 1번지>에서 코미디언 고 김형곤씨가 연기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나 ‘탱자 가라사대’의 정치풍자는 지금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내용과 수위가 파격적이었다.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서 ‘일요일 밤의 뉴스 대행진’ 진행을 맡은 코미디언 김병조씨는 시사풍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경우다. “지구를 떠나거라”, “먼저 인간이 되거라” 등 그가 이 코너를 통해 낳은 유행어도 많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도 <개그콘서트>, <SNL 코리아>,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등에서 독한 정치풍자가 이어졌다. 대표 코너가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LTE 뉴스’, ‘내 친구는 대통령’, ‘살점’ 등과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 ‘민상토론’, ‘대통형’ 등이다.

물론 5공 시절 김형곤씨는 국가안전기획부의 감시 전화를 받아가며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을 연습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박근혜 정부 때는 tvN의 <SNL 코리아>에 대한 청와대 외압설이 불거졌다. 직전 대선정국에서 각당 대선후보들을 텔레토비 캐릭터로 풍자한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 제작진의 성향을 조사했다는 것이다. 결국 한동안 <SNL 코리아>에서 정치풍자가 사라졌다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 부활했다.

그렇다고 해도 TV에서 정치풍자 코미디가 지금처럼 아예 전멸한 시기는 없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2011년 KBS <개그콘서트> 코너인 ‘사마귀 유치원’은 사회 이슈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큰 사랑을 받았다. 아나운서 비하발언으로 고소된 강용석 당시 무소속 의원이 이 코너에 출연 중인 개그맨 최효종씨를 국회의원 집단 모욕죄로 형사 고소했다가 취하한 해프닝도 있었다.  / KBS 제공

2011년 KBS <개그콘서트> 코너인 ‘사마귀 유치원’은 사회 이슈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큰 사랑을 받았다. 아나운서 비하발언으로 고소된 강용석 당시 무소속 의원이 이 코너에 출연 중인 개그맨 최효종씨를 국회의원 집단 모욕죄로 형사 고소했다가 취하한 해프닝도 있었다. / KBS 제공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팬덤정치’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큰 파문을 낳았다. 김미화·김구라·김제동 등 진보 연예인들 다수가 포함됐다. 성 평론가는 “새로 들어선 정권에 의한 보복이 연예인들에게도 반복되다 보니 제작진이나 코미디언들이 정치풍자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팬덤’의 대상은 노무현(노사모)·박근혜(박사모)·문재인(문파)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특히 2016년 촛불시위 이후 팬덤정치는 더 증폭됐다. 현정부 들어 정치풍자가 점차 힘을 잃다가 사라진 이유 중 하나다. 익명을 요구한 개그맨 A씨는 “정치 코미디를 하기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환경이 더 나빠졌다”며 “진영 갈등이 워낙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전 정부까지는 중도가 80%,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각각 10% 정도여서 정치풍자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중도가 30%, 양 진영이 각각 35%씩 되는 것 같다”며 “자기가 지지하는 진영에 불리하거나 불편한 내용이 나오면 반발이 거세 TV에서 정치풍자를 할 여지가 좁아졌다”고 했다.

■제한 없는 유튜브·OTT로 이동

한 사례로 2017년 SBS 시사토크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특보 역할을 맡았던 개그우먼 강유미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가 보수진영의 반발을 샀다. 강씨는 결국 자신은 특정 정파 색깔이 없다고 해명해야 했다. 2018년에는 3년간 <개그콘서트>를 떠나 있던 김원효씨가 복귀하며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라는 풍자 코너를 시작했다. 김씨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지방선거 당선 직후 방송사 인터뷰 도중 연결을 끊으며 인터뷰를 거부한 사건을 풍자했다가 이 지사를 지지하는 누리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야 했다. 결국 해당 코너는 한달 만에 폐지됐다. 개그맨 황현희씨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겠다고 시작한 정치풍자인데, 환호는커녕 많게는 국민 절반가량의 비판을 애초부터 각오해야 한다면 누가 그것을 시작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누군가의 속은 시원하게 하지만 누군가의 속은 부글부글 끓게 하는 개그를 과연 개그라 할 수 있을까”라고도 말했다.

2018년 <개그콘서트>에서 김원효씨가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라는 새 풍자 코너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지방선거 당선 직후 방송사 인터뷰 도중 연결을 끊으며 인터뷰를 거부한 사건을 풍자했다가 이 지사 지지자들의 반발로 한달 만에 폐지되고 말았다.(위) 2017년 SBS 시사토크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특보 역할을 맡았던 개그우먼 강유미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가 보수진영의 반발을 샀다. 강씨는 결국 자신은 특정 정파 색깔이 없다고 해명해야 했다.  / KBS 제공·<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캡처

2018년 <개그콘서트>에서 김원효씨가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라는 새 풍자 코너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지방선거 당선 직후 방송사 인터뷰 도중 연결을 끊으며 인터뷰를 거부한 사건을 풍자했다가 이 지사 지지자들의 반발로 한달 만에 폐지되고 말았다.(위) 2017년 SBS 시사토크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특보 역할을 맡았던 개그우먼 강유미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가 보수진영의 반발을 샀다. 강씨는 결국 자신은 특정 정파 색깔이 없다고 해명해야 했다. / KBS 제공·<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캡처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창구가 늘어난 환경이 ‘팬덤정치’와 만나면서 TV 정치풍자는 더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프로그램 내용이 마음에 안 들면 방송사에 항의전화를 거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전화뿐 아니라 개인 SNS나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서 즉각적이고 매우 과격한 언어를 사용해 공격하는 일이 예사이기 때문이다. 황현희씨는 “정치풍자가 아니더라도 젠더평등이나 외모 등 다방면에서 과거에 비해 표현에 대한 제약이 많아지면서 개그맨들의 아이디어 회의도 욕을 먹지 않기 위한 회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풍자가 TV가 아닌 OTT나 유튜브, 팟캐스트 등으로 옮겨간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다. 웹예능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를 진행하는 방송인 정영진씨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지상파 방송과 달리 유튜브나 OTT는 해당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시청하고자 하는 이들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콘텐츠 생산자들도 자기편 앞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풍자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재의 제한도 없고 특히 유튜브 콘텐츠의 경우엔 심의도 받지 않아 표현에 제약도 없다.

■“품격 있는 정치풍자 노력 필요해”

TV에서 수준 높은 풍자를 보여주지 못한 제작자들의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준희 PD는 “꾸준히 이어오지 못해서인지 질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풍자가 많아지면서 퇴보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놓고 하는 것은 정치풍자가 아니라 단순한 정보전달에 불과하다”며 “‘달인’을 연기하기 위해 개그맨 김병만씨가 꾸준히 자기 몸을 단련시킨 것처럼 제작자나 개그맨들도 품격 있는 정치풍자를 하려면 각고의 트레이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TV 정치풍자는 부활할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는 부정적이었다. 성상민 평론가는 “쉽지 않다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성 평론가는 “박정희·전두환 시절은 아니어도 여전히 경직돼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며 “풍자를 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되는 사람도 수용해야 하는데, 보복이 반복되다 보니 생산자들이 다들 몸을 사리고, 하더라도 독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희 PD는 “개그는 개그로 봐줘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한없이 자기검열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한 말은 ‘웃프’다. 전씨는 “정치인이나 언론에서 하는 이야기 중 정말 듣기 싫은 게 ‘코미디 같다’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미디의 가장 기본은 웃기거나 즐겁게 해주는 것인데, TV 정치풍자 코미디의 고갈 속에서 정치권력의 불쾌한 행태에 제발 코미디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이지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전씨는 TV 정치풍자 부활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 그는 “코미디의 중요한 장르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되살아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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